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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듣는 것입니다(골로새서 4:2)

  • 관리자
  • 2016-09-24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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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란 어느 한 쪽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숙한 대화자는 '많이 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기도를 대화라고 했을 때,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부족한 기도는 듣는 기도입니다. 청원기도는 차고 넘치는데 듣는 기도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청원의 기도,

그것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그것만 남게 되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면 기복종교의 기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기복종교까지 갈 것도 없이 청원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복권을 긁으면서도 '일등으로 당첨되었으면'하는 바람을 하는 것도 청원기도의 일종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혹은 기독교인들이 드리는 기도는 그 형태만 다를 뿐 복권방에서 로또번호를 적으면서 기도하는 기도 정도의 수준 이상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업이 잘되게 해주십시오,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해 주십시오, 병이 낫게 해 주십시오, 무탈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등등의 기도가 로또복권을 긁으며 하는 기도보다 한 차원 높은 것 같지만, 그다지 다르지 않은 기도입니다. 끊임없이 달라고 조르는 기도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키르케고르라는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가는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무엇을 주십사'하는 청원기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의 기도, 중보의 기도, 참선의 기도, 명상의 기도 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기도를 아우른다고 해도, 조용하게 명상하듯이 하는 기도보다는 열광적인 '통성기도'가 가장 강력한 기도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철야에, 여럿이 함께 모여, 손뼉 치며, 울부짖고, 목청껏 외치며, 방언으로 하는 기도,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도무지 하나님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거기엔 오로지 인간의 욕심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기도는 듣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골로새서 4장 2절의 말씀을 보면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으면 안 됩니다. 문자적으로 받는다면 오로지 '기도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잠을 자도' 안 되겠군요.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들어 있는 의미를 봐야지, 문자주의적으로 말씀을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무오설이나 문자주의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깊은 의미를 음미하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에게는 위에서 말씀드린 악쓰며 기도하는 청원기도기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신앙에 갓 입문한 혹은 혹은 절박한 상황에서의 단발마 같은 기도가 아닌 바에는 극복해야 할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기도를 하는 것에 묶어두는 것은, 우매한 종교인들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푸라기 장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이용해서 지푸라기를 파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푸라기라도 찾는 사람에게, 그 옆에 서서 지푸라기를 흔들며 사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갑은 제 멋대로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값을 흥정하고 말고 할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집 뒷마당 어디에 보물을 감추어 두었고, 땅문서, 집문서는 어디에 두었는데 다 주겠다고 합니다. 지푸라기 장사는 이런 정보와 약속을 받아내고는 찌푸리기 한 올을 던져주고 곧장 물에 빠진 사람이 말한 보물과 땅문서, 집문서를 찾으러 갑니다. 재미 들린 지푸라기 장사는 매일, 지푸라기를 들고 물가를 서성거립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많으면 판매원을 모집해서 지푸라기 판매의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허우적거리는 사람 바로 뒤에 큰 나뭇가지가 늘어져 있는 것을 봐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물에 빠진 사람이 생각만큼 많지 않으면 스스로 함정을 판다든지, 물에 밀어 넣어 지푸라기를 팝니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는 물에 빠질지도 모르니 지푸라기를 사라고 합니다. 행인이 뜸하면 집집이 방문하여 지푸라기를 팝니다.

 

참된 종교라면 지푸라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를 잡으라고 알려주거나, 생명줄을 던져줘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러기보다 지푸라기 장사에 열중한 것이 아닌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 지경일 수는 없습니다.

 

기도, 그것은 우리의 삶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 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묻고, 또 열심히 살아감에도 때론 좌절할 수밖에 없는지를 하나님께 묻고 듣는 과정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자신의 뜻대로 살아오다가 좌절한 삶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관계성 속에 있으므로, 자기가 관계를 짓고 살아가고 있는 세계 혹은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듣는 과정입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이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때론 자기의 이익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원형은 예수님의 기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자신의 뜻은 '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돌리소서!"이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청원기도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듣는 영성이 약해졌고, 들으려 하지도 않다 보니 기도는 마치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변질하였습니다. 오로지 자기의 이익을 구하는,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할 뿐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는 사람, 그 사람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아닌지에 민감합니다. 특별히 골방에서 기도하지 않아도, 삶 자체가 기도이므로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 행동이 기도의 행위입니다.

 

 

기도는 듣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말하는 기도에서 한 단계 성숙한 기도를 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피조물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땅의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창조세계를 통해 주는 소리, 약자의 소리를 들으려면 민감해야 합니다. 묵상이 필요하고, 그에 관한 관심도 필요합니다. 그냥 직관적으로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떤 경우는 연구도 해야 합니다. 단순히 지적인 희열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삶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전에 듣지 못했던 소리를 또 듣게 됩니다. 거듭남의 과정입니다. 일회적인 거듭남이 아니라, 거듭나고 보니 이전에 거듭났다고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배설물처럼 느껴지는 경험,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신앙은 점점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 수박껍질이 수박의 본질이라고 우긴다면 절대로 수박의 맛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수박껍질을 깨뜨려야 그 맛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기도의 경지를 넘어서서 듣는 기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기도의 즐거움을 알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이 뭔지를 알고, 기도하는 삶이기에 깨어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린 모든 분이 기도의 참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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