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9일(3월 6일 금)
비유의 말씀 / 마가복음 4:26~34
1.
거듭 강조하여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비유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깁니다.
단지, 어떤 교훈을 주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가 이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비유’이므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모두 맞을 수도 있지만, 어느 해석이 완벽해서 100%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인간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하나님 나라’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적인 이해의 영역에 갇히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듯, 그래서 경외의 대상이듯, 하나님 나라도 그렇습니다.
2.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하십니다.
썩은(죽은) 씨앗이 아니라면, 흙을 만나면 당연히 싹을 내고, 이삭을 내고, 추수할 때가 이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이 하나님 나라라니 선뜻 이해가 가십니까?
고린도전서 3장 6~7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농부는 기대를 하고 씨앗을 땅에 심습니다. 그 기대는 반드시 ‘결실’을 맺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게 농부 마음대로 되질 않습니다. 수많은 것들이 작용하고 영향을 줍니다. 농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것이지요.
3. 생명의 씨앗을 품은 사람
‘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한 생명의 씨앗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씨앗을 품고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일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생명의 씨앗이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추수할 때가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나의 노력과 수고도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실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지만, 당연히 씨뿌리는 수고와 추수하는 수고, 그 외의 수고가 필요함을 물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는 설령 내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누군가에 의해 뿌려지게 되어있으며,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만들어 가는 주권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4. 겨자씨 비유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지만, 통속적으로 ‘가장 작은 씨’로 상징되는 것입니다. 겨자는 일년초입니다. 쌈으로 먹는 겨자, 맞습니다. 그 겨자입니다. 같은 종에 해당하는 배추나 무우도 오래두면 줄기가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제주도의 유채도 그렇지요. 토양이 좋고 날씨가 잘 맞춰주면 줄기가 사람 키보다도 더 큽니다. 당연히 새들이 깃들만 하지요. 그런데 비유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라고 했지요? 그러면 이 말씀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5. 겨자씨 한 알
마태(13:31~32)와 누가(13:18~19)에는 겨자씨와 누룩 비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에는 겨자씨 비유만 있습니다. 이 비유는 작은 시작이 큰 마지막을 가져 온다는 대조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엄청나게 자라나게 될 것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는 일종의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해설도 덧붙여 하시지만, 제자들 조차도 다 깨닫지 못합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비유말씀을 다 깨달아 알았다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못에서 ‘누가 크냐?’고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팔거나 부인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순간까지도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6.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천국’으로 인식하는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이 곳’이 아닌 ‘저 곳’ 혹은 ‘현세’가 아닌 ‘사후세계’로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이용하여 성서를 사사로이 푸는 자들은 ‘ 지금 여기서의 삶’을 부정하게 합니다. 지금 이 땅의 삶을 부정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누리라고 하신 모든 것들을 포기하게 합니다. 오로지 목적을 ‘죽은 후에 가는 천국’에 두고, 요한계시록의 상징숫자인 14만 4천 등을 문자적으로 들먹이며 유혹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기를 하나님 나라처럼 살아가라고 하시고, 그렇세 사는 이들을 불러 하나님 나라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여기서 저기로 자리를 옮기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영생관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아는 것(요 17:3)입니다.
7. 새기며 묵상하기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입니다. 비유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품고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죽은 믿음(실천이 없는 믿음)은 아무리 커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요약과 한 문장의 기도
p.s) ‘코로나19’가 더 확산되지 않고 진정되게 하시고, 한남공동체가 함께 예배하는 기쁨을 속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교우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