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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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29) - 성막을 만들다

  • 관리자
  • 2017-05-10 0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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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산책(29) - 성막을 만들다
출애굽기 36:8-13

 

▪성소를 지을 예물과 성막

 

‘성소’는 ‘성막’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성막’은 출애굽한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만든 하나님을 섬기고 만나는 곳입니다. 성막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이동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쉽게 옮길 수 있도록 천과 나무 등으로 제작되었고, 대부분의 기구는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고리와 채가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5장에는 성소를 지을 예물에 대하여 소상히 나오고, 출애굽기 26장부터 31장까지는 성막 안에 들어갈 제단과 성막의 뜰, 등불, 제사장의 옷, 분향할 제단 등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고도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가 나옵니다. 그리고 35장부터 40장까지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이스라엘 백성의 수행을 보여줍니다. 성소를 지을 예물뿐만 아니라 규격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고, 성소에 들어갈 소소한 기구(심지어는 꽃받침에 이르기까지)들뿐만 아니라 성막의 휘장에 이르기까지 세세합니다. 제사장의 옷에 이르면 흉패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엄격하게 그래서 두 단락의 내용은 겹치는 내용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면, 인간이 복창하면서 수행하는 방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은 인간이 함부로 재단하거나 변경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러면 우리는 ‘이단 사설’만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들을 때에 ‘내가 원하는 말만’ 듣기를 원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에스겔 12장 2절에 하나님께 반역하는 유다 백성에 대해서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겔 1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론 낯선 말씀으로 다가와서 나를 당혹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하면 우리의 신앙도 더욱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안식일과 성막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성소와 성막에 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25장부터 31장에 이르기까지 나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31장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세세하게 일러주신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이 제시되겠지요. 그 결론은 31장 12-17절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안식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35장부터 40장까지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인간의 수행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35장 1-2절에도 ‘안식일’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마지막 부분과 인간이 그 말씀대로 수행하는 부분에 나오는 ‘안식일’의 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실, 성막 건설 이야기는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이레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안식일은 ‘쉼’의 날이요, 창조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여섯 번째 날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인간에게 창조의 세상에서의 첫날은 안식일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안식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또한 많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는데, 인간은 안식을 누릴 줄 알아야 창조적인 노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쉼이 없는 노동은 소외된 노동을 가져옵니다. 오늘날, 쉼 없이 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소외된 노동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쉬는 안식일조차도 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쉬는 것이 참된 쉼인데, 저마다 세상이 추구하는 방식의 쉼을 갖고자 하면서 참된 쉼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자발적인 헌신

 

모세는 성소에 쓸 것과 성막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들을 백성에게 자발적으로 헌납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억지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감동’에 의해서 ‘자원하여’ 예물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성소와 성막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채워졌고, 제능있는 여인들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아 도왔습니다. 출애굽기 35장 26절에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라는 구절에 나오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는 36장 3절에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라는 말씀으로 반복됩니다.

 

교회의 일은 ‘마음의 감동 받아 자발적인 헌신’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하고 싶지 않은데, 누구 눈치가 보여서 하거나, 자기 능력에 부치는 헌신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헌금을 하라고 하고, 건축헌금 등 작정 헌금을 하게 하여 빚쟁이가 빚 재촉하듯 헌금을 강요하는 예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일이요, 이런 것을 강요하는 목사가 있다면 삯꾼 목사입니다. 이런 것을 공공연하게 강조한다면 이단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자발적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처럼 재물의 총량을 보시지 않고, 과부의 두 렙돈이라고 가장 귀하게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야시대의 성막은 자발적인 헌신에 의해 지어졌으나, 솔로몬의 성전부터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발적인 헌신이 아니라 강제노역에 의한 성전건축이요, 징발에 의한 성전건축이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지혜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열왕기상 11장 3절에 의하면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었으며, 다른 신들을 섬겼고, 자녀교육도 제대로 못 한 결과 사후에 나라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뉩니다.

 

신앙은 자발적인 헌신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한남교회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가 되려면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발적인 헌신과 재능의 기부로 세워져야 합니다. 성서적으로만 본다면,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고 일하는 이는 교역자 외에는 없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발적 봉사와 헌신으로 이뤄지고, 자발적인 봉사와 헌신에 대한 것은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이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재능기부 같은 것은 오용되어서 남의 재능을 착취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설교와 예배에 집중하려면 사실 일주일의 시간은 충분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재능에 따른 역할분담 등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종교개혁에서의 ‘만인사제직’이라는 모토에 의하여,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이들이 일정의 사례비를 받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중심으로 성소를 만들고 성막을 만드는 직인 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대로’ 모든 것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브살렐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이고, 오홀리압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출 36:1)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36장 8절에서도 성막을 만드는 사람에 관해서 ‘마음이 지혜로운 모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이뤄가실 때에 지혜로운 사람들을 세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소와 성막에 사용될 기물들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는 상당히 복잡합니다. 예배도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면 상당히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예배의 과정 하나하나를 따르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게 되며, 예배의 리듬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것과 같은 행위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예식,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하는 과정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어주셔서 능히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또한, 용기도 주십니다.

 

▪오늘날의 성막 =교회

 

지금 이 예배당은 1974년에 봉헌되었습니다. 43년이 되었으니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손 볼 곳도 많습니다. 여러분, 예배당은 건물의 의미를 넘어서는 상징이 있습니다. 지난주, 김준부 목사님과 통화를 한 후에 한남교회 강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옥상의 유리창, 벽돌의 홈 등 많은 의미를 담아 건축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그냥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교회를 돌아보면 손봐야 할 곳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도 예쁘고 의미 있는 예배당이지만, 건물 보수도 필요하고, 예배의 형식과 다양한 재능의 봉사도 필요합니다. 지켜야 할 전통이 화석화된 전통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전통이 되도록 온 교우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한남교회가 진심으로 부흥하고자 한다면 낡은 가치관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노력 없이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제가 혼자 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목사 한 사람이 잘나서 되는 교회는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는 이들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해야 무엇이 필요한지 보입니다.

 

우리가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헌신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채워주신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봉사할 재원들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방식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입니다. 비우다 보면 채워집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소가 되길 바랍니다. 이곳을 드나드는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막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교회,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 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한남교회가 그런 교회이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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