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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설교 1- “물”

  • 관리자
  • 2016-06-05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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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설교 1- “물”(20160605/오후 찬양예배)
이사야 11:1-9

 

오늘은 환경 주일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생수가 처음 나왔을 때 ‘물을 사서 먹는 사람이 어딨어?’ 했는데, 머지않아 ‘공기’도 사서 먹는 시대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미세 먼지’도 창조하셨을까요? 우리가 아는 대로 ‘미세먼지’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마구잡이로 사용된 원료들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의 출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파괴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뜻이 상실된 현실이 곧 ‘악’입니다.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오늘 읽은 이사야서의 말씀은 ‘메시야 대망사상’이 담긴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알맞은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오면’ 이뤄질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통해서 ‘환경주일’에 읽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9절 말씀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미세 먼지뿐만 아니라 4대강 곳곳에 창궐하는 ‘녹조라떼’가 창궐한 세상에서 ‘물’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금 묵상했습니다. 미세먼지나 녹조문제뿐 아니라 GMO 유전자변형 식품과 항생제 범벅인 공장식 축산체제 등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끔찍한 환경재앙들은 이제 인류를 인간 스스로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2. 노자의 <도덕경 > 제8장의 상선약수

 

노자의 <도덕경> 8장에는 유명한 구절 ‘상선약수’가 나옵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입니다. 도덕경에 따르면, 물의 덕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이롭게 하고, 앞서 가기를 다투지 않으며, 항상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의 움틉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물을 다스리는 일은 ‘치수’라고 하여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물을 잘 다스리면, 나라가 편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물은 그저 무심히 흘러갈 뿐입니다. 내가 ‘이롭게 하겠다 어쩌겠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무위자연’을 옅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성서적으로 말하자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홍수가 나면 인간의 처지에서는 엄청난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의 측면에서 보면 홍수는 일시에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정리해 줍니다. 인류문명 초기 메소포타미아 반달지대는 바로 이런 규칙적인 홍수를 통해서 비옥한 토지에서 농산물을 얻었고, 문명의 발상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진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처지에서는 큰 재앙이지만, 지구로서는 다시 균형을 잡고, 먼지를 털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냥 무심하게 이 모든 일을 행할 뿐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법칙,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섭리를 잘 살펴보면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보게 됩니다.

 

3. 바다를 통해서 물의 속성을 보다

 

물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 어딘가요? 바다입니다. 그 바다에 바다에 태풍이 불어올 때가 있습니다. 바다의 태풍은 잔잔한 바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깊은 바닷속까지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태풍이 오면 저 깊은 바다까지 온전히 뒤집어집니다. 일시적으로 보면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 같은데, 그로인해 바다는 다시 썩지 않고 깨끗해집니다. 태풍의 바다를 보면서 우리는 무슨 소리를 듣습니까? 우리 삶에 다가오는 태풍은 우리를 휩쓸어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맑게 하기 이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제주의 바다를 다시금 묵상하면서 물에 관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물의 속성에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물이 무심하게 그저 흘러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을 묵묵히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지요. 살면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내가 변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변해도 물론 세상은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의 속성을 닮은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끊임없이 낮아지자는 것입니다. 물은 늘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결국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인 바다에 이릅니다. 늘 낮은 곳으로 향했기에 바다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라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물은 앞서려고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원이 같고, 물줄기가 같다면 거의 같은 시간에 바다에 이르고,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서둔다고 바다에 빨리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흐른다고 바다에 이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경쟁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먹는 음식까지도 빨리빨리 속성으로 자라게 합니다. GMO(유전자조작식품)이 그것이지요.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넣은 가축들 또한 그렇지요. 심지어는 선행학습으로 아이들도 속성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천천히 살아도, 빨리빨리 살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시간 이상이나 이하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숨 가쁘지 않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 길에서 앞설 수도 있고, 뒤처질 수도 있지만, 앞이냐 뒤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물, 바다로 가는 물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4. ‘물’에 대한 묵상이 주는 교훈

 

물은 생명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깨끗해야 합니다. 홍수가 나면 제일 큰 문제는 ‘식수’라고 합니다. 물은 많은데 먹을 물이 없지요. 마치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과 같지 않습니까? 교회는 많은데 교회가 없고, 목사는 많은데 목사가 없고, 교인은 많은데 교인은 없는 그런 현실때문에제 마음을 빼앗기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목사답게, 한남교회가 교회답게, 한남교회 교인들이 교인답게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교인답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관계에 선 것이요,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신앙인이 되십시오.

‘리퀴드 아트’라는 것이 있는데, 물감 등이 물에 풀어지는 과정을 다양하게 작업물로 생산해 내는 예술을 말합니다. 사진, 동영상 등이 대표적인데, 저도 여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지난해 0몇 번의 테스트를 했는데, 물은 깨끗한 것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더러운 것도 마다치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물은 그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한계지점에 이르러 물이 썩게 되면 그 악취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염된 물은 오염된 물을 정화하지 못합니다. 깨끗한 물만이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이 썩지 않고 정화할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되는 방법은 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바다는 민물과 다르게 3%의 소금과 태풍이 있어 바다가 썩지 않습니다. 강물은 3%의 소금이 없는 대신 끊임없이 흐르는 유속과 낙차 등으로 맑음을 유지합니다. 샘물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 덕분에 깨끗함을 유지합니다. 깨끗함을 유지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신앙적으로 깨끗한 것,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역시도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의 신앙만 고집하지 마십시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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