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기타설교

자기 돌아보기(마태복음 7:3-5)

  • 관리자
  • 2017-02-04 10:52:00
  • hit952
  • 222.232.16.100

자기 돌아보기
마태복음 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개역성경).

 

네 이웃의 얼굴에 묻은 얼룩은 보면서, 자칫 네 얼굴의 추한 비웃음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네 얼굴이 멸시로 일그러져 있는데, 어떻게 뻔뻔스럽게 ‘내가 네 얼굴을 씻어주겠다’고 말하겠느냐? 이 또한 동내방네에 쇼를 하겠다는 사고방식이며,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남보다 거룩한 척 연기를 하는 것이다. 네 얼굴의 추한 비웃음부터 닦아내라. 그러면 네 이웃에게 수건을 건네줄 만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메시지).

 

▪자기 합리화라는 병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데 그 사람의 자리에 앉으면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수가 있습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이 상황에 해당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우리 삶에 종종 일어납니다. 그 이유는 ‘자기 합리화’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고,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자기합리화과정이 없으면 실행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그 일을 하고, 그다음 단계는, 그 일에 대해 합리화하면서 그것이 나쁜 일이 아니고, 정당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 자기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일이 잘되면 “내가 옳았어!”라 하고, 일을 그르치면 “세상 혹은 네가 문제야!”라고 합니다. “나 때문이야!”가 아니고 “너 때문이야!”라는 것은 대부분 사람의 공통적인 성향입니다.

 

▪자기 성찰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단계 성숙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들 대부분이 남의 문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기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자기 성찰’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남을 보듯 자기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기대를 하거나 가타부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아는 것이지요. 자기의 삶 제대로 살아가기도 벅차다는 것을 깨닫고, 그 속에서 얻은 빛나는 지혜들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스님의 주례사』로 유명한 법륜 스님의 편지는 카카오스토리에 올리면 순식간에 +999가 되고, 그 편지를 구독하는 이들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저도 그 편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스스로 그렇게 사는 것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추구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묵상 속에서 얻는 빛나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이 『무소유』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고, 김재준 목사님은 ‘신앙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들이 100% 그렇게 살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이 옳았기에 그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자기 합리화’에 능숙한 분들이 아니라, ‘자기 돌아보기’에 능숙한 분들입니다. 자기의 생각에 파묻혀 객관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공평한 잣대로 쟀던 것입니다.

 

▪내가 너라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빠른 길은 ‘상대방의 입장 되어보기’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 합리화에 갇혀버리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도 나도 아닌 제삼자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까지 생각하며 어떤 일을 해나간다면 실패하는 일도 적어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티’와 ‘들보’가 나옵니다.

유심히 말씀을 보면, 형제의 눈에 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빼내야 할 티가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제 눈에 들보가 들어있어 티를 빼낼 수 없는 이가 그 티를 빼주겠다고 우기니 문제입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하겠다고 하니 문제입니다. 그러니 형제의 눈에 들어있는 티를 빼주는 일은, 먼저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뺀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의 순서입니다. 일의 순서는 먼저 ‘자기 돌아봄’입니다. 이것 없는 이들은 ‘외식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시지요?”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 아시지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아시지요. 그런데 뭘 알아달라는 것입니까? 자기의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것 아닙니까? 왜 억울합니까?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상대방이 자기를 괴롭히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자기는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이 자기의 열심을 짓밟으니까 억울한 거 아닙니까?

세상을 살면서 남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탓을 하지도 마십시오, 부모 탓을 하거나 자식 탓도 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내 탓입니다.’ 이것이 ‘자기 돌아보기’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쉽게 “하나님, 아시지요?” 하지 마시고, “하나님, 제 잘못입니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으십시오.

 

내 눈의 들보를 빼어내는 일, 그것은 아주 작은 티 같은 것들을 빼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야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작아서 아무 흠도 안 될 것 같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 같은 것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그 중 하나가 ‘자기 합리화’입니다. 조금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 합리화는 자기 속이기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순간, 들보가 지배하게 됩니다. 제 눈에 들보는 보이지 않고 상대방의 티만 보이는, 그래서 그것을 빼어내지 못하고는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정신병 같은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자기를 돌아보는 지혜로운 분들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면서 여러분 마음에도 새로운 기쁨의 싹들이 피어나길 바랍니다. 그 싹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풍성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봄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를 먼저 돌아보십시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