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반도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예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시편 37:27~38
■ 의인들에게 주시는 복(시편 37:27~3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의로운 여러분,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에 드리는 연합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는 평화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첫째, 땅을 주시고, 거기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29). 둘째, 지혜를 말하고 공의를 말하는 입을 주실 것입니다(30). 셋째,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31). 넷째,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34). 다섯째, 미래를 보장하실 것입니다(37). 이런 복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 기쁘면서도 슬픈 해방
함석헌 선생님은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광복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했습니다. 77년 전, 일본 식민지에서의 해방은 꿈은 꾸었으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누구도 예기치 못하던 때에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방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고, 그러 까닭에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기쁘면서도 슬픈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5년 뒤, 한국전쟁과 휴전, 지난 80여 년 적대관계 속에서 살아오면서 남과 북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남북의 현저한 경제적인 격차는 평화통일의 꿈을 요원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남북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뤄야하는데 그 균형이 깨져서 평화가 위협을 당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든 흡수통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남과 북은 공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 미가서 4장 3절
남과 북은 미가서 4장 3절의 말씀대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야 하며, 칼을 들어 서로 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고, 전쟁을 연습하는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말씀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군사훈련과 핵개발로 한반도의 위기를 더해가고, 그것 없이 어떻게 안보를 지킬 수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는 남북 대결과 대치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남과 북은 서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전처럼 전쟁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종식시키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전쟁 준비에 몰두하여 막대한 경제력을 투입하는 어리석음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 바람과 행동
지난주에 ‘2022년 한반도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문(남측초안)’을 읽으며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도문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다 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분단을 극복하려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해야 할 일이 있을 터인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꿈만 꾸고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냐면. ‘평화’라는 개념이 너무 추상적인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평화, 평화통일’, 이런 목적은 너무 큰 개념이다 보니 그냥 구호로만 외쳐지고, 실제의 삶에서는 살아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평화를 위한 바람’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평화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공허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구체적으로 걸어가실 때에는 ‘검을 주시고,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고,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고 노력했지만 늘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한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평화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북한선교를 위해서, 북한의 인권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성경보내기 운동’도 그 중 하나겠지요. 그런데 사실, 그 일보다도 국가보안법 철폐와 반공이데올로기와 그것을 이용해서 분단을 고착화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행태와 싸웠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구체인 일들은 두고 분단 상황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들을 하겠다고 허공에 발길질 해댄 것이 아닙니까?
■ 코로나와 지구온난화라는 사인(sign)
2020년 벽두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과 최근의 기후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인류에게 과거와는 다른 사고와 행동,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사인(sign)을 주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재앙 앞에서 국경, 이념, 인종, 피부색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민족은 80여 년의 갈등과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어떤 전제 조건 없이 중단된 대화를 재개하고, 만남을 이어가야 합니다. 핵개발은 물론이고 사드배치니 선제공격이니 이런 것은 이 나라를 위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의 해방은 미완의 축제요, 절반의 해방입니다. 남북한이 하나 될 때 온전한 축제와 해방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북의 하나 됨과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분단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고, 그들의 거짓 사설에 속아 살아가는 무지몽매한 이들의 생각을 치유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먼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시대의 사인을 읽어야 합니다. 코로나 19와 지구온난화가 주는 사인은 온 인류가 하나 되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사실, 너무 큰 ‘대의’ 혹은 ‘당위성’ 에 짓눌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뭔가 하야하긴 할 터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지요. 평화통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막막하지 않습니까? 기도하면 됩니까? 앉아서만 하는 기도는 공허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문익환 목사님처럼 철조망을 넘어갈까요? 그건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짝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니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평화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자기와 화해해야 합니다. 자기와 화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물과 같아서 자기 안에서 차고 넘쳐야 물꼬가 터지는 것입니다.
둘째, 가까운 이들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힘쓰십시오. 사실은 이게 멀리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워도 이 일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러분의 ‘그림자 노동’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평화를 확장시키십시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그 범위 안에 속한 것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먹을 것과 입을 것만 구하는 삶보다 한 단계 위에 것을 구하는 삶이 있음을 아는 것은 삶을 품위 있게 만들어줍니다.
■ 의인이 받는 복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편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은 이런 복을 주십니다.
첫째, 땅을 주시고, 거기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29). 둘째, 지혜를 말하고 공의를 말하는 입을 주실 것입니다(30). 셋째,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31). 넷째,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34). 다섯째, 미래를 보장하실 것입니다(37). 이런 복을 풍성하게 누리시는 여러분 되길 바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거둠 기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라 말씀하신 주님, 우리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평화를 위해 일할 때, 또한 복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한반도와 그 땅에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평화의 일꾼들을 부르시어 이 땅에 주님의 평화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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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문은 2022년 8월 14일, 서울북노회 남녀신도회주관 8.15평화통일연합예배에서 전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