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비유와 예수
비유는 그동안 수수께끼나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뜻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마가복음 4장 11절을 보면, 예수께서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이에게는 단순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번만 들어도 바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비유는 쉽게 해석되었습니다. 이는 알레고리라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비유가 단순하지 않아서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예수를 어떻게 알고 있나?
예수의 비유를 배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저자는 먼저, 예수를 갈릴리 사람, 유대인, 농부라고 규정합니다. 갈릴리와 유대인, 농부라는 배경을 모르고 예수를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본 것입니다. 1985년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 당시 예수의 말씀으로 알려진 것 중에서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것을 간추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모임은 ‘예수 세미나’라고 불렸는데, 어떤 부분이 역사적으로 예수가 직접 말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학자들이 직접 판단한 것이어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자는 ‘예수 세미나’의 연구 결과를 신뢰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적 예수와 그가 말한 비유에 대해 해석하고자 합니다.
예수의 비유가 여러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과정이 참되고 올바르다고 보는 저자의 두 가지 근거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 비유가 흔하지 않았다는 점과 비유의 주제가 바뀌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비유는 구약성경에도 없었고, 요한복음에도 없었습니다. 또한, 여러 사람을 통해 예수의 비유가 전달되었고 그 과정에서 덧붙이거나 빼는 편집 행위가 일어났음에도 그 목적이 크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달자의 스타일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마다 예수의 비유를 자기의 관점으로 재구성해서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직접 말한 무언가를 찾기보다 비유의 분위기나 형태와 구성을 찾고자 합니다.
온건한 제안
우리가 예수의 비유를 이해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시도하는 것은 공감입니다. 먼저, 예수와 대화하는 나를 상상하고, 역사의 현장에 예수와 함께 있는 듯한 생각에 빠집니다. 그렇게 예수의 마음을 알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는 답을 주시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일은 오롯이 내 해석에 불과합니다. 저자는 비유를 이야기꾼이 말로 지어낸 창작, 즉 허구(fictions)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비유를 통해 그가 이 세상에서 사는 방식을 어떻게 다시 설정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예수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의 비유를 해석하는 데 있어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주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예수의 비유가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근거는 만약 예수의 비유가 어렵고 복잡하다면 당시 예수의 비유를 들었던 청중이 이해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대부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쉽게 이해시키려면, 예수가 선택할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최대한 단순하고 그들에게 이해가 빠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론을 펴는 이들은 예수의 비유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고 소박했을지 몰라도 지금, 2천 년이 지난 후에 해석하려는 이들에겐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시 예수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하는 역사적 배경과 매우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대한 가설들
그래서 저자는 예수에 대한 세 가지 가설을 세웁니다. 갈릴리, 유대인 그리고 소작농. 먼저, 갈릴리는 유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과 달리 북쪽 지방이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갈릴리는 남쪽 예루살렘으로부터 늘 소외당하고 차별받았습니다. 또한, 당시 갈릴리에는 그리스어를 말하는 지체 높은 이방인들이 살았고, 갈릴리의 농업은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들은 ‘라티푼디움’이라 불리는 대농장으로 바뀌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땅을 잃은 사람들은 먹고사는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것저것 일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소작농이 등장합니다. 소작농은 사회적 계급을 뜻하며, 누가복음에도 예수의 집이 부유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2장). 예수에겐 땅이 없었고,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지금처럼 나무를 다루는 전문직을 뜻하는 게 아니라 온갖 일을 도맡는 잡부 같은 개념으로 봐야 하며, 일용직 노동자, 인류학자들이 구분하는 천민 계급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헤롯 안티파스가 추진하는 나사렛 근처 ‘세포리스’라는 큰 도시의 재건사업에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대인 남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유대교를 변혁시켜 하나님 나라로 이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구약성경을 토대로 이뤄졌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자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입니다. 바로 예수가 이야기꾼이거나 음유시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책이나 글자를 활발하게 활용하지 않은 시대였기에 지식을 전달할 때는 외운 것을 직접 설명해야 했습니다. 유대교 랍비들도 토라나 책을 읽고 설명했다기보다 머릿속에 토라를 통째로 외웠고 이를 풀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말로 들었던 그들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하지만, 글이나 책의 문자에 익숙한 우리는 추상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비유를 해석할 때, 추상적으로 상상하는 대신 구체적 상황을 떠올리고 이해가 가능한 방향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예수는 종교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예수는 유대인이었고, 새로운 종교를 세워서가 아니라 자기가 속했던 유대교를 변혁해 그가 속한 사회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가 당한 십자가형은 당시 사회에서 예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근거입니다. 그는 로마제국과 갈등 관계에 있었고, 유대교 귀족 사제나 지도자들과 늘 다투었습니다. 그는 에세네파처럼 고요하고 경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비유로는 그가 왜 십자가형을 당했는지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비유를 해석하다 보면 그가 왜 위험하며, 로마에 위협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2강 비유에 대하여
