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특강(2026년 6월 7일 오후집회/ 김민수 목사)
샬롬과 바벨탑의 평화
1. 우리는 모두 평화를 원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를 원합니다.
국가도 평화를 말하고, 기업도 평화를 말하며, 개인도 평화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말하는 평화는 어떤 평화인가?"
성경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평화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바벨탑의 평화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 곧 샬롬입니다.
2. 바벨탑의 평화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하늘에 닿게 하고 우리의 이름을 내자."
그들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가졌습니다.
하나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매우 평화로운 공동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평화가 아니라 모두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평화였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든 질서에 모두가 복종해야 하는 평화였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의 평화는 사실상 평화가 아니라 통제였습니다.
3. 팍스 로마나: 제국의 평화
예수님 시대에도 비슷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입니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전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쟁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침묵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로마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평화는 십자가 처형과 군사력 위에 세워진 평화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평화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로마 제국의 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 오늘의 바벨탑
바벨탑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바벨탑의 평화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은 자기들의 평화를 세계에 강요합니다.
최근 중동 전쟁을 보십시오.
United States과 Israel은 안보와 평화를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됩니다. Russia 역시 자국의 안보와 질서를 말하며 Ukraine을 침공했습니다. 모두가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나 약자들의 눈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종종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다른 이름이 되곤 합니다.
5. 경제 속의 바벨탑
바벨탑은 군사력만이 아닙니다.
돈도 새로운 바벨탑이 됩니다.
집은 원래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입니다.
성경은 토지를 생명의 기반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집이 거주의 개념보다 투자의 개념이 되어 버렸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좋아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분노합니다.
심지어 집이 없는 사람들조차 "나도 언젠가 집값 상승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집값 안정을 시도하면 오히려 반대가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주거권보다 투자 수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집이 없는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값이 오르지 않는 사회를 걱정하는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바벨탑의 평화입니다.
돈이 주는 안정감 위에 세워진 평화입니다.
6. 샬롬은 무엇인가
성경의 샬롬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샬롬은 단순히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자기 자리를 찾고,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며,
약자가 보호받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샬롬은 강자의 평화가 아니라 약자의 평화입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입니다.
총으로 지켜지는 평화가 아니라 신뢰와 정의 위에 세워지는 평화입니다.
7. 하나님 나라는 누구의 편인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늘 약자의 편에 서십니다.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병든 자, 억압받는 사람들을 기억하십니다.
예수님 역시 권력자들의 평화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평화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평화는 제나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8. 맺음말
바벨탑의 평화는 힘으로 유지되는 평화입니다.
팍스 로마나는 바벨탑의 평화입니다.
그러나 샬롬은 온전한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바벨탑의 평화는 "우리의 이름을 내자"라고 말합니다.
샬롬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바벨탑의 평화는 높이 올라가려 하지만, 샬롬은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는 강자의 평화가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평화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복음 5:9)
오늘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은 바벨탑의 평화가 아니라 샬롬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샬롬은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