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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을 바꾸는 사람(스가랴 4:1-10, 고린도후서 12:1-10)

  • 관리자
  • 2016-07-01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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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을 바꾸는 사람
스가랴 4:1-10, 고린도후서 12:1-10

 

행복을 얻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소유를 늘리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욕망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서양은 소유를 늘려 행복해지는 쪽을 택했고, 동양은 욕망을 줄여 행복해지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물질문명이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종교와 철학이 발전했습니다. 요즘은 이 경계가 무너져서 동서양의 행복추구 양상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 마음 깊은 곳에는 본래의 심성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최근 몇 년간 덴마크가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두 권 읽었습니다. 오연호 씨가 덴마크에 다녀오면서 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과 덴마크 출신의 작가가 쓴 <우리도 덴마크처럼>이라는 책입니다. 두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공통으로 공감하게 된 부분은 ‘덴마크 사람들은 큰 욕심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큰 욕심과 기대가 없으니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한다고 합니다. 이런 생활의 단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는 데는 이런 국민적인 심성이 바탕에 깔렸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가치를 보는 ‘관점’입니다. 같은 사건(상황)을 어떻게 보는가는 그 사건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사실(fact)보다 시각(perspective)이 중요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냥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본다는 것은 깨닫는 것과 연결되고, 깨닫는 것은 곧 삶의 변화와 직결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이냐, 아니냐?” 보다도 어떻게 보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 반 컵이 남아있을 때, 어떤 이는 반 컵밖에 남지 않았다고 절망하지만, 어떤 이는 물이 반 컵이나 남았다고 희망을 품습니다. 사실은 ‘물 반 컵의 현실’이지만, 시각은 정반대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좋은 점들을 보십시오.

교회도 교인들도 목사도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부정이라는 색안경을 끼면 온통 부정할 것 투성이고, 긍정의 안경을 끼면 온통 긍정할 것뿐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보는 쪽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하다

 

스가랴는 학개, 말라기와 함께 포로기 이후의 선지자입니다. 포로지에서 돌아와 스룹바벨, 느헤미야 등과 성전재건 작업을 하다가 사마리아와 주변 국가의 반대로 성전건축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4장에 나오는 ‘두 감람나무 사이의 순금 등대 환상’은 새로 세워질 성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사는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재건을 하면서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어려움에 부닥쳐서 성전재건작업이 중단된 것입니다. 그때 스가랴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4:6)

 

얼마나 우리는 더 속아서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 힘과 권력으로 상징되는 ‘물신만능주의’라는 우상에 빠져서 살아야 합니까? 돈이 최고라고 하는 우상에 빠져 우리는 얼마나 악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요?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고 쉽사리 생각하고, 심지어는 신앙의 척도도 헌금액수로 가늠합니까?

 

얼마 전, 교황청 산하 청소년재단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14억을 기부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을 착취하고 노예처럼 부려 번 돈으로 교회를 후원하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 돈을 도로 가져 가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그 더러운 돈이 필요치 않습니다.” 하면서 아르헨티나정부가 기부한 헌금을 돌려보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동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계획만으로,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해도 안 되고, 돈이 없다고 주저주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일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권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4:6)

 

육체의 가시를 인한 감사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가치관이 바뀐 사람입니다.

예전에 좋던 것이 값없는 것이 되었고, 전에는 무가치하던 것이 그의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소중한 가치를 알았기에 그가 당하는 고난이나 역경, 심지어는 사탄의 가시라고 표현된 극심한 고통도 감사하며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고후 12:7)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것을 행복한 것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바뀌었고, 생각이 바뀌자 상황도 바뀌는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고, 늘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삶의 우선순위에 무엇을 놓고 살아가십니까? 혹시 여러분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값없는 것은 아닌지요? 너무 눈높이를 높여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이미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있는데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가치관을 바꿔야 합니다.

 

저는 간혹 종로3가에 가면 제 노년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노인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노인이 모여 있습니다. 한껏 멋을 내고 온 노인부터 자포자기한 듯한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이라도 한 끼 해결해 보려고 나온 노인, 그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관점일 뿐, 그곳에 모이는 분들은 나름 행복하고, 이유가 있습니다. 그거면 충분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이전처럼 그렇게 불편하게만 그곳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볼거리 많은 곳으로 바뀝니다. 종로3가가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인간중심의 가치관과 물질중심의 가치관 소유중심의 가치관을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삶으로 가르치신 내용이며, 성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지침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고자 결단할 때, 사도 바울과 같은 전향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스가랴 예언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 삶을 세워주시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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