예수는 비유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다시 그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들은 그 비유를 통해 그곳에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수는 그곳을 하나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비유는 지혜 전통에 속하기에 잠언과 경구 즉,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비유는 짧은 이야기로 이뤄진 허구라는 점에서 잠언과 경구와 다르며 주제가 가려져 있어 통찰력을 가져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화와 비유
비유는 짧은 허구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비유를 잘 해석하려면 이야기의 구조와 인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야기는 상상력을 일으키고 북돋아 줍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둘 중 하나의 기능을 감당합니다. 하나는 당시 지배하고 있는 문화를 지원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그 문화를 전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신화가 당시 지배 문화를 지원한다면, 예수의 비유는 세상을 전복시키는 기능을 갖습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이라고 부를 정도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다인종 다민족 국가니 그래야 할지 모르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고, 미국을 이끄는 요직에는 늘 하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린 미국 하면 여전히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가진 힘입니다. 이렇게 신화는 누구에게나 강력하며 갈등에서 비롯된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신화의 가면을 벗기려는 이들의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거나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과 마크 트웨인, 래리 맥머트리라는 유명한 영미권 소설가의 작품을 예로 들었지만,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예를 들자면, 헬렌 켈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꼭 읽어야 할 위인전에도 자주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성공 이야기를 보면 우린 그 분의 유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만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여러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천사 같은 설리반 선생님을 만나 자기 능력을 꽃피웠다는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인연을 만나거나 끝없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위인전에도 딱 여기까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이후의 삶은 알지 못합니다. 그는 29세에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이후 전쟁 반대, 여성 참정권, 인종차별 반대, 장애인 복지, 노동자 보호 운동에도 앞장섰습니다. 삶 전체를 조망해야 인물의 삶을 볼 수 있는데, 앞부분만을 강조하고 신화화하니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여기거나 아예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헬렌 켈러’의 삶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의 비유는 기존 지배 문화를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전복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과격하고 공격적입니다. 비유는 신화처럼 지배 문화를 옹호하지 않기에 듣는 순간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기도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책의 말을 옮기면, ‘비유는 신화가 삶의 고단한 현실에 대한 그릇된 해답임을 폭로하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안겨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비유를 듣고도 괴롭지 않은가 하면, 이미 비유가 신화화되었기에 우리가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유에서 신화화된 부분을 걷어내고 예수의 비유와 마주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역사적 배경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가 직접 말한 이야기를 듣기 원하지, 수많은 사람이 옮기면서 첨가한 이야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인 지혜에서 비롯된 비상한 주제들
예수가 당시 유대 사회를 전복했던 방법은 이스라엘 전통에서 작은 주제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보통 ‘주의 날’이나 ‘왕 되신 하나님’ 혹은 ‘율법’ 같은 큰 주제는 비유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농부의 비유와 탕자의 비유는 당시 통상적인 지혜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깊은 충격을 줍니다. 탐욕에 찌든 부자는 곳간을 더 늘리려 하고, 아버지를 버리고 자기 몫을 탐했던 첫째를 걷어찰 줄 알았는데, 부자가 하루아침에 죽는다는 설정을 하고 첫째를 용서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비유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사용하면서도 막연한 기대를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통상적이거나 당시 지배적인 이야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며, 때로는 비유 이후에 옮겨지거나 편집되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바뀌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은유로서의 비유
비유는 보통 은유로 이해합니다. ‘○○는 ○○다.’라거나 ‘○○은 마치 ○○와 같다.’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비유를 문학적 표현으로 한정하거나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장식으로 잘 포장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비유는 꼭 그렇게 포장이나 문학적 표현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2천 년 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기에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고, 그들이 직접 본 문양이나 모양을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의 비유는 그가 여러 일을 해야 했던 갈릴리 유대인이라는 배경이 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비유는 당시 유대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를 전복하는 기능을 했기에 이후에 전달되고 편집되면서 공격성을 약하게 하고 무례함을 감추기도 했습니다. 이런 비유는 당시 당연하게 여기던 신화, 보편적인 지혜가 거짓임을 폭로하고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비유는 지배 문화를 단순하게 공격한 게 아니라 새로운 비유를 통해 그들의 삶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새 세상을 선물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접했던 사람은 이후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내려놓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비유는 그저 예수가 한 이야기의 장식품으로 지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볼 문제
1. 어려웠던 부분이나 궁금했던 점을 말씀해주세요.
2. 이야기(narrative)인가요? 허구(fiction)인가요?
※ 내러티브는 실화나 허구의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조직하고 전개하기 위해 이용되는
각종 전략이나 형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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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한남교회 수요성경공부 교재인 '예수의 비유 새로 듣기(버나드 브랜든 스캇 저)'를 요약 및 첨가해 발제한 것입니다.
* 발표자는 허준혁 목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