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 얼마나
이사야 42:1-9
오늘 오후 예배는 찬양예배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랑, 내가 주인 삼은, 그 사랑 얼마나’라는 세 곡을 불렀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찬양예배를 준비하면서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다양한 악기와 다양한 연령층 20여 명으로 구성된 찬양단이 음향시설을 잘 갖춰놓고 매 주일 오후에는 전 교인과 함께 한목소리로 찬양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뜨거움이 우리의 골수를 쪼개고도 남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는 그런 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 중에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몸소 당하셨을 뿐 아니라, 보통의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렇게 가장 깊은 상처를 받으신 분이시기에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그 상처는 인간을 치유하는 묘약이 되는 것입니다.
남왕국 유다는 하나님 앞에서 정의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다가 심판을 당했습니다.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살아갑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이스라엘의 상황을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상황에 이르게 원인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정의를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정의라는 말은 개인적인 차원뿐 아니라 대사회적인 차원을 포함합니다. 오늘 우리는 98주년 3.1절 기념주일 예배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상한 갈대요,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상황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저는 이것을 정의의 부재라고 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들이 만연하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에 급격하게 부흥기를 맞이한 한국교회도 대사회적인 정의에 문제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개인구원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왜곡된 신앙인들을 많이 양산해 냈습니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이 치르는 홍역도 이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정의’라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까닭에 이렇게 ‘상한 갈대’와 ‘흔들리는 등불’과도 같은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이 나라를 바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정의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라는 말씀은 정의롭지 못한 모든 삶과 결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주 수요예배 때, 출애굽기 강해 18번째 시간에 출애굽기 19장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계약을 맺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옷을 빨라!’고 요구하십니다. ‘옷을 빤다’는 것은, 그동안 몸에 밴 노예습성과 우상숭배와 애굽에서 몸에 밴 타성들을 벗어버리고 결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하나님 아닌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나님보다 앞서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삶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정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 사랑’이라는 찬양에 담겨있는 신앙고백입니다.
▪ 표현할 수 없음
이런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깊이를 우리는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표현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절대적인 존재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지만, 어린아이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오시고, 배운 사람뿐만 아니라 배우지 못한 이들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가난한 이들도 부자들도 빈부의 구별이나 남녀의 구별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규정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그 어떤 언어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 알 수 없고, 다 표현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끝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찬양한 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주인 삼고 살아가는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시고, 하나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면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상한 갈대와도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은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 삶의 회복을 경험하시면 우리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 함께 이런 고백의 내용을 담은 찬양을 드리면서 기도하겠습니다.
‘다 표현 못 해도……. 내가 주인 삼은……. 그 사랑’
(김민수 목사 찬양이도하며 말씀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