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내용 요약
1강 오경 입문
오경의 끝, 완결되지 않은 결말?
토라는 히브리어로 ‘법’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모세오경으로 알려진 토라는 율법서로 불리기도 합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포함하며, 세상이 시작된 이야기부터 여러 족장의 이야기,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세가 이집트에서 히브리들을 탈출시키고 야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데려가는 이야기와 히브리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경의 마지막인 신명기를 보면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서 학자들은 다양한 주장(육경설, 사경설, 구경설)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경이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건 하나님이 히브리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해 가나안으로 이끈 역사가 오경의 핵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모세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긴 했지만, 그 역시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시대가 저물고 여호수아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가나안 땅에서 새롭게 시작된 역사는 히브리들에게 이집트에서 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모세는 기력이 다해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뜻이 모세는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땅을 약속받았고, 모세 역시 그 약속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들이 땅을 정복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약속’이 오경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됐고, 히브리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광야든 가나안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고기를 먹던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가나안 땅을 내 것인 양 소유하는 것도 야훼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야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그의 뜻이었고 약속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었습니다. 이집트를 갓 탈출했던 광야에서도, 가나안에 이르러서도 히브리들은 그 전제조건을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우리에게 새하늘새땅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한 일은 히브리들이 하나님이 만든 피조세계에 머무는 나그네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그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오경이 전하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2강 성경의 진리성
창세기의 역사성?
창세기는 구약성경 중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책 이름 자체가 창세(創世)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이 성경을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창세기라면 어떠십니까?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는데, 빅뱅 이론을 배웁니다. 우주의 시작이 빅뱅이라는 대규모의 폭발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청소년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빅뱅 이론을 배운다는 것은 그것이 과학에 근거한 사실이라는 것을 학교가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인 청소년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교회학교에서 배운 건 뭘까? 전도사님과 목사님은 거짓말을 한 걸까? 별별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 배운 사람들은 이런 오해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과학적 주장을 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은 책이지만, 일점일획도 틀린 부분이 없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도구로 성경을 쓰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과 달리 유한한 존재이기에 완벽할 수 없습니다. 시대의 한계나 논리적 오류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이야기가 다른 것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신앙으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의도와 목적을 살펴야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초등학교 때, 갈릴레이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지구를 중심으로 여러 별과 행성들이 돈다는 것이 진리일 때,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그는 지구가 아닌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당시 모든 학문의 중심이 기독교였는데, 과학 분야도 종교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라는 문화 혁신 운동이 일어났고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천체망원경이 등장하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수많은 별과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지구가 멈춰 있고 별이나 행성이 돈다는 말을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종교와 과학은 우주의 시초와 그 역사를 두고도 끝없는 논쟁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하고, 과학자들은 빅뱅 이론을 통한 창조를 주장했습니다.
창세기가 말하려는 것은
저자는 성경을 읽으며 우리는 맞고 그들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과학적 기준으로 성경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올바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습과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의도와 목적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하나를 근거로 다른 것을 부정하는 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창조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이 창조되었고 그래서 모든 만물은 선하고 귀하다는 것, 하나님이 사람에게 세상을 돌볼 청지기의 책임을 맡기셨으며 우리는 그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 이후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히브리의 선조들과 함께하셨으며 그 체험을 전해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인 근거를 따져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의미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셨는지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전달하고 기록한 이들의 역사적 오류나 부정확함을 비난하지만, 이는 당시 시대적 한계였을 뿐, 그 의미는 살아있다고 일갈합니다.
3강 창세기 1~11장
저자는 창세기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1~11장의 창조 이야기와 12~50장까지의 이스라엘 선조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1~11장 창조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죄가 등장합니다. 1장과 2장은 전승이 다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창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후 인간의 죄가 거듭되면서 세상이 망가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창세기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선하고 보기에 좋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계속되고 있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죄보다 강한 하나님의 복
3장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4장에서는 가인이, 6장과 11장에서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 악이 팽배합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후회하시고 홍수로 모든 것을 없애기로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매번 살려주셨습니다. 죄인이었던 가인도 보호해주셨고, 피조물의 나약하고 불완전한 모습을 보시고 멸망시키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더 크시기에 세상은 더 악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비와 복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4강 창세기 12~50장
후손의 약속, 성조들의 이야기
창세기 1장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예언하시고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아브라함이 만약 그 말씀을 거역했다면, 이후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극한의 상황(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에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이후 등장하는 이스라엘 선조들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약속보다 약속하신 분, 하나님을 향해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땅의 약속, 섭리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야곱은 살던 곳을 떠난 경험이 있습니다. 나그네, 떠돌이의 삶이었습니다. 요셉도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 갔습니다. 하지만 이는 요셉이 형들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죽음으로 내몬 형들에게 복수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이뤄졌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계속됩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살았던 이들을 성조(聖祖) 즉, 거룩한 조상이라 불렀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기원과 신앙의 역사를 설명했습니다.
질문할 내용
준비 및 진행 : 허준혁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