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후찬양예배를 기억하고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평화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생각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분들과 추위에 제때 대비하지 못해 떨고 있는 분들입니다. 또, 아직도 불의와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기쁨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난 주일부터 월터 브루그만과 함께 하는 대림절 묵상이 진행되고 있는 거 다 아시죠? 매일 새벽 6시에 유튜브 ‘한남교회’에 업로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이 시기에 한 신학자의 탁월한 성찰이 우리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새벽이 아니어도 좋으니 꼭 시간 내서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대림절이 그저 예수님의 생일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질문하고 생각하며 또, 묵상하고 결심하며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선물 받는 날로 여기고, 어른들은 기분 좋은 휴일쯤으로 여기는 성탄절. 어떠십니까? 제겐 그 묵상이 성탄절과 대림절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우리에게 대림절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전조(前兆)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을 보면, 어떤 일이 생길 기미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급작스럽게 생기면 놀라고 당황하지만, 이를 예상했던 사람들은 대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상할 수 있는 전조가 보이면 누구나 준비할 수 있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조를 빨리 알아차리면 병에 대한 처치가 빠르지만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나중에 큰 병으로 이어져 낭패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몸이 내는 소리를 잘 듣고 전조를 세심하게 살피면 큰 병을 미리 막을 수 있습니다. 최근 강연으로 유명한 김창옥 씨가 알츠하이머 의심 진단을 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는 최근 자꾸 숫자나 사람의 얼굴을 까먹는 모습을 보고 병원을 미리 찾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요청받습니다. 큰 병을 대비하기 위한 전조를 살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전조는 앞으로의 일을 미리 알려주는 의미 있는 현상입니다.
오늘 성서 일과의 성경 본문 중 말씀 본문은 마가복음 13장입니다.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고적 설교라고 불리는 부분입니다. 읽은 건 마가복음이지만, 우리는 두 시대의 상황을 떠올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4명의 제자에게 이야기한 때와 마가복음이 쓰인 때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때를 살펴볼까요? 예수님은 네 제자에게 성전이 무너질 거라 말씀하시며, 이때 수많은 거짓 예언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또한, 전쟁 소식과 지진과 기근 같은 재앙도 예언합니다. 그럼에도 기쁜 소식 즉, 복음은 널리 전파될 텐데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슬픔을 넘은 비극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장 크게 닥칠 환난에 대해 예언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가장 큰 비극 같은 환난이 지난 후에 인자가 오십니다.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는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선택된 사람을 불러 모을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된 사람은 비극을 맞이한 사람들, 비극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던 이들입니다. 흐를 눈물도 남지 않아 퀭한 눈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던 사람들이 인자의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예언자의 유혹에 속지 않았고,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품고 환난을 견뎌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준비했기에 인자의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이 쓰였을 때는 어땠을까요? 이들은 아마도 성전의 파괴를 눈으로 직접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유대의 상징이자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고 불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이제 곧 종말의 그날이 올 거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유혹할 거짓 예언자가 나타나고 강대국 로마와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들을 희생양 삼아 옥죄고 핍박하러 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맞아서 신기한 게 아니라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마가복음을 쓴 사람은 예수님의 예언을 전하며, 그들에게 절실하게 전해주려는 메시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고 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성전이 불타 무너지고, 막을 수 없는 어둠이 덮쳐오는 그 순간, 그들을 견디게 할 한 줄기의 빛이었습니다. 그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을 믿고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복음 전파라는 사명을 지닌 채 살아남았습니다.
이 두 상황 속에서 이들은 어떤 태도를 가졌던 걸까요? 28절에서 37절까지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화과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잎사귀를 늦게 내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이미 여름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통해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조를 잘 살피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여행을 떠나는 주인과 종의 이야기를 통해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니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좋은 사람들이나 안 좋은 사람들이나 그렇게 여깁니다. 상황이 바뀔 것에 대한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목숨을 거두어 가시는 줄도 모르고 늘어난 소출을 보관할 창고를 늘릴 생각에 마음이 들뜹니다. 누가복음은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사람이 이와 같다고 가르칩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하나님께 들었다거나 자기에게만 알려주셨다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현혹해 그들의 이익을 취하거나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그때를 알려는 이들의 목적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그 뜻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순종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다가 그때가 되기 바로 전에 회개하겠다는 나쁜 마음이 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때가 언제인지 계산하거나 알려고 하지 말고 오직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떠난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조바심 내지 말고 늘 깨어서 준비하는 태도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제자들에게나 생존과 믿음의 위협을 받은 마가 공동체에게 모두 적용되는 가르침입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종말의 때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를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믿으며 종말의 전조를 살피고 깨어 있어야 함을 배웁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 모습과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야 할 젊은 청년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예수님의 예언이 지금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민족 간의 차별과 혐오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는 데다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이 돌아 사람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멀리 보지 않아도 우리 주변만 봐도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른 세대와는 또 다른 고난과 역경이 그들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이런 환경에 놓인 청년들을 지지하고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MZ라고 구분하고 비판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젊은이들이 외국인 노동자가 하는 일을 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참 아픕니다. 미래를 계획하는 상황에서 힘든 일을 하는 것과 미래가 전혀 예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펼쳐진 상황을 젊은이들이 전조로 여긴다면 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요?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지지하고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의 어른들이 살았던 때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힘들 것입니다. 삶의 돌파구를 찾는 일도 그들의 몫입니다. 어른들이 찾아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힘들어 지친 어깨에 잔소리를 얹지 말고 발이라도 가볍게 걸으라고 따뜻한 응원의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펼쳐진 상황은 미래의 전조입니다. 청년들은 전조가 예견하는 미래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이 미래에 잘 살아가도록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응원의 말을 건네는 것은 어떨까요? 이렇게 시작된 따뜻함이 주위로 퍼져나가 예수님의 예언을 마음에 품고 사는 기독교인의 삶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언자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이를 배우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인자가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는 게 아니라 신앙의 눈을 떠서 자기와 주위를 세심히 살피며 고난받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청년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가장 낮은 이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작은 선행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내 주변이라도 나의 선행으로 인해 조금은 따뜻해질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 주위가 조금은 따뜻해지는 우리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