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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후 3:1-5)

  • 관리자
  • 2016-10-02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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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고후 3:1-5)

 

옛날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사모하여 그를 방문할 때에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아름다운 꽃을 심은 화분 둘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꽃들은 똑같은데 실상은 하나는 진짜 꽃이요 다른 하나는 사람이 만든 조화였습니다. 시바 여왕이 화분 둘을 멀리 갖다 놓고 솔로몬 왕에게 어느 화분이 참꽃이냐고 물었을 때 솔로몬 왕은 조금 생각하더니 신하에게 “동산에 나가서 벌과 나비 몇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여 신하가 벌과 나비를 잡아 왔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벌과 나비를 방안에 놓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벌과 나비들은 그 방에서 조금 날더니 금방 화분 있는 대로 날아가더니만 한쪽 화분에 가서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솔로몬 왕은 웃으면서 “저 벌과 나비가 앉은 화분이 진짜 꽃이다.”라고 하였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17절에 말씀에 있는 ‘그리스도의 향기’에 대한 설교에 많이 인용되는 예화입니다. 겉으로는 다 그리스도인 같은데, 정작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요즘은 조화가 얼마나 예쁜지 생화가 아주 예쁘면 “와, 조화 같아!”라고 합니다. 이와 다르지 않게 요즘,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이 더 그럴싸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정말 진실한 그리스도인인 줄로 알다가 본색이 드러나면 실망합니다. 그러면서 도매 급으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싸잡아 매도합니다. 그것이 요즘이 개독교니 먹사니 하는 현상들입니다. 가짜들 때문에 진짜가 욕을 먹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은 진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고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에 이어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편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성경책이요, 또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첫 번째 편지인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증거가 되었듯이, 두 번째 편지인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첫 번째 편지인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잘 안 읽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편지인 그리스도인의 언행심사를 통해서 나타나는 편지는 읽지 말라고 해도 잘 읽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이 언행심사를 통해서 상처를 받고 하나님을 등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실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읽었는데, 도무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 같지도 않다면, 믿음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여러분을 읽다가 실망하고 믿음 생활을 접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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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는 고린도교회와 아가야에 있는 성도들에게 눈물로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의 상황은 2장 4절에 언급된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썻노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특별히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면서 거짓 교사들의 선동을 물리치고 자신들에 대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기록되었으며,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을 모금하기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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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써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누님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면서부터 편지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저보다 3년, 6년 터울인 누님의 편지를 쓰려니 당연히 시집도 많이 보게 되었고, 편지를 쓰다 보니 글쓰기 실력도 늘었나 봅니다. 돌아보니 감사한 일입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국군의 날을 앞두고 군부대에 위문편지를 쓰는 일이 있었는데, 누님이 둘이 있다는 편지 내용에 답장을 보내온 군인과 일 년 가까이 편지를 주고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저의 연애편지는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편지를 대필할 때는 객관적인데 개인적인 편지를 쓸 때에는 감정에 치우치기 마련이라 상대방에게 부담을 많이 주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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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편지는 내용이 정확해야 합니다.

 

편지를 다 읽었는데 이게 무슨 편지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면 좋은 편지가 아닙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편지인 여러분을 다 읽었는데,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면 그 편지는 잘못된 것입니다. 누군가 그리스도의 편지인 여러분을 읽었을 때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2. 편지는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글씨가 삐뚤빼뚤하면 읽는 사람이 짜증납니다. 글씨를 잘 쓰는 것과 정성 들여 쓰는 것은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또박또박 정성이 들어간 편지를 받는 사람은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정성껏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내일도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오늘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 과거도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편지는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연애편지에 자주 등장하던 글귀가 있는데, ‘하늘의 별과 달도 따 주마’라는 헛공약 같은 것들입니다. 그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편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인 내용없이 미사여구만 난무한다면, 처음에는 솔깃하겠지만 깊이 알면 실망하게 됩니다.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진정성을 가진다는 것은, 말만 번지르한 신앙인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인 여러분은 진정성을 가진 편지이길 바랍니다.

 

4. 좋은 편지는 간략하고 명확합니다.

