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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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제10주] 값하는 삶

  • 관리자
  • 2022-08-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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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0주/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북한선교주일/광복기념주일
값하는 삶
예레미야23:23~29
[사 5:1~7, 시 70:1~2,8~19, 82, 히 11:29~12:2, 눅 12:49~56]


오늘은 성령강림후 열 번째 주일입니다. 77주년 광복기념주일이며,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이도 합니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77년 전의 광복은, 일본 식민지에서의 해방이라는 기쁨을 얻었지만, 동시에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기쁘면서도 슬픈 해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5년 뒤 동족상잔의 비극은 지금껏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사이 평화통일을 위한 많은 노력들이 있었지만, 80여 년에 이르는 남북분단은 지리적, 정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언어와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한민족의 동질성을 상실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남북의 대결과 대치는 무의미하며 서로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남과 북이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이전처럼 전쟁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거나, 무기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한반도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전협정의 체결’을 통해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 닭이 몇 마리인가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에세이집의 글 중에 ‘닭이 몇 마리인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통합의학의 선구자인 의사 레이첼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88살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답니다. 어머니가 종교를 갖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어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종교를 통해 용서를 받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완고했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15분씩 자기와 함께 명상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눈을 떠보면, 어머니는 명상을 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레이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명상의 시간을 없애자고 했지만, 어머니는 매일 아침 딸의 얼굴을 15분 동안 보는 것이 낙이라며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한 시간 이상 넘게 명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레이첼이 무엇을 명상하셨느냐고 물으니 “닭을 세고 있었지”하면서 미소를 지었습니다. 레이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마침내 치매에 걸리셨구나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녁에 닭고기를 먹고 나서, 불현 듯 평생 매주 한 두 번은 닭고기를 먹었다는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머리로 계산하기 시작했고, 두 마리의 닭을 52주, 최소한 84년을 곱하니 8천 마리(8,736마리)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이 그 순수한 생명들의 그 많은 희생이 가치가 있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생각해 보니 자신의 삶이 다행스럽게도 그 닭들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답니다.


■ 생명들에 값하는 삶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먹습니까? 얼마나 많은 닭과 소와 돼지와 생선을 먹습니까? 그 순수한 생명들을! 우리는 그 목숨에 값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인간이라고 해서 의식이 있고 아픔을 느낄 줄 알며, 오래 살고 싶은 존재들보다 자기가 힘이 더 세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미안함이나 감사함 없이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먹어야 삽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동물들, 생명들을 먹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의 몫까지 살아가는 것만이 그 생명의 희생에 값하는 길입니다.
 


한반도 반만 년의 역사에서 수많은 외침과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서있는 것은 누구 덕분입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던 이들과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겠습니까? 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생명들에 값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소식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순교자들의 죽음에 값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내가 가까이에만 있는 하나님이냐, 멀리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고 묻습니다.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은밀하게 숨어 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닭이 몇 마리인가?’에 이어지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스승이 죽음을 앞두고 후계자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에게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스승은 두 제자에게 각각 살아있는 닭을 한 마리씩 주면서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요리해 먹기 좋게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한 제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닭을 잡아왔는데, 한 제자는 저녁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더니만 닭을 산 채로 들고 왔습니다. 먼저 온 제자는 비웃었지만, 스승이 물었습니다. “왜, 그냥 가져 왔느냐?” 그러자 제자가 말합니다. “어디에서도 닭을 죽일만한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부도 보지 않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딜 가든 닭이 보고 있었습니다.”
칼릴지브란의 글에도 이와 비슷한 글이 있습니다. 앵무새를 죽이지 못하고 돌아온 학생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지켜보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무소부재 하시는 하나님, 그런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내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바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생명들에 값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오해한 것입니다.

 

■ 거짓 선지자가 판치는 세상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거짓 예언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꿈을 꾸었다하고, 꿈을 공유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서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나는 내 이름을 팔아 거짓으로 설교하는 그 예언자들이 뭐라고 하는지를 잘 안다. 그들은 서로 꿈을 교환하고 망상을 바꿔 먹으면서 내 백성을 미혹케 하여 나를 잊게 만든다.”

이 말씀은 단순히 설교자를 조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거짓 설교자들이나 이단 사설을 전하는 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할 것은 ‘맘몬’을 숭배하는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거짓 메시지입니다. 세상이 성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 그것을 사람들은 서로 공유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물림하려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맘몬의 노예로 살아가게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잊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수단이 되고, 거짓 설교자들은 맘몬을 섬기는 자리에 하나님을 가져다 놓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비극입니다.

80여년 가까운 분단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과 북은 ‘평화통일’이라는 큰 뜻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우상을 남한은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우상을 섬기면서 ‘평화통일’을 빌미로 권력자들의 이익만 채워주었습니다. 오랜 세월 세뇌되어 살아온 결과 백성들의 정신은 병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평화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 꿈이 현실로


거짓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꾸는 꿈은 허황된 꿈입니다. 우리는 허황된 꿈이 아닌, 백성을 살리는 꿈을 꿔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2022년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문 남측 초안’을 읽었습니다. 기도문을 읽으면서 ‘한반도’를 살아가는 이들의 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참혹한 역사에 긁힌 깊은 상처가 회복되는 꿈, 더는 미워하지 말고 평화를 말하고 공존을 말하는 꿈, 철조망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해체되는 꿈, 평화를 막아서는 이들의 욕망이 무너지는 꿈, 더는 이 땅이 폭력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는 꿈, 이런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꿈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꿈을 공유하고, 서로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쭉정이가 아닌 알곡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팔복의 말씀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마 5:9).”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분들은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사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는 귀한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성실함으로 내 말을 하라


하나님께서는 거짓 설교자들을 ‘얼빠진 꿈이나 이야기하는 쭉정이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그런 자들이 알곡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설교자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입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야 비로소 제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늘 그렇습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에 있기에 야고보 사도는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실함으로 내 말을 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 값하는 삶


저는 그것을 ‘값하는 삶’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게 한 모든 ‘그림자 노동’이 헛되지 않게 하는 삶, 생명유지를 위해 수없이 먹은 생명들의 값이 헛되지 않게 하는 가치 있는 삶, 하나님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하는 삶, 이것이 값하는 삶입니다.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비록 분단된 땅에서 살아가지만, 지금 이만큼 살아가기 까지도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이 땅을 살아갈 우리들의 몫입니다. 저는 평화통일의 꿈, 분단의 깊은 상처가 아물고, 한민족이 손을 맞잡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한반도를 꿈꾸며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요, 말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요, 말이므로 그 말을 받아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나머지 일은 이뤄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 이것도 ‘값하는 삶’일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나를 있게 한 모든 ‘그림자 노동’을 가치 있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알곡으로 영글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십시오.

 



[거둠 기도]

평화의 주님,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하지만, 여전히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있사오니 주님, 이 나라가 서로를 적대하지 말고 힘을 합해 평화의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우리는 다 알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으로 살아갑니다. 늘 감사하며 겸손하게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가치 없는 일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벼리며 살아가게 하셔서, ‘값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PPT 영상설교 '값하는 삶' : 여기를 누르시고 확인을 눌러주십시오.

서울북노회 제1지구 남녀신도회 연합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설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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