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7일(3월 16일 월)
나를 넘어선 시선 / 마가복음 7:24~37
1.
두로 지방은 이방 영토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에 머무는 동안 예수님의 행적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이들(음해하고자)로 인해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 시선을 피하고자 이방 지방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땅을 더럽게 생각하여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두로 지방은 대대로 원수지간인 가나안 족속의 땅이었으므로 그곳에서는 잠시 숨어서 휴식을 취하실 수 있을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2.
그러나 그곳에서도 조용히 숨어계실 수 없었습니다(24).
이미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어떤 여자’가 나왔습니다. 그 여인은 수로보니게에서 태어난 헬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서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 달라고 간청합이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3.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을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녀’는 물론 ‘유대인’이요, ‘개’는 ‘이방인’입니다. 이방인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까요?
이야기의 결론을 다 아는 우리는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험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test(시험)’이고, 하나는 ‘temptation(유혹)’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것은 ‘temptation’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은 이 여인을 ‘test’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4.
‘상 아래 있는 개들’이 의미하는 바는, 경멸하는 의미에서의 ‘개’라기 보다는 오늘날 ‘반려견’으로 키우는 애완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유대인들이) 먹기 거부한 빵(복음)은 개(이방인)에게도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제자들에게 주시기 위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없으셨기 때문에 런 의미로 예수님의 대답을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5.
‘개가 된들 어떠리!’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향한 사랑은 ‘개가 된들 어떠리!’의 사랑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모두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에 있어 유대인들이 이방인보다 우선순위에 있음을 이 여인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부스러기’만으로도 충분히 살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부스러기만으로도 자신의 모든 충족을 채울 수 있으며, 예수님의 큰 능력이 아니라 부스러기만한 능력만 행하셔도 될 것이라는 큰 믿음을 여인은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녀는 딸의 병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6.
두로 지방에서 다시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호수에 오셨습니다. 이 여정을 살펴보면 의도적으로 먼 길을 돌아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전도를 하셨는지, 헤롯을 피해 먼 길로 오셨는지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바리새인들이나 예수의 반대자들이 너무 살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좀 누그러뜨리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7.
이번에는 사람들이 ‘말 더듬는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언어장에가 있는 사람이지요.
‘에바다! = 열려라!’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말씀으로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 특이한 행동을 하십니다.
그 치유법은 이렇습니다.
‘두 귀속에 손가락을 넣는다. 그 손가락에 침을 뱉는다. 그의 혀에 댄다.’
참으로 비위생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아마, 요즘 이렇게 행동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병이 나았으니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왜 그랬을까요?
8.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인간의 이성적인 상상’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해와 상식을 초월하는 그 무엇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거룩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치유의 기적에서 그 거룩한 것이 우리가 생각할 때 참으로 ‘더러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육신은 건강한지 모르나 많은 이들이 눈 멀고, 귀 멀고, 혀가 어눌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 신천지 같은 사이비에 빠지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하는 말은 청산유수지만, 그 말은 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9. 새기며 묵상하기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개가 된들 어떠리’하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이라고 경계하고 미워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말씀요약과 한 문장의 기도
p.s) ‘코로나19’가 더 확산되지 않고 진정되게 하시고, 한남공동체가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속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교우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