 

편지를 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 편지를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까? 그 시간 동안 오로지 편지를 받는 수신자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긴 편지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읽는 자의 입장에서 명확하게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편지에는 오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편지는 쓴 이와 읽는 이가 같은 문장이라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요지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편지는 간략하고 명확해서 읽는 이가 오해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5. 편지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합니다.

 

편지를 쓰려면 편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펜으로 써야 하는지도 중요하고, 편지봉투와 우표도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우표수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기념우표를 사기 위해 공을 들이기도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떤 분들은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예로, 예배순서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 형식이 내용을 좌우합니다. 주일 대예배 시간은 기독교 2000년의 역사가 만들어온 형식에 따라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서도 ‘대예배’이고, 그 형식을 보면 건강한 교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신사도운동을 주도하는 교회에서는 예배의 형식을 깨뜨리고 열린 예배다 뭐다 하면서 찬송가도 부르지 않고, 교독문이나 사도신경 등도 생략해 버립니다.

종교개혁이후 개신교가 예배에서 경건성을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성만찬입니다. 사실, 오늘이 세계성만찬 주일인데 우리 교회도 성만찬을 집례하지 못했습니다. 대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촛불을 밝힙니다.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이며, 그 기원은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촛불을 켜는 순간, 하나님께서 한남교회 재단에 임재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찬송은 우리 가락에 맞춰 만든 찬양도 있지만, 대부분은 세계교회가 함께 부르는 찬양들입니다. 같은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의 한 형제자매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내용만 좋다고 좋은 편지가 아닙니다. 그 내용을 어디에 담았는지도 중요합니다. 물론, 내용 는 과대포장을 문제가 됩니다.

 

6. 편지는 마음을 담아 써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그리스도의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3: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절 말씀에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3: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편지는 아무리 연애편지라도 좋은 편지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만족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별개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돌판’은 죽은 것이고 ‘육의 마음 판’은 살아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려면, 자기만족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마음을 담아 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7. 편지가 잘못되면 과감하게 구겨버립니다.

 

요즘이야 컴퓨터로 글을 쓰니까 그런 일이 없지만, 과거에 원고지나 종이에 글을 쓸 때에는 글씨 한자만 잘못되어도, 한 문장만 잘못되어도 구겨버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어떤 때는 휴지통이나 방바닥에 구겨진 종이들이 가득하기도 했었지요. 오로지, 제대로 된 편지 혹은 글 한 편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런 행위를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무엇이겠습니까? ‘회개’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나를 과감하게 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잘못된 삶을 습관적으로 살아간다면 좋은 편지가 될 수 없습니다.

 

8. 그리스도의 향기를 담은 그리스도의 편지

 

문구기술이 발전하면서 향이 나는 볼펜은 물론이고 향이 나는 편지지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편지를 별로 쓰지 않습니다. 손 편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상징하는 바는 17절에 있는 말씀대로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미에 맞게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말씀 그대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상징하는 바는 ‘그 말씀 그대로 살아가는 실천 신앙’입니다.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편지가 되라는 말씀이지요.

 

고린도 교회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저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개봉해 보니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교회를 등집니다.

 

지난주에 기장은 102회 총회를 마쳤습니다.

제100회 총회 통계위원 보고에 의하면 제99회 총회에 비하여 총교인수 5,694명이 감소되었는데, 제101회는 제100회에 비하여 19,417명이 감소 되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니까 2년 사이에 기장 교인이 2만 5천명이 줄어든 것입니다. 30만 기장인이었으니, 1/10이 줄어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장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어버리고, 자기들 편의대로 말씀을 해석하다 보니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한남교회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회복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려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됩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편지인 성경을 잘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한남교회에는 세 봉사단이 있는데, 사랑의 편지 봉사단, 중보기도 봉사단, 사마리아 봉사단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 사랑의 편지 봉사단이 오늘 오후 찬양예배의 기도와 찬양을 맡아주셨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함께 지혜를 모아 사랑의 편지 봉사단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담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여러분이 읽힐 때에 감동의 물결이 가득하길 바라고,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여러분을 읽고 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고 결단하는 이들이 많아지도록 끊임없이 편지를 가다듬으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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