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31일(4월 1일 수)
그리스도인의 경제정의 / 마가복음 12:41~4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불교의 ‘빈자일등(貧者一燈)’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입니다.
사실 건강한 종교라면 신도들이 바치는 모든 물질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야 하고, 신에게 바쳐진 것이므로 거룩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2.
첫 번째로는 많든 적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잘 나서, 내가 남들보다 더 노력을 많이 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내 것이 되고 맙니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서 얻었다고 할지라도 땀흘린 만큼 거두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내가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이니 하나님의 것이라고 성별해서 드리는 예물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는 것이지, 내 것의 일부를 드린다는 심정으로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를 했는가에 연연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3.
두 번째로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은 모두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과부의 생활비가 모여 교회의 재정으로 사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예물이 어떻게 쓰여져야겠습니까? 허투로 쓰여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실하게 원하시는 곳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근래에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교회재정의 많은 부분이 교회자체를 유지하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선교비나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되는 것보다 교회를 치장하고, 유지하고 확장하는데 필요이상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과부의 헌금을 남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하게 바쳐진 예물일지라도 귀한 곳에 사용되지 않으면 바친 손길이나 쓰는 손길이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예물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에 사용된다면 성령을 훼방하는 죄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4.
도시교회와 농어촌교회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간의 격차가 극심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도시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농어촌교회의 희생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농어촌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다녔던 이들이 자라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면서 도시교회의 대형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농어촌교회는 농촌인구의 고령화와 일자리의 부족으로 인해 늘 그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농어촌교회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가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도시교회나 큰 교회에서는 농어촌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지원들을 한다기보다는 시혜적인 차원에서 흉내나 내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정의"가 실현되려면 교회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모든 재정이 투명해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나눠져야 합니다.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에 빠져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린 예물을 '개교회의 것'으로 여기는 한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정의는 없는 것입니다.
5.
세 번째로 하나님의 것으로 성별하고 남은 것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와 함께 헌금했던 부자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 하루 루 렙돈으로 살아가는 과부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자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드린 예물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몫을 드렸다 생각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성별하여 바치고 남은 물질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축적해 놓고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검소하고 조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감으로 오히려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부자들의 헌금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자들의 헌금은 쉽습니까? 많이 하는 것이 당연합니까? 아닙니다. 과부처럼 정성껏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부자들 역시도 과부의 심정으로 바칠 때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고, 양이 아니라 정성입니다. 모두 귀한 예물이요,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할 일입니다.
7. 새기고 묵상하기
◾헌금이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과부의 심정으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헌금입니다. 모든 헌금은 과부의 마음으로 드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의 헌금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경제정의’입니다.
말씀요약과 한 문장의 기도
p.s) ‘코로나19’가 더 확산되지 않고 진정되게 하시고, 한남공동체가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속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교우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