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용 요약
5강 출애굽기 1~18장
역사에서 계속되는 탈출
저자는 가톨릭에서 출애굽기라고 불렀다가 탈출기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설명합니다. 출애굽은 이집트(이집트의 한자식 음역)에서 탈출한 단 한 번의 사건이지만, ‘탈출’은 속박과 억압 그리고 불의로부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는 모든 것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이런 일들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고 합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런 일들의 원형 즉, 첫 번째 모델이 된 것입니다. 이전 시간에 히브리(이스라엘)가 언제 어디에 있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의 숫자가 60만이라고 밝히지만, 실제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숫자의 정확도에 집착하기보다 하나님이 왜 히브리를 이집트에서 탈출시켰는지 그 의미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름의 계시
저자는 출애굽기를 1~18장과 19~40장으로 나눕니다. 앞부분은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가, 뒷부분은 주로 법률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앞부분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 처음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밝힙니다. ‘나는 곧 나다. (출3:14)’ 저자는 이 이름에 세 의미를 담습니다. 첫째,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둘째, ‘있는’, 말 그대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의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부터 너희들이 보게 될 것(출7:5)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담임목사님께서 주일예배 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는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을 온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의미는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메시아)이 맞냐고 묻자 예수님은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세례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마11:4).
앞으로 보게 될 하나님의 모습
출애굽기 3장에서 히브리는 아직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그의 맏아들이 죽었을 때야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히브리는 이집트에서 탈출하다가 갈대 바다(홍해)에 이르렀을 때, 파라오의 군대가 뒤쫓아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히브리는 이집트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히브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경험하게) 되었습니다(출14:13). 이후 히브리는 하나님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하신 분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탈출기의 이름처럼 탈출 사건이 반복된다고 말합니다. 이후에도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히브리의 역사에 억압과 불의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히브리를 탈출시키고 해방하신 분입니다.
6강 출애굽기 19~40장
계약, 주 하나님의 백성이 됨
구약성경엔 약속, 계약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히브리와 시내 산에서 계약을 맺고 나는 히브리의 하나님이 되고, 히브리는 그의 백성이 됩니다(출19:5). 히브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히브리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아닌 사회 계층을 의미합니다. 노예나 사회의 하부계층으로 살던 이들은 지배계층이 시키는 일을 하거나 생존을 위해 거친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세우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공동체의 중심(하나님)과 그들이 지켜야 할 법(계약 법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시내 산 계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 계약 이후 십계명과 계약 법전을 주셨습니다(출20:1~). 하나님이 히브리에 바라는 것은 그들이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해방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지만 히브리는 모세가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러 간 새를 못 참고 우상인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습니다. 모세 역시 화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께 받은 계약 판을 깨버립니다. 이후 모세는 하나님께 히브리를 받아달라고 간청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히브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계약 판을 주셨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죄보다 큰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경험했습니다. 저자는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바빌로니아로 유배를 떠났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철저하게 실패한 후에 이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32~34장에는 이런 후대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덧붙입니다.
7강 레위기
하나님이 거룩하지 않다면 우리도 거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종종 우리는 죄를 지어도 되지만 하나님이나 예수님은 무조건 완벽하고 성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달랐고 이것이 레위기의 관심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기에 그분을 섬기는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1~7장은 제사에 대해, 8~10장은 사제 임직 의식에 대해, 11~16장은 정결과 부정에 관한 법이 나오고 17~26장엔 성결법이 나옵니다.
성결법,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
레위기 17~26장에 나오는 성결법은 시내 산의 계약 법전과 공통점이 많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계약 법전이 이전의 역사(이집트 탈출)와 이어진 자유와 해방을 강조했다면, 성결 법전은 거룩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레위기는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역사가 히브리를 거룩하게 하는 과정(축성: 사람이나 물건을 하나님께 봉헌하여 거룩하게 하는 일)으로 봅니다. 여기서 거룩함은 다른 것과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집트 탈출과 연관되며 다른 민족과 구별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일상의 삶
사회 하부계층으로 살던 히브리는 그들을 해방한 하나님과 계약 법전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이후 다양한 법이 생깁니다. 레위기의 성결법은 다양한 법과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법부터 공동체에 필요한 윤리적 내용도 포함됩니다. 성결법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의 올바름을 넘어섭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고 히브리가 그의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는 성결법에서 나오는 이웃의 범위를 히브리 안으로 한정 짓지만, 이는 그들을 주변 나라나 민족과 구별하는 분명한 잣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이방인을 배척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나그네와 이방인을 대하는 자세는 현재보다 훨씬 관대했습니다. 해가 진 이후에 나그네나 이방인을 보면, 집으로 들이고 음식을 대접하고 다음 해가 뜰 때까지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8강 민수기
약속을 믿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수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광야에서’, 영어 제목은 ‘Numbers’입니다. 광야에서 머물렀던 히브리의 숫자를 셌기 때문입니다. 고대에서 인구조사는 전쟁을 위한 군대의 병력의 점검이나 대규모 국가사업을 위한 호구조사를 의미했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인구조사는 가장 불만이 많은 일이었습니다. 머지않아 대규모 공사나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 10:10까지 히브리는 시내 산에 있었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광야의 특성상 물과 음식이 부족했고 바깥의 적으로부터의 위협이 늘 존재했으며 무엇보다 언제 가나안 땅에 도착할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애굽기와 다르게 민수기에서의 불평과 불만은 1차원적인 원인(물, 음식 같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여겨집니다. 민수기 13~14장에서 히브리의 불신은 극에 달합니다. 지파당 한 명씩 뽑아 가나안 땅에 정찰을 보내는데, 열 명은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보고하고, 나머지 두 명(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으로 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계약)은 잊고 불신이 커졌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보여준 능력은 히브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그들이 직접(힘으로)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희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래서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던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대신 그들의 다음 세대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함께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 중 하나님을 신뢰했던 이들이 단 둘뿐이었다는 게 광야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됐으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들은 이집트에서의 노예로 사는 게 더 나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전진하든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광야는 이집트와 가나안의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었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이들을 골라낸 시험대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들로서 광야에서 히브리가 요구받았던 것 같은 믿음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가나안에 가지 못했던 히브리를 떠올리면서 우리에게 과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그리고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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