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열기
우리는 눈으로 글을 읽을 때, 의미를 함께 파악하고 받아들입니다. 이 과정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런 과정을 거쳤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빠릅니다. 예전 춥고 배고프던 시절엔 의무교육을 이행하지 못해 글 자체를 읽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우리나라가 예전엔 문맹률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나아지면서 글 자체를 읽지 못하는 분들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문해율에 주목합니다. 혹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상술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글을 읽는 것뿐 아니라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그냥 읽는 것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옆 사람과 대화할 때는 별도의 과정이 없어도 자연스러운 해석이 가능합니다. 옆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뿐 아니라 사람의 표정, 몸짓, 분위기를 살펴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화나 문자로 대화할 때는 그렇지 않아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려 수천 년 전에 쓰였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쓰인 문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할 소지가 큽니다. 성경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쓰였고, 편집되었으며, 이후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여러 차례 번역의 역사를 거쳤습니다. 그러니 2023년에 사는 내가 수천 년 전에 쓰인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은 각주구검(刻舟求劍), 강 위에서 칼을 떨어뜨려 놓고 강을 건너 배를 땅에 댄 뒤에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지금 내가 2023년의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늘 가져야 합니다. 그때에는 아무 문제 없이 가능했던 것들이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일 수도 있고, 그때는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너무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현주 목사님의 ‘예수와 만난 사람들’은 초판이 나온 지 3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유익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전한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시선의 중심이 예수님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로 치면, 예수님이 주인공인 셈입니다. 하지만 ‘예수와 만난 사람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기준이 아닌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기준으로 복음서의 내용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해석과 상상력이 가미되긴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해석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예수님의 인간됨을 느끼고 내가 그 역사 속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이 책과 함께 수요성경공부를 진행하면서 서로의 느낌을 나누고 그러면서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당시 유다의 상황
예수님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유다는 오랫동안 강대국에 지배받아왔습니다. 그 역사의 시작은 하나의 나라였던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면서부터였습니다.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남왕국 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의 패권을 쥐고 있던 강대국에게 차례로 지배받는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 사이에 잠깐 유대의 독립 국가인 하스모니아가 세워졌지만, 다시 로마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였던 두 나라가 분열되고 멸망한 지 600여 년이 다 되도록 독립하지 못하고 강대국에 의해 지배당하는 역사를 살아왔던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구약 시대 야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고, 주변 나라가 왕정 체제를 택하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때도, 사사 체제와 지파의 연맹체로서의 면모를 이어갔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들을 지켜줄 왕을 세우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사울, 다윗, 솔로몬의 시대가 지나고 난 뒤, 백성들의 불만은 폭발했고 나라가 둘로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강대국의 지배 속에서 이들은 야훼 하나님이 자기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나라로 이끌 메시아를 보내실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강대국에 빌붙어 사는 이들이 늘어났고 새롭게 권력 체제가 구축되면서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작가가 헤롯을 괴뢰정권이라 부른 이유가 있습니다. 원래 헤롯 가문은 유다의 남쪽 이두매 지역의 군벌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에 로비를 벌였고, 황제로부터 유다 지역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분봉왕이 그런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유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헤롯대왕은 유대 제사장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기도 하고 전쟁으로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로마의 지지를 얻기 위해 원형 경기장과 올림픽 경기를 열면서 로마 황제를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헤롯이 이런 양면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는 바로 그의 권력욕 때문이었습니다. 명분 없이 로마 황제로부터 왕위를 얻었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던 것입니다.
