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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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 4강 겨자씨, 5강 빈 항아리

  • 관리자
  • 2023-05-3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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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복습

 

  • 이야기는 Q, 마태복음, 누가복음, 도마복음에 실려 있고, 비유의 기능을 잘 반영했습니다.
  • 누룩은 시체가 부푸는 모양과 비슷했기 때문에 도덕적 타락으로 여겨졌습니다.
  • 밀가루 서 말은 유대인에게 아브라함이 들은 기쁜 소식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18)
  • 하나님 나라는 죽으면 가는 곳이나 교회가 아닌 당시 로마제국의 팍스 로마나와 비교되었습니다.
  • 누룩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었는데, 당시 지배계급이 아닌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4강 겨자씨

 

겨자씨

 

겨자씨 이야기는 누룩 이야기와 함께 등장할 때가 많아서 비슷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도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 가장 작지만, 땅에 심기면 가장 큰 푸성귀로, 결국엔 큰 나무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작은 작지만, 나중에 결과는 커진다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이야기와도 비슷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 번역을 보면 해석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Q와 마가, 마태, 누가, 도마복음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를 어떤 이야기가 더 단순한가 혹은 복잡한가로 순서를 매겼습니다. Q와 누가복음, 도마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순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눈 이유는 <전승은 전개될수록 더욱 복잡하게 변하지, 단순해지는 법은 없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이야기를 찾으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을 확률이 높다고 본 것입니다. 그중, 예수 세미나 회원(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도마복음의 이야기를 선호했는데, 겨자씨가 나무가 아니라 큰 가지로 자란다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겨자씨는 큰 나무로 자라는 게 아니라 큰 가지로 자랍니다. 하지만, 저자는 겨자씨가 작은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고, 다른 비유 이야기인 누룩 이야기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기에 예수 세미나의 결과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Q와 누가복음이 가장 초기의 이야기일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 이야기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누룩에 비해 이상하지도 도발적이지도 않고, 하나님 나라에 비유하기에 겨자씨는 일년생 풀이며 야생식물일 뿐입니다.

 

겨자씨에 대한 플리니의 견해

 

플리니는 기원후 1세기(CE 23~79) 사람인데, 37권의 책을 썼는데, 그 책은 일종의 백과사전이었습니다. 겨자는 쓸모가 많은 식물이지만, 잡초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이 겨자씨를 정원에 심었다고 말했는데, 플리니는 이 같은 경우를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플리니의 경고뿐 아니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면 결코 섞어서는 안 된다는 레위기의 성결법전(1919)과 그것을 정교하게 다듬은 미쉬나의 가르침도 어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아까 언급했던 욥기의 이야기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야기의 실마리로 나무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라는 구절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글이 아닌 말로 전달하는 사람들은 문자 하나하나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단어 혹은 표현이 가리키는 어떤 게 있습니다. ‘밀가루 서 말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들었던 기쁜 소식을 떠올리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두 구절(‘나무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라는 구절)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떠오르게 합니다. 에스겔의 두 본문(에스겔 17:22~23, 31:1~6)과 다니엘의 한 본문(다니엘 4:10~12)이 가지나 그늘에 새들이 깃들이는 거대한 나무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겨자씨와 거대한 백향목이 떠오르는데, 여기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예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작은 겨자씨같을까 아니면 거대한 백향목같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로마제국이었다면 당연히 거대한 백향목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당시 누구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이런 생각을 뒤집고 하나님 나라를 작은 겨자씨로 비유했습니다. 정원에 우뚝 선 큰 나무가 아니라 어느새 정원을 뒤덮을 겨자 풀 같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로마제국처럼 강력한 힘으로 모두를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가장 작고 약하지만, 은근히 뒤덮인 잡초 같은 겨자 풀이 하나님 나라라고 가르치신 겁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예수의 비유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을 뒤엎고 때론 과격하고 공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과격함과 공격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그 좋은 예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당시 강력한 국가로서의 백향목을 떠올렸던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고 은근히 퍼지는 힘없는 겨자씨에 비유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쓴 사람들은 시작은 작지만, 큰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기독교 전통이 예수가 비유를 통해 전한 하나님 나라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거나 못 들은 척 왜곡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가 전한 겨자씨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5강 빈 항아리

