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12일(3월 10일 화)
고침을 받은 사람들 / 마가복음 5:21~43
1.
예수님께서 거라가인 지방에서 다시 배를 타고 맞은 편으로 가셨습니다.
그 맞은 편은 ‘가버나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고, 그 중에는 회당장 중 ‘야이로’가 있었습니다. 당시 회당장은 사회의 지도자급 유력한 인사였고, 회당업무를 관장하고, 예배를 준비하는 책임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평신도였지만, ‘회당장’은 예배 사회를 보면서 기도나 성경봉독, 강해 등을 맡길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가 예수님 앞에 나와 ‘발 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실로 파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파격적인 순종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당히 순종하는데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파격적인 순종을 하지 않아도 일상이 이어지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파격적인 순종’도 소중하지만, 일상이 평온할 때에도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3.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요청에 따라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런데 도중에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에워쌓고, 그 와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온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밀치는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자가 그 여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4.
그런데 다른 점이 있었지요.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병자는 죄로 인해 병이 생긴 것이라 생각했기에 부정한 자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여인은 12년 동안 엄청난 고통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혈루증을 앓고 있었기에 남의 옷을 만지는 일은 정결법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여인이었으니 의도적으로 무리 가운데로 가서 몰래 예수님의 옷을 만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예수님이 알았습니다.
여인이 옷에 손을 대자마자 나은 것을 직감하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였습니다.
그냥 모른 채 하셨으면 좋으련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하십니다. 이때 여인은 ‘두려워 하여 떨며’ 그의 앞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서의 두려움은 ‘공포’같은 것이 아닌 ‘경외감’과 통하는 단어입니다. 혼날까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병이 나은 것도 신비스러운데, 옷을 만진 것까지 아신 예수님에게서 ‘절대자’를 만났을 때와 같은 경외감을 느낀 것이지요.
5.
이 일로 인해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다”고 보고합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을 수고스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야고보의 형제 요한만 데리고 급히 회당장의 집으로 갑니다. 세 제자는 변화산, 겟세마네 동산에도 함께 감으로써 중요한 일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6.
회당장의 딸을 본 예수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는 아이를 깨운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잔다’는 표현은 ‘죽었다’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음은 ‘일시적인 잠’으로 해석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자는 것이요(고전 15:51)라는 말씀 등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뜻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비웃습니다.
7.
’달리다쿰‘ - 아이야, 일어나거라(아람어).
아람어는 주후 1세기에 이스라엘에서 통용되던 말이었으며, 예수님과 제자들이 일상 언어로 사용하던 말입니다. 그당시 성경을 읽을 때에에는 히브리어가 사용되었고, 지식적인 내용은 헬라어였고, 공통언어는 로마의 식민지인 까닭에 라틴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상이 언어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에 주목을 합니다.
우리의 일상,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와 다르지 않으며, 당시에 고상한 언어로 여겨지지 않던 언어로도 충분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훼손되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8.
설교의 언어를 생각해 봅니다.
설교는 신학적인 용어나 전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일상의 언어로 녹여서 전해져야 합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영어, 헬라어 등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도 자주 사용하는 경우를 봅니다. 진리의 진수를 아는 이들은 일상의 언어로 진리를 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9. 새기며 묵상하기
◾딸의 병을 고친 야이로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자의 공통점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기적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온갖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달리다굼(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일어나십시오.
말씀요약과 한 문장의 기도
p.s) ‘코로나19’가 더 확산되지 않고 진정되게 하시고, 한남공동체가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속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교우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