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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연합회1지구 여신도회총회

  • 관리자
  • 2022-11-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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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연합회1지구 여신도회 총회(20221103/ 목)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요한복음 15:1~5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주신 귀한 날, 저희 교회에서 서울북연합회 1지구 총회를 갖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을 하나님께서 복 주셔서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마다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 이태원 참사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저도 10월 29일 밤에 일어났던 ‘이태원 참사’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에 의해 국가를 운영할 책임을 맡은 이들이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국가애도기간을 정해 놓고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입막음하고, 책임을 서로 미루고, 몇몇 참가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하고, 축제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비난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으니 참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정권입니다.

 

■ 시대의 징조를 보라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회적인 현상들을 보면서 ‘시대적인 사인’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이후 이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주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런 문제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교회는 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사인 앞에서도 ‘이런 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참사의 당사자가 아님을 감사하는’ 정도의 신앙에 머문다면 유아기적인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유아기적인 신앙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19 이후 한국교회의 위기의 원인은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예수정신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스스로가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 살림의 일꾼


‘살림’이라는 말은 여성들과 아주 친숙한 단어입니다.

서울북연합회1지구 여신도회 여러분, 죽음의 세상에서 살림의 일꾼으로 살아가라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살맛나지 않는 세상을 몇몇 재료만 가지고도 뚝딱 맛난 요리를 만들 듯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꾼이 되십시오. 집을 정갈하게 청소하고 가꾸어 아늑한 공간을 만드는 손길로 우리가 사는 지구라는 집을 정갈하게 청소하고 가꾸어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회복하게 하는 일꾼이 되십시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의 말씀은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


“나는 참 포도나무다!” 이것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말씀입니다. 이것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참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다고 하십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착각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그리스도인이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교회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최상품의 포도를 심으셨는데, 들포도를 맺는 것은 아닙니까? 돌아보고, 선물처럼 주신 기회의 시간에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 두려움과 근심에 빠지지 말라


그런데 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과정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때론 ‘아픔’을 동반합니다. 최상품의 포도를 거두려면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새순에서 꽃이 피고 포도 열매가 맺힙니다. 그래서 포도원 지기는 새순이 나오기 전에 가지치기를 잘해줘야 하고, 새순에서 꽃이 핀 후에도 실하지 않은 꽃들은 따줘야 합니다. 그래야 최상품의 포도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2절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리고,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미련 없이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라도 잘 손질하시어 최상품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손질’에 해당하는 것을 ‘가지치기 혹은 전지’라고 합니다. 전지는 ‘잘려지는 아픔’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잘려진 가지만이 아니라 원줄기도 함께 느끼는 아픔입니다. 그리고 전지 후에는 줄기며 가지가 혼연일체가 되어 잘려진 부분을 치유합니다. 이 상징의 말씀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포도원지기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시고 회복하신다는 상징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기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아픔을 동반해야하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니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근심에 빠져들지 말고 담대하게 승리하십시오.

 

■ 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


그러면,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하고자 아픔도 감내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4절 말씀에서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하십니다. 4절 이후의 말씀은 요한복음의 전체 주제라고 할 만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고, 영적인 존재로 우리와는 다른 저 하늘에 계신다고 주장하며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을 현혹할 때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라는 말씀은 그 모든 이단사설을 무력화시키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일’입니다.

 


‘~안에’라는 전치사 ‘in’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에서는 이 전치사가 아주 신비스럽게 사용되었습니다. ‘그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이것은 일방통행의 언어가 아니라 쌍방통행의 언언요, 관계의 언어입니다. ‘into’에서 ‘in’으로 ‘in’에서 ‘through’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그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자 결단한 것이 ‘그 안에’라면, 예수님이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신 것이 ‘내 안에’입니다. ‘들어가고 들어오고’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요, ‘나와 너’의 관계인 것입니다.

 

■ 마음의 눈을 뜨면


이런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너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마음의 눈을 뜬다’고 표현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구상 시인이 이것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마음의 눈을 뜬다면 자기가 서 있는 모든 자리가 ‘꽃자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범사 감사가 넘쳐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시대의 사인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지려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고,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과정에는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께서 함께 해주시니 두려워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면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 들어오시게 되고, 그 순간 우리는 마음의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다고도 합니다. 영안이란, 점쟁이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안경, 이웃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때에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 일이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에 고난의 자리도 꽃자리임을 알게 되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는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머무는 이들이 누리는 복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시대가 심히 어둡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예수님을 품고,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을 통하여 이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고 새 세상이 열리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소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망일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소망의 빛, 서울북노회1지구 여신도회가 그런 아름다운 모임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 기도]
주님, 시대가 참으로 어둡습니다.

하오나 이 어두운 시대라고할지라도 우리는 절망할 수 없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정체성을 잃지 말게 하시고,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감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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