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님의 사람아(2017년 5월 28일 교육부서 헌신예배)
디모데전서 6:11-12
어느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칠 때마다 이번에 하는 이 연주가 마지막이라는 숙연한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친답니다. 매사에 이렇게 정성을 다하니 그 연주를 듣는 사람들도 감명을 받고, 피아니스트 자신의 인격적인 성숙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피아니스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점심에 저는 아버님과 마지막 식탁을 나눴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식탁이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보다는 훨씬 더 정성스럽게 준비했을 것이며, 더 정성껏 드시게 했을 것입니다. 식사기도를 하시는 아버님의 그 기도가 마지막 축복기도인 줄 알았더라면 영상이라도 남겨두었을 것입니다. 오늘 하는 일이 내일도 여전히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을 마지막 날인 듯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 하나님의 사람아!”하고 부르며 피할 것과 좇을 것, 싸워야 할 것과 취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입니다. ‘내가 누구냐?’ 이것을 바로 알면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집니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그냥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자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1분 20여초의 짧은 동영상을 한 편 보신 후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동영상에서 보신대로 희귀병 중에 ‘뮤쿄다당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국내에 200여명의 환자가 있는데, 체내에 효소가 없어 육체와 정신이 퇴행하게 된다는 희귀병입니다. 점점 구부러지는 허리와 손, 작은 키, 그리고 일반인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외모를 가진 25세의 이산하 씨는 그런 희귀병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설령,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의미 없을까요? 이산하 씨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이 병을 앓았으며, 목사인 아버지는 이 아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고쳐주지 않으셨으며, 주변의 친구 목사님들은 아이도 부모도 너무 고통스럽기에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병은 고쳐지지 않았고, 이산하씨는 동영상으로 보신대로 25살 청년이 되었습니다. 희귀병에 시달리는 아들을 둔 것도 힘겨운데, 목회를 잘한다 하여 청빙하려는 교회에서는 아들의 희귀병 때문에 부담이 된다며 청빙을 보류하고, 심지어는 목사가 아들이 병도 못 고치면서 교인들의 병은 어떻게 고치느냐며 상처를 줬습니다.
제가 이 일을 이렇게 소상히 아는 이유는 이산하 씨의 아버지가 제1년 선배이신 이윤하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25년간 이런 일이 지속하였기에 저도 잊고 살았는데, 어제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이산하씨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정체성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실패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음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주겠다는 생각이 좌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만으로 그는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이 자기 정체성,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 하나님의 사람은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싸움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와의 싸움이요, 또 하나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하여 하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싸워야 합니다. 이 싸움이 선한 싸움입니다.
세상은 자꾸 자기를 세우라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 살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은 뒤로해도 좋다고 합니다. 물론, 숨김없이 그대로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 정도로 포장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복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잘 믿는 것과 하나님을 잘 믿으니 복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삶의 우선순위, 이것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를 잘 분별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러한 싸움을 할 때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겠습니까? 오늘의 싸움이 마지막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자기와 싸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삶의 우선순위를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두는 사람입니다.
▪ 하나님의 사람은 둘째,
순종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적인 이해의 차원에서, 귀를 즐겁게 하는 차원에서만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싸움, 순종의 싸움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판단의 기준이 자신의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잣대가 되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설 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하는 사람, 순종의 싸움을 하는 사람, 그 싸움에 온 힘을 다하는 사람,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분노를 잊고 살아갑니다. 불의한 일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말씀입니다만, 참으로 무서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혼과 영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의 깊이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굴복하는 싸움, 그것은 기쁜 일이요, 참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지만 험한 길이요, 좁은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판단과 내 뜻을 접어야 하는 일이기에 힘든 일이고, 무엇보다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려면 성경을 깊게 묵상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겁내지는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신비해서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신학공부를 한 사람이나 아니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새기는 이들에게 깨닫는 지혜를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 쉐마, 이스라엘!
신명기 6장 5절에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이것이 “쉐마, 이스라엘”입니다. 이 쉐마는 신앙교육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너희는 들으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봅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허락하신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라, 온 맘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교육부서의 일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열매를 쉽게 얻을 수는 없지만, 과정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과정이 없으면 열매가 맺히기 전에라도 즉, 백 년이 이르기 전에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지 못한다면, 젊은 세대가 끊어진다면 한남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교육이라는 것이 ‘성경 말씀’만 가르친다고 되지 않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세대들이 공유하는 추억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아주 오랜만에 박찬흥 집사님과 황영길 집사님, 오운석 집사님, 서정택 집사님과 한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눴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분들이 한남교회에서 자라나면서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교회는 젊은 세대와 아이들이 북적거려야 활기가 도는 법입니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가정이 되려면 어린 아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남교회에도 교육위원회가 있습니다. 위원장이신 김형민 장로님을 위시하여, 권오성 교육부장, 새가족부 부장이신 유지은 권사님, 위원이신 제직들이 있습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통해서 한남교회 교육위원회가 활성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너 하나님의 사람아!” 제목처럼, 한남교회에 속해있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