 

도마복음의 비유

 

도마복음엔 비유가 풍부합니다. 그래서 다른 외경 복음이나 요한복음과도 구별됩니다. 도마복음에 있는 13개의 비유 중 11개가 공관복음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저자가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비유에 주목한 점은 비유의 개수가 아니라 알레고리적 해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두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는 원래 있던 비유 이야기에서 도마복음을 쓴 사람이 알레고리를 없앴나 하는 의문이고, 다른 하나는 도마복음의 비유 이야기는 공관복음에 나오는 비유들이 알레고리로 해석되기 전에 만들어졌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전자보다 후자에 집중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비유 이야기는 앞뒤 맥락이 있기에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유 이야기만 떼어놓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있는데 우리는 이미 이 이야기를 나의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둘째, 도마복음의 비유에는 공관복음에 등장하는 각 저자들의 특징적인 어휘나 문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복음서마다 쓴 사람과 그의 배경이 다르기에 그만의 독특한 어휘나 문체를 볼 수 있는데, 도마복음에는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두 가지 근거로 도마복음의 비유는 공관복음의 비유와 구별되며 초기의 기록된 자료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공관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도마복음의 비유 두 개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빈 항아리와 자객의 비유를 예수의 비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출처가 도마복음뿐이라는 점과 도마복음이 외경이어서 해석의 전통이 제한되었다는 점이었지만 비유의 기능(과격성, 공격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빈 항아리

 

빈 항아리 이야기는 도마복음에서 누룩 이야기와 자객의 이야기 등 세 개의 연속된 비유 중간에 등장합니다. 저자는 큰 것과 작은 것,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 강한 것과 약한 것을 보여주는 비유 3부작이라고 봅니다. 빈 항아리의 경우,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에 관한 이야기인데, 부정적인 예(상실)에 속합니다. 저자는 비유를 해석할 때, 비유의 구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데, 이 비유는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인용한 학자는 몽트피오레라는 학자인데, 그는 비유 속의 하나님 나라가 순식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새 도래하는 의미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이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항아리가 비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였습니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이기도 하지만, 텅 비어있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해하기 쉽게 여인이 돌아온 먼 길을 여행이나 인생 여정으로 보고, 다른 것(가진 것이나 내 앞길)에만 몰두하다 보니 중요한 것(하나님 나라)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경고로 볼 수도 있지만, 저자는 다른 해석을 합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상실 혹은 재난 혹은 텅 빔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비유는 누가복음(12:16~20)의 부유한 농부의 이야기와 도마복음의 부유한 투자자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둘 다 넉넉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상실한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구약성경 열왕기(17:8~16)에 등장하는 사렙다(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와 대조적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라에 기근이 닥쳤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렙다(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 명령했으니 가서 먹으라고 명령합니다. 엘리야는 사렙다에서 만난 과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과부는 자기와 자식을 위해 밀가루 한 줌과 기름 몇 방울밖에 남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마지막 양식을 만들고자 땔감을 줍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자기에게 빵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밀가루와 기름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인이 그대로 행하자, 예언도 말 그대로 이뤄졌습니다. 빈 항아리의 이야기는 지금 이야기와 대조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빈 항아리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렙다(사르밧) 과부처럼 엘리야의 이야기도 없습니다. 부족함이 채워지는 하나님의 기적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끝날, 번쩍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는 어떤 나라가 아니라 누가복음(17:20~21)에 나오는 예수와 바리새인의 대화 속에서 알 수 있듯, 그의 나라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텅 빔의 역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우리 가운데 있고, 땅에 퍼지지만 역시 볼 수 없다는 역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말씀해주세요.
  • 해석도 여러 해석 중 하나입니다. 본인만의 해석을 만들어 보세요.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예수의비유새로듣기 #버나드브랜든스캇

 

* 위 글은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교재인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버나드 브랜든 스캇 저)'를 요약 및 첨가해 발제한 것입니다.

* 발표자는 허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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