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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함(디모데전서 6:3-10)

  • 관리자
  • 2016-12-17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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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함
디모데전서 6:3-10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번역본 네 개를 비교하며 읽었습니다.

개역성경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일어나 마음이 부패해져서 진리를 잃어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경건을 이익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며, 돈을 사랑하는 이들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하고, 그것은 경건에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가톨릭성경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단과 탐욕에 대한 경고’라는 제목으로, 다른 교훈과 다른 교리를 가르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교만해져서 깨닫지 못하고, 논쟁과 설전에 병적인 열정을 갖게 되어, 이런 현상은 정신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번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타나는 형태는 신심을 이득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심’은 개역성경의 ‘경건’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은 교만해져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질문과 토론에만 열중하고, 여기서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생기고, 종교를 한낮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므로 분쟁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의 종교는 개역성경의 경건, 가톨릭 성경의 신심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세상에 가져온 것이 없으니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만족하라고 합니다. 돈을 따라 살다가 신앙을 떠나서 극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다며 만족하라고 하라고 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라는 제목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이들의 정체를 드러내 보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무지한 허풍쟁이라서 시기와 비방과 소문으로 공기를 더럽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모함하는 말이 전염병처럼 퍼지면, 진리는 아득히 먼 기억이 되고 말 것이며, 이런 이들은 종교를 한밑천 잡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이 큰 유익을 가져다주며, 그런 삶은 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함이라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온 존재이므로 빈손으로 떠날 것이니 음식과 신발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라고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지도자는 얼마 못 가며 자멸할 것이라고 합니다.

 

번역본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가르치는 이들이 있으며, 이런 이들은 스스로 교만해서 자신들뿐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염병처럼 퍼지는 속성이 있어서, 진리와는 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에서는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이들의 ’정체를 드러내라’고 합니다.

 

왜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교만에 빠져서 진리를 상실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그 원인은 바로 ‘돈’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를 한밑천 잡는 수단으로, 이득을 얻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해서 자멸할 것이니, 그런 자들의 왜곡된 가르침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족하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인데, 지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삶을 ‘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한 삶’이라고 메시지에서는 표현했습니다. 아주 적절한 해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Simple Life,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삶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단순한 삶을 추구하다 보면 존재하는 삶이 보입니다. 소유하는 삶이 아니라 존재하는 삶과도 통하는 것이 자족하는 삶입니다.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많은 분 가운데에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교회를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형교회를 이용해서 한밑천 잡아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도 이것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기업인선교회’ 등을 만들어서 기업인들끼리 교류를 갖게 합니다. 마치 정치인들이 표 관리를 위해서 교적을 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주변에서 장사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에 교인이 되고, 교회는 교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삶,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자족하는 삶, 단순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 아니라, 물질축복의 맘몬신으로 하느님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몰려들지만, 진리는 아득히 먼 기억이 되어버린 현실, 그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 아닌지요?

 

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함, 자족하는 삶. 이것은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부터 시작됩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불행한 사람보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삶아갑니다.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언제입니까? 결핍의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가 아니라, 뭔가를 원하지만 가지지 못하는 때가 아닙니까? 이미 충분한데, 타인과 비교해서 끊임없이 더 가지려고 하고, 마침내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 소유한 것들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삶, 그것이 자족함을 모르는 이들의 불행이 아닌가요?

 

‘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함’, 이것은 머리로 인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종교는 뭐냐? 한밑천 잡는 수단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줄 하는 삶, 단순한 삶 가운데서 누리는 넉넉함을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더 나아가 그런 삶을 살지 못하도록 거짓 교설로 현혹하는 거짓선생들의 정체를 드러내 보이는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돈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로 인해 우리는 감사하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남교회에 속해있는 모든 분이 ‘단순한 삶 가운데 누리는 넉넉함’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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