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수요성경공부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 3강 누룩

  • 관리자
  • 2023-05-24 10:28:00
  • hit603
  • 58.122.40.57

지난 시간 복습

 

  • 갈릴리에 살았던 유대인 농부(전문직 목수 아닌 잡부 혹은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 비유는 당시 사람들에겐 쉽고 단순했지만, 지금 우리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 비유는 당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지배문화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데 반해, 비유는 지배문화를 전복시킵니다.
  • 흐르면서 비유의 과격함과 공격성이 무뎌졌는데, 우리는 이 부분을 잘 살펴야 합니다.

 

3강 누룩

 

누룩

 

누룩에 관한 이야기를 선정한 이유는 예수 세미나*에서 실제 역사에서 예수님이 했을 말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누룩 이야기는 예수님의 어록자료와 마태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도마복음에도 실려 있습니다. 또한, 저자가 이야기했던 비유의 기능(과격함과 공격성)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룩 이야기는 그 의미가 매우 압축적이고 현재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말이기에 번역자들이 어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번역자들은 그 의미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시대와 환경에 친숙한 말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번역들 & 압축

 

저자는 누룩서 말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서 말이라는 말은 번역본마다 다르게 해석했는데, KJV(흠정역)‘three measure of meal’, NIV(국제번역본)‘60 pounds’, TEV‘1 bushel’, SV‘50 pounds’ 등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서 말이라는 말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피를 재는 단위인 18리터 되는 양입니다. 요즘 물이 1.8리터로 나오니 열 개 정도이고 서 말이니 30개 정도의 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좀 많은 양인가보다라는 정도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서 말이라는 말이 당시 청중들에게는 중요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누룩 이야기를 읽으면, 한 여인이 빵을 만들고 있는 그림을 상상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고대에서 누룩의 발효 과정은 도덕적 타락의 은유로 사용될 때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누룩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곳은 마가복음 8:15, 마태복음 16:12. 누가복음 12:1인데, 그중 마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바리새인들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예수께 시비를 걸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누룩을 바리새인의 가르침으로 해석했고, 누가복음에서는 바리새인의 위선으로 해석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9에서 누룩을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이들의 잘못으로 비유했고, 고린도전서 5:6~8에서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음행한 모습 속에서 그들의 교만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누룩을 치우고 성실과 진실을 토대로 누룩 없이 빚은 빵을 지키자고 권면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구약성경에서도 누룩 없는 빵이 거룩에 대한 강력한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누룩이 어떻게 부패에 대한 은유인지, 반대로 누룩 없는 빵은 왜 신성함과 거룩함의 은유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청중들은 누룩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적절한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밀가루 서 말은 영어 번역의 경우 다양하게 번역된 만큼 번역자에게도 혼란스러운 표현이었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많다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이 말을 했던 예수를 비롯한 랍비 같은 사람들은 환유라는 방법을 통해 말하곤 했습니다. 저자는 환유에 대해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직접적으로 얘기하기보다 빗대어 얘기할 때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환유는 어떤 말을 연상시키는 다른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와대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대한민국 정부를 떠올립니다. 백악관이라고 하면, 미국 정부를 떠올립니다. 이처럼 어떤 말을 다른 단어를 쓰면서 떠올리게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다른 이야기나 민담, 신화와 전설 같은 데서 자기 이야기를 끌어옵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밀가루 서 말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기쁜 소식, 이삭의 탄생을 예언하는 이야기로 창세기 18장에 나옵니다. 당시 자기 장막에 앉았던 아브라함은 맞은 편에 앉은 세 사람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물론 그 말이 그들에게 기쁜 소식임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당시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기에 웃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름이 이삭이 된 것입니다. 어쨌든 당시 청중들은 밀가루 서 말을 들으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고, 당시 청중들은 이삭 이야기를 떠올리며 예수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비유를 반죽하기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하늘나라와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직접 부르지 않았기에 표현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마태복음의 표현이 유대인의 표현이라면 누가복음의 표현은 이방인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의 아버지의 제국적 통치라는 표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칭하여 하나님 나라가 당시에 무엇을 뜻했는가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현재 죽으면 가는 곳으로 이해하거나 교회에서만 쓰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이 말은 혁명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영어로 표현하면 ‘kingdom of God’입니다. 왕국이라는 표현은 현대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 고대 사회에서 왕국 즉, 그리스어로 바실레이아(βασιλεια)’는 왕의 통치 또는 그의 통치력이 미치는 범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바실레이아는 로마제국뿐이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로마제국의 통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불렸고,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면서 로마인들에게 제공한 평화였습니다. 그가 준 평화는 그동안 다수가 다스렸던 로마제국을 황제 중심으로 하는 질서였고, 로마인에겐 평화였지만,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압제였습니다. 그랬기에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βασιλεια του θεου)’를 들은 청중들은 로마제국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말한 팍스 로마나나 유대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와 비교할 수 있었고,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또 다른 대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대로 죽으면 가는 어떤 곳 혹은 교회에서만 의미 있는 말로 쓰였던 게 아니라 당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로마제국 황제의 통치와 정반대되는 말이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비유엔 하나님 나라가 누룩과 같다는 말 때문입니다. 오히려 누룩이라면 로마제국 황제의 팍스 로마나에 비유했어야 합니다. 게다가 하나님 나라에 당시 사회를 주도했던 남성이 아닌 여성이 등장했고 그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여인은 밀가루 서 말에 누룩을 섞었습니다. 만약 여인이 빵을 만들었다면, 누룩을 넣은 것인지 아닌지 누구든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밀가루 서 말이 하나님 나라임을 말합니다. 누룩은 밀가루를 부풀어 오르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룩은 무엇을 뜻한 걸까요? 당시 유대에서 죄인으로 여겨졌던 이들입니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 죄를 짓고 회개하지 못해 죄인이 된 이들, 가난해서 속죄 제사를 지낼 수 없었던 이들, 사회적 차별에 신음하고 있던 이들이 누룩이었습니다. ‘누룩 이야기는 유대에서 누룩 같은 대우를 받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유대에서 가장 많았지만 가장 작은 힘을 가졌습니다. 이제야 밀가루 서 말을 언급해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누룩 이야기에서 여인은 밀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어 빵을 만들었고, ‘밀가루 서 말을 통해 아브라함이 잔치를 연 것처럼 이웃을 대접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밀가루 서 말이라는 많은 양은 하나님 나라였고, 누룩은 그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유대에서 가장 많으나 힘없는 이들 즉, 죄인이 된 이들에게 좋은 소식이 된 것입니다. 물론, 유대에서 정결하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겐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렀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누룩 이야기는 그 확신을 무너뜨렸고 그들이 정죄했던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중심에 세웠습니다. ‘누룩 이야기는 그 상황을 명시하고 진실하게 그리는 것이 마술 지팡이로 만들어내는 거짓 기대보다 더 큰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생각해 볼 문제

 

  •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말씀해주세요.
  • 질문 정말 당시 청중들이 밀가루 서 말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이 떠올랐을까요?
  • 해석도 여러 해석 중 하나입니다. 본인만의 해석을 만들어 보세요.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예수의비유새로듣기 #버나드브랜든스캇

 

* 위 글은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교재인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버나드 브랜든 스캇 저)'를 요약 및 첨가해 발제한 것입니다.

* 발표자는 허준혁 목사입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