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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homologeo) - 마태복음 16:13-20

  • 관리자
  • 2017-01-22 10: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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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homologeo)
마태복음 16:13-20

 

교회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신앙 공동체라는 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신앙을 고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이나 정당이나 학교 등과 교회는 다릅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믿음의 선배들이 보배처럼 간직하는 신앙 고백문으로는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사도신경, 로마 신경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회가 함께 공유하는 가장 보편적인 신앙고백은 니케아 신경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한국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영향 때문입니다. 2세기 경에 만들어진 사도 신경을 9세기 칼 대제 때 서방의 모든 교회가 사용합니다. 이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시기에도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신경’은 말 그대로 ‘신앙 고백’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되겠습니다. 사도신경은 세례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세례 문답을 할 때 세례를 베푸는 집례자가 세례받는 자에게 던지는 질문의 방식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이런 형식이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한 번 받습니다. 그렇지만, 매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예배를 통해 매 주일 세례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즉, 매 주일 모이는 예배공동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경험을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신약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처음 접하는 ‘고백’입니다. 마태복음 16장과 마가복음 8장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가장 고전적인 신앙고백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이 고백에는 몇 가지 주목할 것이 있는데,

 

첫째, 고백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아가서 고백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물으셨을 때 비로소 신앙 고백을 한 것입니다. 신앙 고백은 내가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묻는 분이 먼저 있고 후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백은 먼저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예, 그렇습니다!”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같습니다.”라고 시인하는 행위를 헬라어로 ‘호몰로게오(homologeo)’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렇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에는 자신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 함축되어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어야 할 존재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호모로게오’라는 단어 속에는 ‘찬양하다, 감사하다’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고백’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일 뿐 아니라, 감사와 찬양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며,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 고백은 앎을 전제로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맹목적인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어림짐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예수님을 알고서 고백한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고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라는 사실은 몰랐을지라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고백한 것입니다.

 

신앙은 맹목적인 것이 아닙니다.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고, 하나님과 관련된 일, 신앙에 관련된 일을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님들 중에는 무조건 믿으라고 강단에서 외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이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깊이 알아야 우리의 신앙이 확고하고 견고하게 됩니다.

 

셋째, 고백적인 ‘앎’은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는 선물입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는 고백 속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신앙 고백은 단지, 인간의 지적인 탐구에 대한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비밀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보여 주실 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에서 사도 바울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눈이 멀었고, 다시 눈을 뜰 때에는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과도 같은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눈을 열어주신 것이지요. 그러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창(窓)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숨겨진 비밀을 알려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밝히시다, 알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해 주신 것이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일에 대해 베드로가 자랑해야 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찬양할 뿐이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신앙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늘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계시는 특별한 분들만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계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실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주십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설교 서두에서 ‘교회는 신앙 공동체’라고 말씀을 드렸고, 신앙 공동체는 ‘같은 신앙을 고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담보하고, 함께 부르는 찬양을 통해서 동질감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과 함께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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