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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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 6강 숨겨진 보물, 7강 사마리아 사람

  • 관리자
  • 2023-06-0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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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복습

 

  • 겨자씨이야기는 작지만, 커진다는 주제가 아니라 순식간에 퍼진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 작은 겨자씨레바논의 백향목과 대비되어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 빈 항아리이야기는 하나님 나라가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새 도래한다는 뜻입니다.
  • 나라는 뚜렷이 보이는 기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 예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자의 마음대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6강 밭에 숨겨진 보물

 

숨겨진 보물

 

오늘의 이야기는 이전 누룩이나 겨자씨 이야기보다 이해하기 쉽습니다. 압축된 단어로 표현하기보다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보물 찾기

 

보물을 발견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행운입니다. 삶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TV 프로그램 진품명품을 보면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감정을 기다리는 참가자의 표정을 보면서 시청자도 함께 기대합니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가치가 높게 책정되기를 바랍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보물이나 돈을 땅에 묻어 숨겼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이 이를 증명합니다(87). 잠언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떻게 알려고 해야 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잠언 2장을 인용합니다. 21~5절을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터득하기 위해 보화를 찾듯 찾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선행이나 고된 노동 뒤에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

 

보통 보물 이야기는 발견으로 시작되고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압바 유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 예로 들었습니다. 압바 유다는 현자들을 기꺼이 돕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진 것이 사라지자, 그보다 더 의로웠던 아내가 그에게 남은 밭 중 절반을 떼어 그들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아내의 말대로 밭을 팔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이 떠나고 유다는 남은 땅을 경작하러 암소와 함께 갔는데, 밭을 가는 도중에 암소가 넘어져 발이 부러졌습니다. 불행은 연이어 오는 거라고 믿었던 그에게 거룩하신 분이 그의 눈을 열어 보석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입니다.

 

문제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물을 발견한 뒤, 그 자리에 숨겨두고 가진 것을 팔아 그 밭(자리)산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 사람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옳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비유의 핵심이 보물을 발견해서 생긴 기쁨이라는 것이었고 그르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보물을 발견했기에 주인을 찾아야 하며, 밭의 주인에게 보물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일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저자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제시합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카샤 왕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때, 한 사람이 친구와의 소송 건으로 왕에게 자문하러 왔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척박한 땅을 샀고 그 땅에서 보물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자신은 척박한 땅만 샀을 뿐, 보물은 사지 않았다고 하고, 친구는 자신은 땅을 포함해 그 안의 모든 것을 팔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뭔가 이상하죠? 땅을 산 사람이든 판 사람이든 보물에 욕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카샤 왕은 두 사람에게 딸과 아들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들을 결혼시켜 그들에게 보물을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알렉산더 왕이 웃자, 카샤 왕은 알렉산더 왕에게 그것이 그의 문제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 왕은 그들을 모두 죽여 보물을 자신이 차지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보물 이야기와 딱 맞지 않아도 생각할 여지를 줍니다. 저자는 비유의 핵심이 기쁨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행동이 윤리적이었나 묻습니다.(이후 저자는 도마복음의 이야기도 언급하지만, 예수님이 말한 이야기와 유사성이 거의 없어 더 언급하지 않습니다.)

 

숨김과 찾음

 

저자는 원어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보물을 발견한사람이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갔고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이렇게 동사 두 개가 연이어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리스 원어에서는 발견숨김은 과거형으로 쓰였고 기뻐하고 돌아간것과 파는것과 사는것은 현재형으로 쓰였습니다. 이 말은 그가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보물을 숨겼다는반응의 묘사입니다. 보통 보물은 의로운 삶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은유였습니다. 그런데 비유 속 보물은 발견한 이가 의롭다는 이야기도 없고, 오히려 도덕과 다른 행동을 유발합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 영화를 예로 들지만, 우리나라에선 너무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았다, 은혜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의 두 가지 면모를 봅니다. 어떤 목회자는 설교를 잘했지만, 설교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교인들이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도록 도왔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목회자는 자기의 잘못에 눈감으며 삶을 합리화했습니다. 또 어떤 교인은 교회에서는 신실한 사람으로 높은 직분을 얻었지만, 사회에서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탐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연히 발견한 보물로 인해 기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이라고 말하며 이야기의 중심이 기쁨이라고 해석한 이들도 똑같이 보물에 현혹당했다고 주장합니다.

 

7강 사마리아 사람

 

사마리아 사람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모범의 예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었던 이유로 놀라운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지만 영웅의 면모를 보였던 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웅의 이야기는 우리를 평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고 덧붙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 이야기가 모범의 예로 알려져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저자는 그렇게 된 이유로 누가 공동체의 편집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문맥에서 이야기만을 떼어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근거로 마가복음 1228~34절을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오늘의 이야기 앞부분처럼 예수님이 율법학자와 대화하는 이야기입니다. 율법학자가 가장 중요한 계명에 관해 물었고, 예수님은 신명기 6:4에 나오는 쉐마’,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들으라라는 이야기로 대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이 다른 점은 누가복음에서는 율법교사가 그러면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하고 재차 질문했지만, 마가복음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공감했고, 예수님은 네가 하나님 나라에 멀리 있지 않다라며 그를 칭찬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의 결말이 다른 것으로 보아 누가 공동체가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가져와서 편집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게다가 뒤이은 오늘의 이야기가 문맥상 맞지 않다고도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율법교사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하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고 물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율법교사는 이웃을 대상으로 여겨 누가 내 이웃이 될 것인지에 대한 기준 혹은 명확한 경계를 짓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예수님은 누가 이웃이 되었는가 하는 주체의 문제로 답했기 때문에 문맥상 맞지 않고 이웃에 대한 정의 문제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오늘의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로 본 것일까요?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이 이야기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리고는 아름다운 지역이어서 헤롯 왕(아르켈라오)의 겨울궁전이 있었고, 많은 권력자의 별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기 위해서는 사막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곳에 몸을 숨길 곳이 많아 당시 위험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떼로 다니지 않고 모두 혼자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 두 가지 설정을 덧붙입니다. 하나는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방인이었다면, 다른 설명이 붙여졌을 거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입고 있던 옷의 색으로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자는 강도 만난 사람이 사회적 계급을 알 수 없는 유대인이라고 설정합니다.

