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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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26) - 친히 쓰신 돌판

  • 관리자
  • 2017-04-19 0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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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산책(26) 친히 쓰신 돌판
출애굽기 31:12-18

 

▪시내 산에서 모세를 만나신 하나님

 

모세는 시내 산에서 사십 일 사십 야를 보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맺으시고, 계약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을 주십니다. 거듭 강조한 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우리를 옭아매기 위한 율법조문이 아니라, 해방된 삶, 자유로운 삶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율법 조문’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문자 주의’에 빠져서 율법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오직 영으로’한다는 말씀은 ‘율법 조문’을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참된 의미’를 실천한다는 것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는 것이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사십 일 사십 야’ 모세에게 ‘십계명’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주 세세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세세한 조항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선택한 말씀에는 목숨을 거는 문자주의자들이, 그 외의 말씀에는 왜 무관심한지 모르겠습니다.

 

▪세세한 계명들

 

먼저 25장에는 ‘성소를 지을 예물’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곳으로서 광야생활을 하던 이들에게는 ‘장막’이었습니다. 이 장막은 백성이 가져온 예물로 지어집니다. 백성은 예물을 바칠 때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25장 2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라는 말씀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에 ‘억지로’ 혹은 ‘남의 눈치’를 보면서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하고, 오늘날 하나님이 거하시는 교회가 제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될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장막에는 ‘증거궤’가 놓여지고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친해 새겨주실 ‘돌판(증거판)’을 넣습니다. 그 증거궤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서 이스라엘을 위한 말씀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설병을 두는 상’에 관한 것입니다. ‘진설병- 얼굴의 떡’-은 ‘하나님 앞에 차려지는 떡’입니다. 그 떡을 놓을 상을 만드는 것조차도 세세하게 일러주십니다. 그 외에 장막에 둘 ‘등잔대와 기름대’, 성막, 제단, 성막의 뜰, 등불관리, 제사장의 옷, 옷뿐만 아니라 흉패, 제사장의 다른 옷, 심지어는 속옷에 이르기까지 전하셨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위임(29장)할 때의 예식, 매일 드리는 번제, 분향할 제단의 모양(30장), 회막봉사에 쓰는 속전, 회막에 들어가기 전에 수족을 씻을 물두멍, 향 기름, 회막 기구 등등 세세한 규정입니다. 이러한 규정들을 우리가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한다면,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세세한 규정들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키지도 못할 규정을 주시고, 대충 지켜도 좋다고 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까다롭고 세세한 규정들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것이 그냥 그렇게 쉽사리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말씀을 읽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세세한 계명들에 대한 현재적 의미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헌신, 봉사는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25:2). 그리고 이런 예물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광야시대의 장막, 회막인 오늘날의 예배당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라는 점입니다(25:22).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성전에만 가둬두고 일상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반발로 예배당을 부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은 조금 과하게 나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장소로서의 예배당은 하나님을 만나는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건물로서의 ‘예배당’이 갖는 의미도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예배당’과 ‘교회’를 구분해서 사용했는데,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뜻으로 장소적인 의미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의 의미이고, ‘예배당’은 건물로서의 의미입니다. 오늘날, ‘교회’라는 말 속에 건물적인 의미까지 포함되면서 ‘대형교회’가 가져온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형교회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기에 아름다운 예배당, 교회 안에 들어서면 경건해지는 예배당을 추구합니다. 하나하나 예배당의 소품까지도 다 중요한 것입니다. 예배당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고, 수많은 상징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이 크지 않아도 종교적인 상징성을 간직해야 하고, 그곳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인들은 예배당을 가꾸면서 신앙심도 키워가는 것입니다. 제사장, 오늘날의 목회자는 예배를 준비하는 일에 헌신하고, 교인들은 그 모든 일을 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경우에 이런 기본정신이 훼손되었습니다.

 

▪ 안식일 법

 

세세한 법규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해서 말씀하시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요.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31:13), 하나님을 알게 됨으로 우리는 ‘거룩’해 집니다. ‘거룩’이라는 히브리어는 ‘카도쉬’인데 ‘구별된다, 구분된다’는 뜻입니다. 바리새파도 ‘구분된다.’라는 의미로 ‘카도쉬’에서 유래합니다.

14절에는 안식일을 어기는 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 지며 그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 한 말씀만으로도 문자주의자들, 축자영감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 수 있습니다. 전에 우리가 출애굽기 산책을 통해서 공부한 대로 ‘안식일 법’은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365일 쉴 틈 없이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이들이 꿈꾸는 새로운 나라에서는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 약속의 땅에서도 안식일 법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노예와도 같은 삶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타락하면서 안식일 법을 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함으로 강대국의 침공으로 멸망 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영원한 표징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데서 기원합니다(31:17).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영원한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거룩해지는 날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쉬면서 복을 받는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초대교회는 이날을 ‘주님의 날’로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도 그들이 섬기는 태양신의 날인 ‘sunday’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과 그 당시 어느 종교에도 없었던 종교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순교자’들의 행위를 보면서, 그들의 순교정신이 로마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면 황제숭배를 위해 아주 유용하겠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그리스도교는 마침내 313년 콘스탄틴황제의 칙령에 의해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억압받던 종교에서 마침내 지배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지배자의 종교가 된 이후 부정적인 측면들도 있었지만, 지금껏 그리스도교가 세계사를 이끌고 왔습니다. 세계사를 이해하려면, 유럽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유럽의 역사를 알려면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지금의 모든 인류의 유산과 철학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영원한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인 우리에게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표징으로 주신 날이요, 복 주신 날 하나님 앞에 나와 쉼으로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안식일 법 앞에 있었던 장막을 위시한 증거궤, 제사장의 의복 등등은 모두가 이 안식일을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에도 이런 전통적인 다양한 종교 예전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느 예배와는 다르게 주일예배는 예전적입니다. 저는 주일예배는 예식에 따라 경건하게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예배 시간 10분 전에 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예물도 미리 준비해서 예배 전에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예배당을 가꾸고, 적극 예배에 봉사하고 참여함으로 제사장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간구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이런 과정들은 경건하고 엄숙하게 즉흥적이 아니라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예배다운 예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복된 예배를 드린 후, 그 기쁨의 잔치를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식탁의 교제입니다. 아주 단순하지만, 이렇게 주일에 나와 예배드리고 식탁의 친교를 나누고 돌아가는 일은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이며, 주일 성수를 통해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표징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31:18)’ 돌판에 써 주신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친히, 그래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하신 것이지요. ‘일점일획’에 관한 말씀은 지난 시간(출애굽기 산책 25)에 나눴으므로 오늘은 생략합니다. 여러분, 주일을 기억하십시오. 다른 여러 예배가 있지만, 그리스도교에서도 모든 예배 중에서 으뜸은 ‘주일예배’입니다. 주일예배를 잘 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표징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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