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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요엘 2:12-14)

  • 관리자
  • 2016-11-05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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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요엘 2:12-14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는 ‘야드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야드바셈은 ‘기억’을 의미하는 ‘야드’와 이름을 의미하는 ‘셈’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 기념관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 정권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기념관 입구에는 히브리어로 ‘망각은 포로의 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문구가 돌에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 기념관에는 유대인이었기에 죽어야만 했던 150만 명의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관도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내부에는 어린이들의 희생을 상징하는 촛불들이 천정에서 바닥까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모관에 들어서면 희생당한 150만 명의 어린이 이름이 한 사람씩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옵니다. 어린이 추모관 뒤뜰에는 어린이들을 품에 안은 한 선생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코르자크란 선생님의 동상인데 폴란드의 작은 마을의 학교에서 근무하던 선생님이셨습니다. 독일군이 그 마을에 들이닥쳐 드문드문 섞여 있는 유대인 아이들을 끌어내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은 무서워 코르자크 선생님에게 달여가 매달렸습니다. 그러자 독일군은 코르자크 선생님으로부터 유대인 아이들을 떼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코르자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독이며 아이들과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코르자크 선생님은 유대인이 아님에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강제수용소까지 함께 갔고, 가스실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

주전 5세기경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적으로 재난을 당했습니다. 가뭄과 병충해가 전국적으로 퍼져 곡식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가축들이 들에서 먹을 것이 없어 울부짖었고, 예루살렘 성전에는 기쁨도 즐거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라도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는데 능력 밖이었습니다. 그때 요엘이라는 선지자가 나타나 국민 계몽운동을 벌입니다.

 

옛날에는 나라에 흉년이 들거나 가뭄이 극심하면 임금은 하늘이나 백성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부덕이라고 스스로 책망했습니다. 실제로 고대 부족공동체 부여에서는 고대 부족연맹체 부여에서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면 왕을 처형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같은 최소한의 양심조차도 없었습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 앞에서 한국 대통령이 취하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요엘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이렇게 전 국가적으로 재앙을 만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부패와 종교지도자들의 타락 때문이라고 외칩니다. 1장 13절에 ‘제사장들아, 굵은 베옷을 입고 슬피 울어라. 제단 앞에서 섬기는 자들아 통곡하여라!“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본부가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비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신뢰하는 종교를 물었더니 가톨릭 47%, 불교 38%, 개신교 12.5%였습니다. 5점 만점으로 할 때 2.62점입니다. 보통 3점 정도는 되어야 종교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형보수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이 신뢰지수를 더 떨어뜨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한 일들이 명명백백 드러나도 회개할 줄 모릅니다.

 

1. 요엘 선지자는 외칩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성경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너희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때 옷을 찢는 관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엘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회개, 보이는 회개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내적인 회개, 근본적인 회개, 진정한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면서 어느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까? 대체로 옷을 찢는 형식적인 단계 정도에는 이른 듯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아무리 수만 번 옷을 찢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엘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2. 회개란 무엇입니까?

 

단순한 뉘우침이 아입니다. 감정적인 개인의 심경 변화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개인을 넘어서 공적인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삭개오가 회개했을 때,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는 공적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회개하러 나온 이들에게 세례 요한은 뭐라 합니까?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공무원이나 국가지도자라면 백성을 수탈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회개며, 기업가는 노동자를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개인의 결단에서 시작하지만, 반드시 공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 낸 비극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사회가 만들어 낸 희생입니다. 그래서 이런 희생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 것입니다. 오늘 요엘 선지자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하는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회개만이 우리가 살 길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도우심의 손길을 펴실 줄 누가 알겠습니까?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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