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키는 사람
잠언 4:20-23, 요한복음 3:1-7
베트남의 망명시인 ‘틱 낫한’의 글 중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1.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작은 키 = 마음
인생은 커다란 배와 같습니다. 수십만 톤의 큰 배의 방향을 움직이는 것은 배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키요, 한 사람, 항해사의 조종으로 방향이 좌우됩니다.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작은 키가 있다면, 그것은 곧 마음입니다. 마음이 바로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키이므로 우리는 그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영혼의 참된 변화는 마음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타락 역시도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이란 변덕이 심해서 열려있을 때에는 바다를 담을 것 같다가도, 닫혀버리게 되면 바늘 하나 꼽을 자리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똑같이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에게서 자랐어도 닮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성서에 나타난 세 가지 마음
성서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나누어 보면 타락 전, 타락 후, 거듭남이라는 세 가지 마음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타락 전의 마음은 다소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해 있는 상태입니다. 둘째, 타락 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고 있음에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상태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므로 소유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소유한 것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강력한 변화가 없는 한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거듭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서 자라나는 마음이 있습니다. 거듭남을 통해서 내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굴복시키게 됩니다. 성화의 과정을 통해 본래의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남’이라는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초점을 맞추면 주변의 다른 것들은 희미해집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희미해진 것입니다. 오로지 사진가는 자기가 초점을 맞춘 것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주변의 것을 사용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별세계에 살아간다는 말이 아니라, 똑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이전과는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렌즈 중에서 초 접사 렌즈가 있습니다. 현미경과 같은 것인데 작은 사물을 몇 십 배 이상 크게 담을 수 있습니다. 초점을 맞추고 사물을 바라보면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보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면서, 이전에 보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성화의 삶, 거듭남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다 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에 들어가면 이전 자신의 말씀에 대한 이해나 신앙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초심을 지켜야 합니다. 언제나 처음인 듯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하고, 오늘이 구원받은 첫날인 듯 행동해야 합니다. 처음도 아니고 첫날도 아닌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지키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서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고 하십니다. 마음을 지킬 때, 끊임없이 새로운 샘이 솟구치는 것과도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3. 교회의 의미
그런데 이런 ‘마음 지키기’를 혼자서 수행하듯 하면 더 효과적일 것 같은데, 하나님은 이 일을 함께하시길 원하십니다.
바리새인 중 유대인들의 최고의회의 의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거듭남’으로 해석된 말씀을 성경 번역본에서는 ‘위로부터 나지 않으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단 말입니까?” 이에 예수님은 “아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하십니다. 육의 몸으로 태어난 우리는 모두 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화되어 가는 과정’, ‘거듭남의 과정’ 안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아직 완전하지 않아도, 완전함을 향해가는 길에 서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벗이 있다는 것, 벗들과 함께 ‘거듭남과 성화의 삶’을 공유한다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의미입니다. 교회는 ‘더불어 함께 거듭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지요. 아직도 우리는 거듭나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직 완전하게 거듭난 이들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전한 이들도 아닙니다. 닮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육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사람을 보고 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거룩하게 성화할 수도 있고, 다시금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이것은 장담하지 못합니다.
4. 마음을 지키려면?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과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신앙생활도 잘할 수가 없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왔는데, 보기 싫은 사람, 미운 사람이 있고, 화해하지도 못했다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냥 무시하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그런 예배는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분이 있다면, 오히려 그분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아직 나에게 내 마음처럼 대해주지 않아도 여러분은 마음 맞는 친구처럼 대해주십시오. 그러면 상대방도 달라집니다. 미워하게 되면, 끊임없이 미움이 자라납니다.
다시 한 번 베트남의 망명시인 ‘틱 낫한’의 글을 음미해 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어떤 꽃을 피우겠습니까?
어떤 여자 분이 이혼을 결심하고 상담사를 찾았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이혼하시라”면서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이제 마지막이니 보름 동안만 잘 해주시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평생을 참아왔는데 보름 정도야 생각하고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잘해줍니다. 이전엔 술에 취해 돌아오면 잔소리부터 나왔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다릅니다. 남편도 으레 잔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수고했다는 말이 나오고 아침엔 해장국이 나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서로가 변할 수 있는 계기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술 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는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방도 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그렇게 변했는데 더 그런다면? 그땐 여러분이 변화시키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여러분, 교회에는 우리가 변화시킬 분들보다 예수님이 변화시키기도 벅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 아닌지요? 여러분, 마음을 지키십시오. 긍정의 씨앗에 물을 주십시오. 그래서 꽃을 피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