당시 유다의 구성
예수님 당시 유다 사회를 구성할 때,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네 개의 집단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두개파는 고위 제사장 그룹으로 유대 귀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오직 토라(모세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습니다. 다음은 바리새파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분리된 자’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이들의 운동은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회당을 통해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운동의 초기와 달리 시간이 흐른 뒤인 예수님 시대에는 형식에 매몰되고 엄격한 기준을 지키지 못한 이들을 정죄했으며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그들 스스로 율법 위에 군림했습니다. 다음은 에세네파입니다. 이들은 수도원과 같은 공동체 생활을 했으며 일정 기간의 수련 후에 공동체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볼 때, 에세네파의 일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젤롯당은 강대국의 오랜 지배를 무력투쟁을 통해서라도 극복하고자 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귀족이나 고위급 관리를 향한 테러를 자행했으며 반反로마적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베어버린 베드로를 젤롯당 당원으로 보기도 합니다(요18:10). 그 외에 우리는 하나의 집단을 더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복음서에서 ‘무리’로 불리며 대부분 사회에서 외면받고 차별받는 이들이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나 중한 질병을 앓는 환자 그리고 사회적으로 손가락질받는 세리들도 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이들은 오클로스όχλοϛ라 불렀는데 성경에서는 무리라고 번역했고, 후대 한국의 신학자인 안병무 목사는 민중으로 번역해 민중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역사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직업의 의미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강대국들은 피지배국인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빼앗고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로마는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면 관용을 베풀었지만, 반항하면 철저하게 짓밟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로마 본토와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은 로마에 순순히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로마에 머리를 숙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친권력적인 집단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분봉왕이었던 헤롯 대왕과 그 가문이 그랬고 유대 귀족들이 그랬습니다. 또한, 세금을 걷는 이들이 그랬는데, 로마가 세리(세금 징수인)를 뽑는 방식은 지금처럼 국세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걷는 게 아니라 경매처럼 로마에 바칠 세금을 높게 제시하는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세금을 걷게 한 뒤, 로마가 가져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세리는 로마에 바칠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거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바치고 남은 돈으로 자신의 부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리들은 로마의 비호를 받았습니다. 세리를 위협하거나 그들의 징수 행위를 반대하면 로마의 군대가 반항한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행위를 처벌했습니다. 그랬기에 유다 사람들은 세리를 로마에 부역한 변절자로 여겼습니다. 우리로 치면 친일파와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신체의 불만과 열등감 콤플렉스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당시 사회는 몸에 병에 걸리거나 부족한 점이 약점을 넘어 사회적 차별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다는 것이 열등감을 넘어 콤플렉스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보통 열등감은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주변의 영향으로 인해 콤플렉스로 작용하면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고 갉아먹는 요소로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방법으로 더 강하고 악하게 세금을 걷었을 것입니다.
불행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세리라는 직업을 통해 경제적인 상황은 나아졌지만, 사회적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신의 콤플렉스를 전혀 극복하지 못했기에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만들었던 건 내가 사는 방법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으로 살면서 로마에 세금을 걷어 바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떳떳한 나로 거듭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냥 주어진 재물이 아니라 삭개오가 자신을 포기해가며 쟁취한 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해방 그리고 구원 – 줄탁동시(啐啄同時)
그러다 자신의 상황과 정반대인 예수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삭개오에 비하면 내세울 거라곤 전혀 없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지지와 동경을 받았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슈퍼스타처럼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응원을 받았습니다. 그의 발언은 혁명적이었고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었지만 상류층의 일부 사람들도 그를 따를 정도였습니다. 삭개오는 ‘무엇이 그를 따르고 지지하게 만드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었지만, 막막한 현실에 낙담했던 그에게 예수는 무언가 변화를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주위로 구름 떼같이 몰린 인파를 헤치고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가 오는 길목에 있던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많은 인파 속에서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예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어미 닭이 새끼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수 있게 도와준 것처럼 그를 불러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지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이것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과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야 살 수 있는데,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며 발버둥 칠 때, 어미 닭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네, 알의 이곳저곳을 부리로 콕콕 찍어주는 일입니다. 그러다 새끼병아리와 어미 닭의 마음이 맞았을 때, ‘탁’하고 알이 깨지며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자성어로 ‘줄탁동시’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보면, 삭개오의 행동은 알을 깨고자 하는 새끼병아리의 노력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것은 그가 그동안 자기를 팔아가며 번 것을 거의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돈, 세리라는 직업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했으며, 구원으로 채워진 자존감으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하며 내게 이뤄진 구원이라는 선물로 삶을 채워갈 거라는 확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후 더 많은 시간 동안 손가락질받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변한 모습을 거짓으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변화는 이미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현주 #예수와만난사람들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줄탁동시
* 위 글은 이현주 목사님의 '예수와 만난 사람들'을 교재로 진행된 수요성경공부 시간에 발표된 글입니다.
* 발표자는 허준혁 목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