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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찬양집회] 2025년 1월 5일 성탄절 둘째주일

  • 관리자
  • 2025-01-05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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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찬양집회를 기억하고 이 자리에 나온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무엇보다 항공기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따뜻하게 품어주셨으리라 믿고,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을 유가족에게 한없는 위로와 자비를 내려주실 거라 믿습니다. 우리도 이를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안 국제공항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고, 이를 도우려는 마음도 전국 각지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으면 그 손길과 마음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없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 모아졌으면 하고 바랍니다.

 

오늘은 성탄절 둘째 주일입니다. 성탄절은 모두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기독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큰 명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기쁜 탄생만을 기억하고 그 때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216절에 보면,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헤롯 대왕이 베들레헴과 그 주변 지역에 사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고 나옵니다. 뒤이은 18절엔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슬피 우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이의 탄생을 두려워한 불의한 지배자의 악행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도 그때 목숨을 빼앗긴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사고의 진상이 규명되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는지 알게 되겠지만, 이미 사고는 벌어졌고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 가족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가 그들과 함께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지난 2014년부터 끊이지 않는 참사를 겪으며 배운 것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참사를 둘러싼 수많은 뉴스가 쏟아져 나왔지만, 진실을 찾기보다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한 추측성 보도나 진실을 가리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보도로 인해 유가족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됐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아야 했습니다. 사회의 불합리와 불의로 희생당한 것은 국민이었고,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거나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고인과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일까지 벌어져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여전히 성숙한 국민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위로하고 도울까 걱정입니다. 수많은 위로와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사고를 정치적 싸움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역 혐오를 유발하거나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 이들을 볼 때, 그때 이후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듭니다. 특히나 그런 언행을 기독교 목사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오만 가지 욕이 튀어나올 지경입니다. 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는 착한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교회는 여전히 가난한 자를 돕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미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불의한 일에는 침묵했습니다. 오히려 불의한 편에 섰고 그들을 축복했습니다.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선한 일을 해도 정작 도움이 필요하고 불의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이 손을 내밀 때는 외면했습니다. 교회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아닌 교회 목사의 욕망이 결정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얼굴도 두꺼워져 당당하게 불의의 편에 서고, 그들을 옹호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도 헤롯 대왕은 자기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불의한 명령을 정당화했을 것입니다. 그 옆에 헤롯 대왕을 섬기던 유대 귀족들은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내리고 지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죄의 대가가 곧 그에게 닥칠 것을요. 최근에 본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인민에겐 죄가 없다. 죄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에게 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죽임을 당한 이들을 품어주실 것이고, 죄를 지은 자들에게 분명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아까 읽은 마태복음 218절에서 슬퍼하는 이야기의 원자료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다음 구절인 예레미야 3115절 말씀입니다. 여기서 라마는 유대 사람들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가는 길, 베냐민 지파의 땅입니다.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목숨을 잃고 바빌로니아 유배지로 끌려가는 유대 사람들을 보며 슬퍼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이들의 슬픔과 괴로움은 다른 예언서에도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15절을 듣고 난 뒤, 오늘 본문 내용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떠십니까? 잘 이해가 됩니까? 예레미야 31장의 배경은 유대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을 무렵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예레미야의 위로가 그들에게 가 닿았을까요? 15절의 끝부분은 그 답을 알려줍니다.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 그들에겐 어떤 위로도 닿지 않았습니다. 슬픔과 괴로움으로 뒤덮인 그들에게 사람의 말과 위로는 그들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유대가 회복될 것이며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던 이들이 돌아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한이 없습니다. 유대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강대국의 신을 믿었으며, 하나님이 가르친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어겼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지배 아래 있던 히브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빌려주신 땅을 내 땅이라 착각했고, 하나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일을 내가 이뤄낸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도 하나님의 힘이 아닌 내 힘 때문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이 착각이라는 죄의 끝은 멸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그들을 품어주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대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에게 유대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목자를 자처하시고 돌아온 사람들이 시온 산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고 온갖 좋은 선물이 다가와 그들을 위로해서 많은 곡식을 품는 물 댄 동산 같아질 거라고 말합니다. 처녀가 춤을 추고 젊은이와 노인들이 즐거워하며 근심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고 알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슬프고 괴로운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가 함께하길 빌고 또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믿어서 안전하다고 우쭐대는 것은 유대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었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과 죄를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보잘것없이 작고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의 도구로서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천둥, 번개처럼 한순간에 이루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에 시간은 더디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뿐 아니라 다른 이웃 민족에게도 퍼졌습니다. 당시 예레미야의 선포를 들은 그들은 웃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선포는 이뤄졌고,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에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을 읽으며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모두에게도 내리며 그것이 우리에게 현실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며, 그 기도는 내 욕망과 바람으로만 차 있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생명과 평화와 정의가 펼쳐지기를 바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이뤄지는 하나님의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이뤄지길 소망하며 한 주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함께 거둠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설교자 : 허준혁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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