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특권, 기도
요한복음 14:13-17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의 저자인 중세의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의 ‘간절한 기도가 주는 자유’라는 글에는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지극히 자비하신 하나님, 당신께 간구하오니 세상 모든 걱정에서 저를 보호하셔서 세상 걱정에 휩싸이지 않게 하시고, 육체의 많은 욕구로부터 보호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영혼의 모든 장애물로부터 보호하여 괴로움으로 마음이 파괴되지 않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세상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살면서 순간순간 육체의 욕구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걱정과 유혹에 빠지게 되면 우리의 영혼은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그 장애물을 지혜롭게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마음이 흔들려서 평정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판단의 능력이 흐려지고, 판단의 능력이 흐려지는 만큼 우리의 삶도 흔들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이별하실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8절에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견하십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떠난다고 하니, 제자들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주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가시는 길을 보여주시면 근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다.”고 하시니 예수님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고 서운해하시며, “나는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면, 이젠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에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예수님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많은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도와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 번째로, 기도는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는 통로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셔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면, 기도하십시오.
1. 기도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통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시행하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문맥을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요, 기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기도하는 이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잘되면 누가 기쁩니까? 자녀도 기쁘지만, 부모가 또한 기쁩니다. 부모는 자녀 덕분에 영광을 누립니다(한남찬양 8번 기뻐하시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기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자녀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자녀에게 복을 주십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이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데살로니가전서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일도 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15절 말씀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고,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 그것이 기도하는 삶입니다. 매사에 하나님께 묻는 것도 기도입니다. 중요한 선택을 할 때에도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 그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매사에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뜻을 물어가며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 삶의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요, 그런 점에서 ‘삶으로 드리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때, 더불어 살아가며, 우리보다 약한 이들을 배려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에 도와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때로는 도움이 필요할 때 자존심을 버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의 공동체 가족을 생각해 보십시오.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마지막 보루는 사랑하는 가족이요, 사랑하는 친구들입니다. 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도 있어야 온전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도 하는 것이라는 깊은 인식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자 할 때에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은 사랑하시고자 하는데에도 거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신 분들입니다. 그 사랑을 입고 살아가시는 분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한남교회에서 서로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평화와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3. 우리와 함께하시는 중보기도자이신 보혜사
삼위일체 하나님에 중에서 성령님을 우리는 ‘보혜사’라고 고백합니다. 성령님은 지금 우리와 함게 계시며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놀랍게도 오늘 본문은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 속에서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의 몸은 그래서 거룩한 성전이요,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고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먹는 것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생활 습관도 달라지겠지요. 건강을 지키는 일도 소중한 일입니다.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영혼 없는 삶이 허망한 것처럼, 육이 없으면 영혼도 없습니다. 기독교에서의 부활은 그래서 영의 부활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육의 부활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은 ‘그리스도인의 특권,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성령을 말미암지 않고는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으며,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을 수 있는 특권이 또한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든지’에 걸리는 분들이 많은데, 진정 그리스도가 그 안에 거하는 이들은 자기의 욕심만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엇이든지’입니다.
기도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그만큼 신앙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중요한 것이기에 기도가 없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가 그들의 기도와 다른 점은 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2)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함께 기도해 주시는 분은 오직 보혜사 외에는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제자들과 세상에서 이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냥 떠나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며 도와주시는 방식으로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전승되었습니다.
“지극히 자비하신 하나님, 당신께 간구하오니 세상 모든 걱정에서 저를 보호하셔서 세상 걱정에 휩싸이지 않게 하시고, 육체의 많은 욕구로부터 보호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영혼의 모든 장애물로부터 보호하여 괴로움으로 마음이 파괴되지 않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누가 세상 걱정과 육체의 욕구와 영혼의 장애물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됨을 통해 기뻐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