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2월 중순까지 진행될 수요성경공부 가을학기의 교재는 ‘구약 종주 –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입니다. 책의 저자는 안소근 가톨릭 수녀입니다. 그래서 교재에 가톨릭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다소 생소하시더라도 기독교의 역사와 뿌리를 가진 이들의 언어임을 헤아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홀로 책을 읽으실 때, 모르거나 이해가 안 가는 말이나 부분이 있으면 표시해두었다가 함께 공부할 때, 질문하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번 교재는 우리 모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수요성경공부 전에 함께 공부할 분량을 읽어오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강 칼날 같은 하나님의 말씀
내가 원하는 성경?
우리는 보통 두 가지의 방법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읽어야 할 분량을 아무 생각 없이 읽거나 내가 읽었을 때, 좋았던 부분만 읽는 것입니다. 이 두 방법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주어진 분량이기에 아무 생각 없이 읽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신앙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예전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방법이 성경을 읽는 것밖에 없었기에 ‘읽는 것’ 자체에 많은 의미를 두었지만, 지금은 성경을 보조해줄 수 있는 쉬운 교재가 많기에,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나와도 그냥 읽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또,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읽는 건 하나님의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오냐오냐’만 하지 않고 때론 꾸중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모습을 보이십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부분만을 발췌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신앙을 좁고 폐쇄적으로 만듭니다. 내 생활에 힘을 줄지 몰라도 신앙에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 찾기
기독교는 ‘계시종교’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상대적인 존재인 우리가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본 하늘을 하늘의 전부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보고 경험했던 것이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고백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옳다고 확신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자기의 생각이나 신념을 주장하다가 그릇된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언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이스라엘 사람의 대부분은 그들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증언하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 속에 어떻게 임재하시는지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원하는 바를 찾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규정할 것입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최근 문해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문해력은 말과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예전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은 글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지금 시대에 성경 통독을 몇 번 했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주장이 무의미한 것입니다. 몇 번 읽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읽고 그 의미를 파악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그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는 게 제일 안 좋습니다. 성경의 내용 안에 담긴 하나님의 모습을 찾고 그 메시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경 전체의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하나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강 멀리서 바라본 성경의 모습
유대교의 히브리어 성경
종교마다 경전이 있듯 같은 뿌리에서 나온 유대교와 기독교, 또 기독교의 많은 분파도 각자의 성경이 있습니다. 같은 부분도 있고, 어떤 성경엔 있지만 다른 성경엔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보통 유대교의 히브리어 성경을 1경전이라고 부릅니다. 토라는 흔히 모세오경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그리고 예언서는 둘로 나누어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가, 후기 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및 열두 예언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문서로는 개인의 삶과 관련된 부분이 포함됩니다. 이렇게 히브리어 성경은 토라와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경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흩어져 살기 시작하면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많은 사람이 쓰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번역본에는 히브리어 성경에 없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그리스어 번역본에만 있는 내용을 성경으로 봐야 하는지 의견이 많았는데, 가톨릭은 이를 인정하였고, 개신교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1쪽 주황색 상자 참조]
율법서, 역사서, 지혜서, 예언서
개신교의 성경은 토라(모세오경)와 역사서 그리고 예언서가 뒤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교와 다른 기독교 구약성경의 특징입니다. 구약성경의 토대가 되는 토라가 제일 먼저 배치되고 역사서와 구분된 예언서는 미래를 기대하는 책으로 신약과 연결되기에 뒤에 배치했으며, 그 사이에 역사서와 지혜서가 배치되었습니다. 이는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의 예언이 되고, 신약성경의 역사 속에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 배열표 참조-유대교나 가톨릭의 성경 구성도 살펴보세요. 탈출기는 출애굽기, 판관기는 사사기, 에제키엘은 에스겔, 코헬렛은 전도서입니다.]
3강 구약 시대의 역사
교재는 성경을 순서대로 읽지 않고,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시대의 순서에 맞게 읽고자 합니다.
왕정 설립 이전
실질적 역사의 근거는 자료 혹은 유물입니다. 즉,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성경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성경의 실질적 역사로 주장하는 때는 출애굽(이집트 탈출)부터입니다. 그 이전의 역사는 원 역사, 다른 말로 역사 이전의 역사로 구분하며 실제 역사라기보다 신앙고백이 담긴 설화(이야기)라고 봅니다. 약 기원전 1200년대에 모세의 인도로 히브리가 이집트에서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바통을 이어받아 히브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죽고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를 사사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때 히브리는 열두 지파로 나뉘어 있었고 각자 나눠 받은 곳에서 정착했습니다. 사사 시대에는 히브리가 하나님께 요청하면 사사를 보내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전쟁 영웅이거나 히브리의 문제를 판결해주는 역할만 감당했고, 그 직을 세습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주위에서 크게 성장하는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고 히브리도 강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합니다.
왕정 시대, 왕정 붕괴, 유배
왕을 세우는 것은 반대가 많았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이 왕정을 반대한다는 뜻을 직접 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히브리의 요구가 거세 하나님은 결국 왕정을 허락합니다. 히브리의 첫 왕은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가장 힘이 약한 지파 출신이었기에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고 또, 사무엘이 권력을 견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북쪽 지파 중심이었던 사울과 달리 다윗이 왕이 되어 남쪽 지역까지 확장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며 명실상부 남북 통일왕국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이어받았고 크게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이후에 여로보암이 북쪽 열 지파의 지지를 얻어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고 르호보암이 남쪽 지파의 지지로 남왕국 유다의 왕이 되면서 나라가 둘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 각 나라의 왕이 바뀌었고, 기원전 8세기 이후로 강대국이 등장하면서 이 두 나라는 세계정세에 휘말리게 됩니다. 기원전 8세기(722년)에 아시리아가 등장해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기원전 6세기(587년)에 남왕국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이 불탔고, 유다의 엘리트 권력들이 바빌로니아로 유배당했습니다.
귀향 후
유배당한 지 50년쯤 되던 해에 등장한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는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활동을 중심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이 성전을 재건하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기원전 4세기(336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즉위하여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거대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급사하자, 나라도 급속도로 분열되었습니다. 그중 셀레우코스 가문이 유다 지역을 다스렸는데, 그들이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하자 마카베오 형제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잠시나마 독립하여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웁니다. 하지만, 하스모니아 왕조의 내분이 벌어졌고 기원전 1세기(63년)에 로마를 끌어들이면서 하스모니아의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강대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66년과 70년에 독립전쟁을 벌였지만, 강력한 로마의 군대 앞에 무너지고 말았으며, 이때 성전도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조용한 평화가 아닌 죽음을 체험한 역사 속에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임을 알게 하십니다.
질문할 내용
준비 및 진행 : 허준혁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