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계시와 비밀
고린도전서 2:6-10
“성령 받았습니까?”
전도사 시절 어느 집사님께서 제게 질문하신 내용입니다. 제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여러분은 이런 질문에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예!” 아니면 “아멘!”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집사님이 생각하는 성령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집사님에게 있어서 성령 받았다는 증거는 ‘방언’이었는데 저는 방언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도 그 집사님은 성령도 받지 못한 전도사가 우습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네”라고 대답했든 “아니오”라 대답했든 질문을 한 집사는 자신만의 대답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고 웃음 짓는 바리새인처럼 말입니다.
1. 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술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 체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요, 성령의 도우심을 입었다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의 말로 설명될 수 없는 분이시지만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을 성부 하나님으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 하나님으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각기 다른 속성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본질적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물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실 터이니, 성전인 너희의 삶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의 몸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하나가 성전이요, 모든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 자체는 잘못된 질문입니다. 모두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 성령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마태복음 7장 18-20절 말씀에 비추어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에 비추어 성령을 받은 사람의 증거는 그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 이하에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나옵니다. 각기 다른 성령의 은사지만 한 분이 주신 것이며 이 모든 성령의 은사는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지난주 주일예배 때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는데, 그것은 곧 부모를 공경하는 자를 유익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의하면, 성령은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고전2:7)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이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즉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성령을 통하여(고전 2:10)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인용된 이사야서의 말씀을 보면 이러한 비밀을 누구에게 알려주시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곧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니 곧 성령을 받는 비결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64장 5절에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는 사람과,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과, 주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주신다.’고 하십니다. 즉, 성령은 어떤 인식의 유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영원불변합니다. 이것을 잘 봐야 합니다. 단순히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에서 어느 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에 맞는가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사회적인 정의도 물론 포함하지만, 본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정의입니다.
3. 성령의 계시와 비밀
성령의 계시, 비밀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금식하고, 기도원을 찾습니다.
그것도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만, 신앙과 삶의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비밀을 깨달아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의 삶은 어제 삶의 연장 선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특별한 날이요, 지금껏 단 한 번밖에 없었던 날입니다. 그 특별한 날을 주신 이유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을 더욱더 깊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이기적인 욕심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 그 신비를 깨달아 알면 하루하루의 삶이 소중하고, 어제의 일이나 내일 일에 대한 염려와 근심보다는 오늘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방식 같지만,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국은 없습니다. 천국은 오늘 삶의 연장선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것이 있으며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고,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곳에 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특별한 것은 우리 일상에 있습니다. 신앙이 어릴 적에는 하나님께 뭔가 확실한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지만, 신앙이 무르익으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한 것입니다. 그 오늘을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 욕심에 눈멀지 않고 하나님과 이어져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쁨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닫아버리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으니 ‘헛소리’와 ‘허튼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만 최고의 선인 줄 압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면 성령의 이름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이 죄인 줄 모르고, 자신의 행동이 지고의 선이라 생각하기에 회개할 기회조차도 없는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는 자기의 생각을 펼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각기 다른 성령의 은사를 받은 분들이 어우러져 하나님 앞에서 기쁨의 잔치를 여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내 행동과 신앙적인 결단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덕이 되는지 아닌지, 내 말이 살리는 말인지 죽이는 말인지, 내 헌신이 더해졌을 때 교회가 더 교회다워지는 것인지를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성령 받았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시와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아리송하다면 정의를 기쁨으로 실천하십시오. 정의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위해 더 노력하시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계시와 비밀 때문에 기쁨이 충만,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