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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두려워하지 말라(이사야 43:1-7)

  • 관리자
  • 2017-08-03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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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두려워하지 말라(20170813 오후찬양예배)
이사야 43:1-7

찬양 : 물 가운데 지날 때에도 / 나의 안에 거하라

 

■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신 모든 것을 창조하시되,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대로 멋진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지금은 물론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도 주신 말씀이지만,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의 현재성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 먼 옛날에 주신 말씀으로 읽으면 그저 성서를 옛날이야기로 읽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주실 때 어떤 시대적인 상황이 있었는지를 살펴, 그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길 때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 너는 두려워 말라

 

당시 이스라엘의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3차에 걸쳐 포로로 끌려갔고, 그 사이에 조국으로 귀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하기를 원했지만, 주변 국가들의 반대와 한 핏줄이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재건작업이 쉽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기 120년 전에 이미 망해서 앗시리아의 혼혈정책에 의해 민족의 순수성을 상실했습니다. 이에 유다는 사마리아인들을 개 보듯이 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그들대로 한 핏줄이었던 유다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매몰차게 거절하자, 성전재건작업과 성벽재건 작업을 방해했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던 이들은 타향이나 조국이나 맘 붙이고 살 수가 없었으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며 주신 말씀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도 살아갈 때에 미래가 불투명해서, 현실적인 아픔 때문에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러주셨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를 구속하여 주셨다는 믿음으로 위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두려운 상황’에 빠진 이들에게 이 고백은 큰 힘을 줍니다. 저도 목사지만, 실의에 빠질 때가 있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게 하는 것은 ‘나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자녀요, 창세 전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라는 신앙고백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손해 보는 짓을 하지만, 그래서 친구 목사들에게도 지혜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그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고, 풍조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 물 가운데, 불 가운데 지날 때에도

 

‘홍해’와 다니엘서의 ‘풀무’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결국, 물이나 불이나 ‘인간의 한계’,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벽을 의미합니다. 이런 인생의 벽 앞에서 ‘끝났다’고 주저앉으면 그냥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벽 앞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면 본문 4절의 말씀대로 ‘내가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 하리니’하는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내어준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동시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의 동역자로 삼아주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회적인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두려움 속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 좌절과 절망 속에서 아파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비를 맞아주고, 우산을 받쳐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펼치십니다.

 

한남교회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데 한남교회가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조각하고, 교우들 간의 교제를 통해서 나의 모난 부분을 쪼아낼 수 있을 때 한남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 우리는 모두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4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여 사랑하였다’고 하십니다. 이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보배롭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선한 일을 할 때 손해 보는 것과 악한 자들에게 핍박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그것이 악한 것이라는 깨달음도 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저건 나쁜 일이야!’라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이유는, 그 나쁜 일과 충분히 싸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때에는 우리의 판단이 정말 옳은 것인지 하나님께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한계는 늘 자기의 선 자리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선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관계를 다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어떤 사안을 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가지론이나 양비론에 빠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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