 

다음엔 그가 거의 죽게 된 채로라는 말을 해석합니다. 학자들은 보통 두 가지로 해석했는데, 하나는 거의 죽었으니 죽은 것으로 봐야 한다아니면 아직 죽지는 않아서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새번역에는 거의 죽게 된 채로라고 번역되었지만, 개역개정에는 거의 죽은 것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죽은 것과 아직 죽지 않은 것에 당시 대응 방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성경을 보면, 제사장과 레위인의 반응은 거의 똑같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지금 상식으로는 당연히 구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를 죽은 것으로 간주했다면, 시신을 만지지 않아야 했습니다. 레위기 계명에 제사장은 주검을 만지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봤다면 당연히 그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그를 어떻게 봤느냐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어서 그들이 강도 만난 사람을 죽었다고 봤다면 지금 우리는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이제 유대인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 계급이 하나씩 아래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를 삼각 구조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사마리아인이 등장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관계는 역사를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그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예수와 만난 사람들-사마리아 여인 참조). 솔로몬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북쪽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왕이 되어 이전과는 다른 정치(전쟁을 멈추고 핍박과 착취를 그만두는)를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그들의 요구를 무시했고 결국 북쪽 지파는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세워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졌습니다. 이후 펼쳐진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들은 서로 공격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고레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을 돌려보내고 성전도 짓게 했는데, 이때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북이스라엘의 사람들을 배제하려고 피의 순수성문제를 제기해 남쪽 예루살렘에는 남유다의 성전이, 북쪽 세겔(그리심산)에는 북이스라엘의 성전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 둘은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에서 예상과 달리 사마리아인이 등장하자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 더 나쁜 행동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예상을 빗나가 그는 측은함을 느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정의로운 유대인 영웅은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는 사마리아인이 그를 정성껏 돌보고, 여관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의 안위를 부탁한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아까 영웅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이유는 우리가 영웅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사장과 레위인은 실패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영웅(자신)이 나설 때라고 여겼는데, 결코 자기와 동일시할 수 없는 대상인 사마리아인이 등장해서 이야기는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반응을 세 가지로 예상했습니다. 하나는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강도 만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남보다도 못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저자는 첫 번째 입장, 이 이야기는 현실성이 없다, 즉 꾸며낸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합니다.

 

랍비문학의 비유

 

여기서 저자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랍비 나훔의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랍비 나훔은 두 눈과 손, 다리를 모두 잃었고, 남은 몸은 부스럼이 생겼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안타까워하자, 그는 자기의 몸이 그렇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여행 중에 만난 한 가난한 사람을 돕지 못해 죽게 되어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몸에 저주를 기도했고, 그것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랍비 나훔은 오늘의 이야기에서 등장한 제사장이나 레위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영웅의 면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야기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아까 언급했던 세 번째 가능성이었던 강도 만난 사람과 동일시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야기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가 유대와 사마리아의 구분이 필요 없는 곳이며,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각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봤습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말씀해주세요.
  • 조금 다른 해석

 

김창락 한신대 명예교수는 보물 이야기 뒤이어 나오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이야기와 연결 지어 보물을 발견한 기쁨으로 가진 것을 다 팔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대상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나님 나라 운동의 동력을 잃어갈 때쯤, 모든 것을 내놓고 삶을 바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다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 부귀영화처럼 눈에 보여 얻는 기쁨은 아니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그런 기쁨을 통해 생기는 과감하고 빠른 모습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도 저자의 주장처럼 누가 공동체의 편집이라기보다 실재했던 하나의 이야기로 봤지만, 저자처럼 모범 이야기로는 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모범 이야기라고 가정했을 때, 주인공이 굳이 사마리아인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유대인이 듣는다면 기분 나쁘거나 크게 당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이 이야기가 교육적 차원에서의 모범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옳게 보이려는 율법교사를 공격하기 위해, 더 나아가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선한 일은 너희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는 이웃을 사랑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고 있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저자(스캇)가 주장한 문맥과 맞지 않다고 한 율법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도 김 교수는 율법교사의 이웃은 행위의 대상을 의미하기에 그 범위 혹은 경계를 정하려는 의도로 봤습니다. 누구에게 선을 베풀고, 누구에겐 선을 베풀지 않아도 되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선 긋기가 아니라 행위의 주체로서 이웃을 설정하고 선을 베푼 사람이 사마리아인이었다고 말함으로써 자기중심적이며 독선적이었던 그의 방식을 비판했다고 해석했습니다.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예수의비유새로듣기 #버나드브랜든스캇

 

* 위 글은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교재인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버나드 브랜든 스캇 저)'를 요약 및 첨가해 발제한 것입니다.

* 발표자는 허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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