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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후생수련회 설교] 길 위에서

  • 관리자
  • 2022-04-20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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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북노회 목후생 수련회 설교(20220421)
길 위에서
요한복음 14:6
 

“도를 아십니까?”
간혹 지하철역이나 거리를 걷다 보면 젊은이들이 다가와 묻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냥 웃고 맙니다. ‘도가 뭔지도 모를 것 같은 친구들이 도가 뭐냐고 물어보니’ 웃겨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도를 아십니까?”
웃는 걸 보니 도가 뭔지도 모르는 목사가 물어보니 웃긴가 봅니다.
도(道)는 ‘길’입니다. 길은 모든 종교에서 구도를 향해가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런 점에서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순례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밝힙니다. 그러니 우리가 길을 걸어갈 때에는 길이신 예수님이 동행하신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다른 말은 진리와 생명이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무도한 자들이 많습니다.
‘무도(無道)’가 무엇입니까? ‘길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무도한 자는 길이 없는 자, 진리가 없는 자, 생명이 없는 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입니다. 이런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반생명적인 말들입니다, 온갖 혐오적인 언어들로 갈라치기하고, 온갖 공허한 아름다운 말들, 예를 들면 공정, 상식, 소통 같은 단어로 자신들의 불의함을 포장하고 가짜 뉴스를 동원하여 가짜 뉴스에 노출된 이들을 ‘가스라이팅’합니다. 그런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 수 없으니, 무도한 자의 끝은 멸망인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로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스라이팅은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 연극에서 남편은 집안의 가스등을 일부러 어둡게 만들고는 부인이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합니다. 이에 아내는 점차 자신의 현실인지능력을 의심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남편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길’이 없습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걸어가고, 그 길이 전부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다 함께 멸망의 길을 갑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들이나, 당하는 자 모두 無道한 자입니다.

오늘 수련회에 참여하신 목후생 여러분은 無道한 자들에게 道(길)을 전하고자 하는 분들입니다. 길을 전하려면, 길을 알아야 하고, 길 위에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득도(得道)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득도하셨습니까? 길과 동일어로 말하고 있는 진리와 생명,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거기에 있습니까? 

14세기 독일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의 영성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있다. 내 존재는 내 곁에 있는, 그리고 내게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의존한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멀리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데, 우리는 밖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고향에 있는데, 우리는 타국 땅에서 헤맨다.” 

여러분, 이미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증언을 수도 없이 들으셨을 터이니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길이 있고, 생명이 있고, 진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길, 진리, 생명을 발견해야 비로소 ‘길 위에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길 위에 서 있다고 해서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무도한 자들에게, 길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길 위에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무도한 자를 길 위에 서게 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겠습니까? 그렇게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에도 여전히 세상에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무도한 이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목회자의 길을 갈 때에 많은 아픔도 있을 것이고, 좌절도 있을 것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갈 때에 밝고 명랑하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위에서 길을 걸어갈 때에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이 왜 같이 걸어가실 까요? 그냥 구경꾼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과 동행하셨던 예수님이 대화를 통해서 그들을 깨우쳐 주셨듯이 우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너무 힘에 겨워 지쳐있을 때에는 우리를 업고 가시기 위해서 동행하시고, 넘어졌을 때에는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거기에 계십니까? 그분이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도를 아십니까?”

[거둠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창세 전에 귀한 뜻을 세우시고 이 길을 걸어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걸어가는 길 위에 주님이 동행하여 주시고, 길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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