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4일 / 여신도회 북연합회 제1지구 월례회]
생명,살림,일꾼
[시편 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아멘.
완연한 봄입니다.
오늘 서울북연합회 제1지구 월례회를 맞이하며 예배하는 모든 분들의 삶이 봄꽃처럼 활짝 피어나시길 바랍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속전속결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1편의 말씀은 ‘다윗의 시’입니다.
오경웅의 <시편사색>에서는 시편 101편의 제목을 ‘親君子遠小人(친군자원소인)’이라고 하여, ‘군자와 가까이 하고 소인배와는 멀리하라’ 즉 ‘주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악인은 멀리하라’고 해석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6절의 말씀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하는 말씀이 ‘親君子’에 해당하는 문장이겠습니다. 그리고 ‘遠小人’은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신앙을 수단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모두 ‘親君子’ 즉,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 귀한 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봄인 줄 아시는지요?
볼 것이 많아 봄입니다. ‘봄’이라는 단어는 ‘보다’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여기저기 새순이 돋고 꽃이 피어나니 볼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봄은 영어로 ‘spring’이라고 하는데, 새싹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왜 그런 단어로 봄을 표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spring’은 샘물이라는 뜻도 있는데, 봄에 피어나는 꽃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샘물이니 참 단어들이 절묘합니다. 봄을 볼 때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봄에 솟구쳐 오르는 새싹과 꽃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 영성을 간직하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살림이라는 명사의 동사형은 무엇입니까?
예, ‘살리다’입니다. ‘살리다’의 반대말은 ‘죽이다’입니다. 그러므로 ‘살림’의 반대말은 ‘죽임 혹은 죽음’입니다. 그러니 살림은 살리는 일입니다. 이렇게 살리는 일인 살림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문화가 정작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노동’을 천시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바탕이 되는 ‘살림’도 천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우리나라에 전통처럼 퍼진 겁니다. 게다가 남성중심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살림은 여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된 것입니다. ‘살림’, 이 일은 너무 중요한 것이라 여성만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남성과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남자들은 살림을 잘 모르고 여성들이 잘 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가르쳐 줘야 합니다. ‘살림’이 무엇인지, 어두운 죽음의 시대에서 ‘살림’이 무엇인지 잘 배우고, 가르쳐 주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살림’, 무엇을 살립니까?
생명입니다.
生命은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말은 ‘살아가라’ 명령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만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작금의 코로나19 상황은 인간들이 자기의 ‘생명’만 최고인줄로 알고 다른 생명들의 ‘살아갈 권리’를 짓밟은 결과입니다. 조류독감이 걸리면 가금류를 집단 폐사시키고, 구제역이 돌면 소와 돼지를 생매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상해 보십시오. 코로나19에 걸린 인간이라는 종을 폐사시킨다거나 생매장한다면 어떨까요? 그건 아니죠? 그렇습니다. 가금류나 가축들도 ‘그건’ 아닙니다. 아직도 인류는 생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상을 바로 보고 여신도회 여러분은 생명살림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일꾼’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꾼’에 대해당하는 단어는 시편 6절 본문은 ‘이 땅에 충성된 자’입니다. ‘忠’자는 아시는 대로, ‘마음의 중심을 다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다해 일을 하는 일꾼이 충성된 일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충성된 삶을 살아가려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의 중심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슨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되려면, 제대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잘못된 일이면 그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이 제대로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인지 죽이는 것인지를 보면 압니다. 그리고 제대로 보았다 싶으면, 충성하면 됩니다. 그러면 참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1편의 말씀을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시편 101편에서는 이런 충성된 일꾼이 되려면 ‘주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악인은 멀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주님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으니 복된 길을 걸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이 길을 힘차게 걸어가셔서 귀한 열매 맺으시길 바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