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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만난 사람들] 새벽 닭 울음소리 들으며

  • 관리자
  • 2023-03-29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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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은 세계적인 거장 이창동 감독의 작품입니다. ‘박하사탕은 순수했던 한 청년이 우리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타의로 끌려간 군대에서 광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의도치 않게 사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어떤 처벌이나 정신적 치료 과정 없이 고문 경찰이 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하고 가정도 꾸렸으며 번듯한 집에서 출근하는 보통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너졌고,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만났던 여인이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을 찾게 되고, 그녀를 만나면서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기찻길 위에서 자신을 순수했던 젊은 시절로 보내달라고 울부짖으며 영화는 끝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419 혁명을 시작으로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 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희생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 중의 악법은 여전히 남아 사회를 병들게 하고, 무고한 이들을 잡아가 고문하며 죄를 조작했던 세력은 여전히 사회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1212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일당은 민주주의를 원하는 요구가 거세자 지도자들과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습니다. 예수님 시대 역시 로마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이들이 테러를 벌였으며, 오랜 강대국의 지배로 인해 사회가 불안하고 위태로웠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다니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잡아갔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헤롯 왕(헤롯 안티파스)을 욕한 세례요한의 경우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을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겁을 주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십자가형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대들고 반항하는 이들을 처형하고 모든 이들에게 보여주는 형벌이었기에 잔인하고 무자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던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그를 떠났던 것입니다. 우리라면, 내 안위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복음서에 보이는 제자들의 이미지

 

복음서에서 보이는 제자들의 모습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습니다. 보통 제자라고 하면, 가르치는 스승의 뜻을 잘 이해하고 그를 따르려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격이 급하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흉흉하고 불안해서인지 기적을 행하며 사람들을 유혹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자칭 메시아라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유대의 정치적 메시아로 여겼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그를 따른다기보다 오히려 잿밥에 관심을 두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되면 내가 오른편에 앉겠다, 내가 왼편에 앉겠다고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인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제자들의 직업은 드러난 바로는 어부와 세리 정도이고 직업은 아니지만, 열심당원이라는 표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된 일자리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어부의 경우는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다른데, 고깃배를 가질 정도면 중산층 정도의 재정 수준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배를 빌렸다면 일용직 노동자와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리도 삭개오의 이야기로 아시는 대로 돈은 많이 벌 수 있어도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안정한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자들도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 온종일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식사한 후, 예수님이 잡혀가시자 불안에 빠졌고, 부당한 판결로 인해 로마의 정치범을 처형하는 십자가형에 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모두 생명의 위협을 받고 겁먹었을 것입니다. 부당한 처벌에 대한 저항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가 정치범을 잡게 될 경우, 그 일당들도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로마는 내 편에게는 한없는 자비로웠지만, 적이라면 무자비함 그 자체였기 때문에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이 겁먹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뒤집을 만한 엄청난 사건을 벌이는 데 가담했다고 생각했을 때, 경찰이나 검찰이 사건의 지도자를 체포했다면 어떨까요? 예상치 못했다면 당황할 것이고 그 순간 절망하고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나도 지도자처럼 체포되고 고문당할 생각하면 절망과 두려움은 희망을 순식간에 없앴을 것입니다. 누구도 이 문제를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였기에 더 나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에 관한 생각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만남 이후 그를 지지하고 따르게 된 이들과 논쟁을 벌이며 적대하는 이들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지지하고 따르는 이들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고행을 마치고 돌아와 제자들을 만드셨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대중들을 가르치고 병자를 낫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하며 죄인을 용서하면서 추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성경에도 기록된 대로, 이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 부르기도 했고, 부활한 엘리야라고도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유대인이 극도로 싫어하고 깔보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구원을 주고, 이방인에게 기적을 행해서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들에게 예수님은 예언자 세례요한을 뛰어넘어 유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였습니다. 오랫동안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아 예전과 같은, 그러니까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이 다스렸던 그때로 돌아가길 바랐을 것입니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그들은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사람들을 매혹했던 것입니다.

 

