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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한 새벽별(계 22:12-16)

  • 관리자
  • 2016-12-17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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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한 새벽별
계 22:12-16

 

주님의 평화가 오늘 함께 예배 드리는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우리는 밤이 가장 긴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벽예배 가는 길에 하늘을 바라보면 옥수동 언덕에서도 유난히도 밝은 별이 한남하이츠아파트와 한남아파트 사이의 하늘에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24절기 중에서 입춘과 함께 동지를 좋아합니다. 입춘은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절기라서 좋아하고, 동지가 지나면 점점 낮이 길어지는 절기라서 좋아합니다. 낮이 긴 여름에는 조금만 휴식을 취해도 되는데 겨울에는 다른 계절보다 휴식을 더 취하게 되어 몸이 둔해집니다. 추위를 이기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데,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햇볕으로부터 오는 에너지흡수량은 줄어드니 수면을 통해서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것입니다. 낮이 긴 여름에는 서너 시간만 자도 피곤하지 않은데, 겨울에는 여섯 시간 이상을 자도 피곤한 까닭입니다. 혹시라도 겨울철이 되어서 '내가 왜 이렇게 게을러졌나?' 고민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고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고, 동지가 지나면 서서히 몸도 부지런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동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는데 동시에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봄을 위한 겨울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봄이 너무 쉽게 오면 봄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겠지요. 또한, 겨울 동장군이 없다면 얼어 죽어야 할 각종 병충해가 창궐하는 봄과 여름을 맞이하게 됩니다. 동양에서는 동짓날이면 붉은 팥죽을 먹는데 '붉은 팥죽'은 악령을 내몰고, 나쁜 기운을 물리쳐주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고대인들은 동지가 되면,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라고 생각해서 축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 21일(수)이 동짓날이나 사나흘 밤은 점점 길어질 것이고, 어둠의 시간이 길어진 만큼 새벽 별도 더욱 광명의 빛을 더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22:16)"고 하셨습니다. 요즘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오갈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바라보던 빛나는 새벽 별, 그 별이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여러분과 나누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의 언어로 쓰여있으므로 제대로 읽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곡해할 수 있습니다. 은유로 쓰인 말씀이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비성서적이고도 자의적인 해석 때문에 한국교회의 성경 읽기는 사실 큰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저술되던 시기의 상황과 각 단어가 지칭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므로 요한계시록은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는 말씀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길 바랍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I am coming soon!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은 "내가 곧 갈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던 주님이 속히 오신다는 것은, 다시금 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은 믿는 자들에게는 복된 날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날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인용해서 지구 종말 운운하며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주는 이들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지혜로운 신앙인이라면 그들이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준 뒤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종말이 곧 가까우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필요 없으니 자기들에게 바치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막대한 물질적인 부를 축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인 가정을 파탄시키고 '혼자만이라도 구원받으라!'고 부추기고, 그런 일들이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하는 이들은 남편이나 자식이나 부모라도 '사탄'이라고 몰아붙이게 하는 사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빛은 빛으로, 어둠은 어둠으로, 불의는 불의로, 선은 선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숨겨졌던 우리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에,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나를 다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오시는 주님께서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이 이 역사의 기원이요 목표라는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주님께서 이 대림절기에 오시는 것입니다.

 

▪두루마기를 빤 사람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는지요? 계시록 7장 14절에는 환난 중에서도 어린 양의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희게 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에 두루마기를 빨았다고 하는 말은 그의 삶이 예수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4절의 말씀에도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 예수님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겉옷을 빤 사람들은 인간의 교만과 폭력과 탐욕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따라 살아가려고 결단한 사람을, 즉,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신득의' 죽,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형제들아, 속지말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 속이지 않으려면 우리의 일상에서 생활로 신앙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활신앙을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란, 값없이 주신 선물이지만, 그 선물의 겉모습은 사실 투박하고 초라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볼품없고 낮은 말구유에 오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풍요로움과 편리함, 높아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박한 삶과 불편한 삶, 낮아짐과 비움을 이야기하는 거친 삶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포장지를 매끄럽게 바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수백억의 건축비를 들여서 최근에 지은 교회는 얼마나 매끄러운지 모릅니다. 많은 교회에서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세상 사람들이 소망하는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포장지가 바뀌는 순간부터 내용물도 바뀌었고, 내용물이 바뀌자 향기는 악취로 변해버렸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세상의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어두운 세상,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잘 믿기 때문에 거친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며, 고난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좁은 길, 좁은 문입니다. 좁은 길, 좁은 문이지만,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의 피로 두루마기를 빤 사람들의 삶입니다.

 

▪아름다움의 구원

 

재독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아름다움의 구원』이라는 책에서 '매끄러움은 현재의 징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스마트폰도 매끄러움의 미학을 좇고 있으며,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예술가 중에서 제프 쿤스라는 예술가는 '매끄러움의 성화'를 추구하는데 스테인리스로 만든 <풍선 개>라는 작품은 626억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거칠고 소박한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한병철 교수는 이렇게 결론은 냅니다. '오늘날 우리의 아름다움은 위기를 맞고 있다. 모든 부정성을 제거한 매끄러움의 의미는 굳어져 버린 것, 좀비가 된다.' 그렇습니다. 소비 대상으로 전락한 신앙을 어린 양의 피로 빨아 희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주님이 오고 계시는 대림절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22:16)." 뿌리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 별은 새벽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만 보입니다. 광야를 방황하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 24:17)"고 예언했던 발람은 스스로 '눈을 뜬 자, 전능 자의 환상을 보는 자'라고 했습니다. '한 별'은 곧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님께 이르렀다는 것도 역시 같은 뜻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별을 보는 사람들, 감추어진 것을 보는 사람들, 매끄러운 것이 우상이 된 세상 속에서 거친 것에 대한 애착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두루마기를 빤 사람들이요, 그로 인해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 분들입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모두가 그런 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에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5절에는 그런 이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개, 점술가, 음행하는 자, 살인자, 우상 숭배자, 거짓말쟁이가 그들입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은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예에 불과합니다. 이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개'입니다. 유대인에게 개는 불길한 짐승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서 개는 주로 거리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한때라도 우리나라처럼 식용으로 키우지도 않았으니 목장을 지키는데 소용되는 개가 아니면 거리를 떠돌며 쓰레기를 뒤지고 이곳저곳 어슬렁거리고, 야합하고, 먹이를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심지어는 사람을 물기도 하고 했을 터이니 개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 '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개'는 네발 동물 개가 아니라, '개 같은 자'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개 같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웃을 위해 자기의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 기꺼이 자기를 내어주며 이웃을 섬기는 겸손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겠지요. 그렇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은 개 같은 사람이요, 그런 사람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겠지요. 그리고 점술가나 음행하는 자나 살인자나 우상 숭배자, 거짓말쟁이는 모두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성밖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는 대림절 넷째주일입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혼란스럽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일시적이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밝게 빛난다는 것도, 이 어둠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압니다. 어둠이 잠시 빛을 이기는 것 같아도 어둠은 빛 앞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다림의 절기에 여러분의 마음에 광명한 새벽 별이신 예수님이 오롯이 떠오르기를 기원합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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