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용 요약
기원전 13세기 히브리가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건이지만, 탈출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속박과 억압 그리고 불의처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기에 이스라엘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와 계약을 맺었지만, 히브리는 하나님은 믿고 따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의 히브리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9강 신명기 1~11장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신6:4)
신명기, 모세의 유언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이스라엘에게 알려주고 그의 생을 마칩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울부짖던 히브리를 일으켰고, 광야에서 히브리가 지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도록 인도했습니다. 그의 유언인 신명기는 앞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펼쳐지게 될 새로운 역사에서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줍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
하나님과 히브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신명기는 하나의 계약 문서처럼 쓰였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히타이트나 아시리아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과 주종관계를 맺었는데 신명기는 그 계약문서의 양식과 비슷합니다. 모세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히브리에 해주신 일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한 분이신 하나님이 히브리의 하나님임을 선언하고 십계명을 전합니다. 고대 계약이나 법전 끝에 있던 축복과 저주도 신명기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십계명의 핵심은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가 오직 예루살렘에서 이뤄져야 하는 점도 하나님을 지역 신으로 오해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명기는 다른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해 관심하지 않습니다. 오직 히브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이후 여호수아서부터 열왕기까지 히브리가 그 약속을 지켰는지 아닌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누구도 보여준 적 없는 사랑을 히브리에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10강 신명기 12~34장
신명기가 말하는 계명과 법전의 목적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가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구별된 점은 그것이었습니다.
신명기 법전
오경에 등장하는 세 법전은 출애굽기의 계약법전, 레위기의 성결법전 그리고 신명기에 나오는 법전입니다. 신명기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법은 5~11장, 좀 더 개별적인 문제는 12~26장에서, 축복과 저주는 27~28장에 나옵니다. 신명기 법전의 첫 부분에는 우상 숭배뿐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장소도 예루살렘으로 한정합니다. 이는 여러 지역에 성전이 있게 되면, 서로 다른 신(지역 신)을 섬기듯 신앙생활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신명기 법전의 사회적 계명에서는 ‘고아, 과부, 이방인’을 보호하라고 합니다(가부장제에서 의지할 곳 없는 이들). 히브리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이므로 땅이 없거나 가장이 없어 삶이 힘든 이들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인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의 축복, 땅
고대 근동의 법전에는 법률 조항 뒤에 축복과 저주가 나오는 게 일반적입니다. 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겐 축복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저주가 있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법전이 다른 법전들과 다른 점은 축복과 저주의 내용이 땅에 집중된다는 점입니다. 법을 잘 지키면, 땅을 차지하고 오래 복을 누리겠지만, 하나님을 잊고 그의 계약을 어기면 땅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신명기 법전뿐만 아니라 신명기 전체에서도 땅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신명기를 쓴 시기가 나라를 잃고 강대국으로 유배 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어겼고, 땅에서 쫓겨났다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신명기는 그들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실 줄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 되었습니다. 신명기에 따르면, 히브리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께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후회한 시점은 땅을 잃고 난 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3과 1강 역사서 입문
히브리의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는 왕이나 지도층들의 기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경에서 히브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 있기에 꼭 필요합니다.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역사서를 읽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역사를 통해 자신을 계시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는 역사적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다는 추상적인 고백보다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해방하신 분이라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고백으로 불렸습니다. 선조의 이런 고백들이 시간을 거치며 역사에 남게 된 것입니다.
역사를 해석하기 위하여
두 번째 이유는 역사서가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사를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포함한 역사 기록은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을 전부 기록할 수 없고,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카메라로 찍는다고 해도 카메라 앵글 안이라는 한계가 있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선택이 바로 해석과 관련됩니다. 성경을 포함한 역사 기록에서 기록자의 해석을 배제할 수 없고,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되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그때 일을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 그 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서가 작성된 시기도 잘 살펴야 합니다. 히브리가 그들에게 닥친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은 대개 국가의 위기가 닥쳤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로부터 이뤄진 것임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그냥 역사서를 읽어서는 하나님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역사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역사서의 분류
가장 먼저 형성된 역사서는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기와 열왕기입니다. 이 책들은 남왕국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들은 신명기의 가르침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반면 역대기와 에스라, 느헤미야서는 역대기계 역사서로 부릅니다. 이 책들은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온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밖의 역사서(룻기, 에스더 등)는 역사서라기보다 교훈을 닮은 이야기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2강 여호수아기
신명기계 역사서, 유배의 위기를 맞이하여
신명기계 역사서는 히브리가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 뒤, 모세의 약속을 잘 지켰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들은 남왕국 유다가 그들이 멸망한 과거를 돌아보며,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계 저자들은 이 책들을 통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겼구나’, ‘모세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구나’ 하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갑니다.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들의 역사를 회복하기 위한 메시지를 알려줍니다. 신명기계 역사서에는 분명 그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명심하여라
여호수아 1장 6~7절을 보면 모세에 이어 여호수아가 히브리의 2대 지도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땅, 가나안을 히브리에 나눠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1~12장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이야기, 13~21장은 그 땅을 나누는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여호수아와 히브리에 주어진 하나님의 당부는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를 탈출시켜 해방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그들은 자유인으로서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축복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유언을 잘 따랐습니다. 하지만, 히브리는 주변 나라와 끊임없이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처럼 유언을 남기는데, 히브리가 모세의 율법을 잘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저주로 바뀔 거라는 경고입니다.
잃어버린 땅으로 돌아가려면
여호수아의 고별사(유언)로 등장하는 23장은 미래의 메시지였습니다. 여호수아를 쓴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유언을 듣지 않은 결과를 이미 압니다. 히브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고, 그의 말씀을 거부했기에 나라가 둘로 분열한 후, 멸망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고별사는 과거의 체험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핵심은 가나안, 즉 땅입니다. 겉으로는 영토를 차지하는 내용이지만, 속의 가르침은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땅을 잃을 거라는 메시지입니다. 땅은 히브리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속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히브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땅에서 쫓아내거나 그 주인을 바꿀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을 잃어버린 히브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처음 이야기했던 여호수아 1장 7절로 돌아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며 미래를 기약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질문할 내용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다음 시간 범위 – 3과 3~6강 (97~117쪽)
준비 및 진행 : 허준혁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