반면, 유대 귀족이나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눈엣가시로 여겼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을 비판하고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긴 했으나, 유대 귀족이나 유대교 지도자들의 입지를 뒤흔들만한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세례요한의 비판은 헤롯 왕(안티파스)을 불쾌하게 했고, 그 죄목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대 귀족이나 유대교 지도자들로선 손도 더럽히지 않고 코를 푼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세례요한보다 더 과격했습니다. 그는 밖에서만 외치지 않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으며 병을 낫게 했고, 죄를 용서했습니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율법을 어기면서도 부끄럼 없이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그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으며 대중 운동가들인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와 논쟁 벌이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허점을 지적하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졌고, 이른 시일 내에 예수라는 자를 처리하지 않으면 그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유대의 기득권자들은 바리새인들이 대중운동으로 세력을 얻자 그들에게 권력을 나눠주면서 내 편으로 끌어들여 기득권을 유지했지만, 예수라는 자는 도통 타협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눈엣가시정도였던 그가 이제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대의 대중들에게 예수는 점점 메시아로 추앙받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정치적 의미로 강대국의 지배를 끝장내고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를 세울 지도자라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논리적 허점을 찾을 수 없게 된 이들은 예수님을 처리하기 위해 강대국 로마를 끌어들였고,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불법적인 인민재판에 넘긴 것입니다. 이들은 안식일이나 축제일에는 법정 심리를 할 수 없었음에도 법을 무시하고 밤에 공회를 열었고, 로마는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그들의 영향력이 약한 이곳에서 로마에 저항하는 대규모 봉기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서, 예수를 로마의 정치범 처형법인 십자가형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변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바위라는 이름의 뜻처럼 변함없이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형제인 안드레보다 늦게 예수님을 만났지만, 성경에서 어떤 제자보다 더 많이 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누구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더 대단했던 것은 이 질의응답이 이뤄진 장소가 가이사랴 빌립보 즉, 로마 황제의 치세가 화려하고 멋지게 표현된 신전이 가득한 길 위에서였다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크고 화려한 신전이 뿜어내는 위압감 가득한 그곳에서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의 구원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때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그의 발언을 온전히 이해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이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시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나라라고 욕하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가이샤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모습은 예수님을 유다의 정치적 메시아로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해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생각한 게 아니라 오랜 강대국들의 지배를 깨부수고 유다를 독립시켜 전성기 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에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꿈꾸던 하나님 나라였고 이상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꿈을 예수님이 이뤄줄 거라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셨고, 실제 로마군에게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세례요한에 이은 허망한 죽음이었습니다.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낙심하고 흩어졌습니다. 혹시라도 로마군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기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되면 오른쪽 자리와 왼쪽 자리를 두고 논쟁을 벌였고, 언제 그날이 올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꿈이 완벽하게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며 즐겁고 행복할 때는 그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잡히시고, 죽음의 위협이 다가오자 없던 두려움이 모든 신념을 삼켜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는데,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세 번 부인한 게 아니라 여러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부인했습니다. 이는 실수라고 볼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초점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처절하게 후회했습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사명감에 불타오르던 내가 막상 그가 위험에 빠지자 예수님을 외면한 모습에 구역질이 났을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몇몇 여인들을 제외한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그 어떤 손해나 피해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되면 한 자리를 차지할 욕심뿐이었지, 손해나 피해는 그들의 계산에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크게 뉘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말랑말랑하고 약하디약한 믿음을 반성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상이 투영된 유대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던 그 나라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다닐 때, 나눴던 대화와 이야기, 가르침을 떠올리며 그 나라를 그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베드로는 아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생각했던 자신의 이상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았습니다. 물론 그 또한 인간이기에 그 이후에 완벽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변화는 바울의 회심만큼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이야기의 초반에 과연 우리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지금 우리라면 어떨까요?

 

우리의 변화 (나라면?)

 

한국교회는 1900년대와 1970년대 이후 두 번의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인 1900년대는 1907 평양 대부흥이 있던 때였고 1970년대는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맞춰 경제가 호황이던 시기였습니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인이 있는 10대 교회 중에 절반이 한국교회입니다. 그럼 예전보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을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었나요? 지금도 한국교회는 전도에 열을 올립니다. 도로 블록마다 교회가 있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교회 밖에서 커피나 휴지를 나누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권유합니다. 지금도 교회의 크고 작음을 이야기할 때, 교인이 몇 명인지 묻거나 예배당이 얼마나 큰지 물어봅니다. 눈에 보이는 숫자와 건물의 크기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과는 별개로 기독교인의 숫자는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인의 숫자로 하나님 나라를 판단하는 시도는 예전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나라의 왕이 종교를 바꾸면 그 나라의 종교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왕만 기독교로 개종하면 그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크리스텐덤, 말 그대로 거대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중세 유럽을 하나님 나라로 볼 수 있을까요? 성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는 그때, 그곳을 하나님 나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기독교인이 되면, 우리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될까요?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다고 해서 오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기독교인의 마음에 하나님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준, 돈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기준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모두 풍족하게 돈을 갖고 있다면 더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보다 내가 생각하는 돈의 가치를 낮추고 그 자리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인 실천이 자리한다면 어떨까요? 소외된 이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차별받는 이들 곁에 서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어떨까요? 피해 없이 손해 없이 하는 선행은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와 손해를 감수하는 실천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의 이상과 욕구가 실현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걸 꿈꾸었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교회의 크고 작음은 눈에 보이는 숫자나 크기가 아닌 교회가 하나님을 품고 있는지, 그에 따라 살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숫자와 크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가이사랴 빌립보에 지어진 로마 신전의 크고 화려함에 매몰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약한 믿음을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변화를 알고 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나는 바뀔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이현주 #예수와만난사람들

 

* 위 글은 이현주 목사님의 '예수와 만난 사람들'을 교재로 진행된 수요성경공부 시간에 발표된 글입니다.

* 발표자는 허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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