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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찬양집회] 2024년 2월 4일 주현절 다섯째 주일

  • 관리자
  • 2024-02-0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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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후찬양예배를 기억하고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화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입춘입니다. 봄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찬 바람이 매섭고 얼음이 언 곳도 있는데 무슨 봄이냐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봄이 이렇게 시작된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지난주, 저는 서울북노회에서 진행한 신년 목회자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세미나 장소인 제주도에는 이미 벚꽃이 피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간 날에 눈보라가 치고 추위가 다시 매서워졌습니다. 그러니 벚꽃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때를 잘못 만나 너무 빨리 생을 다하게 된 게 아닌가 싶어 속상했습니다. 그날 저녁, 다른 목사님들과 식사 자리에서, 이제 자연이나 작은 생명들이 이런 이상기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질 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오히려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음성일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사역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1장 처음에 누구의 이야기가 먼저 나옵니까? (대답 기다리기) 에이, 대답해 보세요. 성경이 있으신 분은 직접 찾아보시고요. 오늘은 질문을 자주 할 거니까 열심히 답해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누가 가장 먼저 나왔나요? , 맞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귀족 사제 출신,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음, 엄격한 금욕 공동체-에세네파,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 이스라엘의 지배계층과 대립 ) 그런데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 이야기 앞에 세례요한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이 세례요한이 벌인 일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은 병을 고쳤습니다. 세례를 준 것과 병을 고치는 일은 분명 다르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면을 들추어 보면 이 두 행위는 하나의 접점과 만나게 됩니다. 그 접점은 바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혔던 죄입니다.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인으로 정죄하며 이들에게 회개를 강요했습니다. 성전에 속죄 제사를 드리게 했고, 제사를 드리려면 깨끗한 제물과 헌금이 꼭 필요했습니다. 성전에 돈이 모여들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스러운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지배계급은 회개와 제사를 이유로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고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세례를 베풂으로, 병을 고침으로 그들의 고통을 줄여주거나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이는 사두개파나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기에 지배계급의 권력을 무너뜨리려는 불경한 행동이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거나 병을 고치는 일을 계속했으며, 사두개파나 바리새파 사람들의 위선도 크게 비판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의 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을 혼내는 이야기나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권력자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 살았고 구원의 확신을 마음에 품고 마음껏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며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세례요한과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은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오늘 성서일과에 마가복음과 같이 등장하는 본문은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초반부와 달리 2이사야로 불리는 40장의 말씀은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이전까지는 그들의 죄로 인해 바빌로니아에 멸망했다는 비판과 질책이 주를 이뤘다면, 40장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입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타국에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이 남았을까요? 솔로몬이 지었던 예루살렘 성전도 모두 불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 고향과 거기서도 살지 못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강대국에 끌려와 사는 신세로 어떤 희망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2이사야는 절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 되묻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일깨우고, 그가 다시 우리를 지키는 분이 되실 거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오실 그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아주 소극적이며 무책임한 말로 들립니다. 이스라엘에 바빌로니아 같은 제국이 무너질 거라는 상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의 마지막에 변절한 사람들 대부분이 일제의 멸망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정말 그들이 기다리기만 하면 됐을까요? 빠진 게 하나 있습니다. 뭘까요? (기다리기) 회개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긴 죄를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이들이 회개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회개를 요구했지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만약 회개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다르게 흘렀을지도 모릅니다. 회개는 옷만 바꿔 입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반대로 걸어야 하기에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걸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이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가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도 바로 하나님이 요구한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거나 바뀌지 않았고, 지금 나쁘고 악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결과입니다.

 

어릴 때, 우린 틀린 그림 찾기라는 게임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유심히 찾아 옆 그림과 틀린 점을 찾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틀린 그림이라기보다 다른 그림이 맞습니다. 언뜻 보면 정말 똑같아서 찾지 못하고 끝날 때도 많습니다. 우리 역시 교회를 벗어나면 비기독교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옷차림도 비슷합니다. 비슷하게 행동하고 다른 점을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비기독교인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렵다면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앙으로 인한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바뀌라고 말씀하십니다. 매주 예배에 출석하고 헌금을 내고 봉사하는 모든 일이 의무적으로 일어나는 거라면, 예수님은 그 행동이 단연코 의미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일로 인해 내 삶이 바뀐다면 그때 의미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회개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 산다면 나쁘고 악한 이스라엘처럼 되지 말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똑같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곳에 오실 때, ‘다른 그림 찾기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너희가 저들과 무엇이 다르냐?’라고 물으시면서 말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함께하며, 하나님 나라 사역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의 지배계급,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과 다른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2이사야는 회개하지 않으면서 절망에만 빠져 있던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시 오실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분명히 다른 점을 보았고, 2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이스라엘이 그날을 기다리면서도 회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회개와 변화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바와 그때를 기다리는 것은 기독교인인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와 달리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고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회개와 변화는 중대하며 시급합니다. 오늘의 두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미리 보고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쁘고 악한 나라가 되었고, 앞장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을 나쁘다고 욕했지만, 그 모습이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비교하니 우리가 욕했던 그들과 무엇이 다를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설 연휴를 지나고 나면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므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 다른 그림 찾기 하지 않고도 , 네가 나를 따르는 사람이구나, 네가 내 자녀구나.’라고 아실 수 있게 우리에게 삶의 변화가 있기를 두손 모아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설교자 : 허준혁 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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