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25)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출애굽기 24:12-18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의 의미
고대 근동에서 숫자 ‘4’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완전한 숫자였습니다. 10 또한 9가 한 자리 숫자 9가 채워진 완벽한 숫자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4’와 ‘10’이 만난 ‘40’은 ‘완전, 최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4’를 고난의 숫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40일은 ‘시험을 치르는 기간’이며, 이 기간을 극복할 때 비로소 완벽한 삶을 살아갈 길이 열린다고 봅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완벽, 최선’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40은 노아 홍수(창 7:17) 때입니다. 40일 동안 비가 내렸고, 홍수 후 40일이 지나서 뭍이 드러났습니다. 비가 내리는 40일 동안 세상은 완전하게 심판을 당했고, 홍수 후 40일 동안 세상은 최선의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창세기 50장 3절에는 요셉이 몸을 향 처리할 때에 걸린 시간이 40일이었다고 합니다. 온 힘을 다해서 완벽하게 향 처리를 하였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또한, 히브리인들은 출애굽한 이후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24장 18절에서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 산에 머물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시는 완벽한 계약의 돌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에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돌판을 깨뜨립니다. 그리하여 출애굽기 34장에 다시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 금식하며 돌판을 다시 받습니다. 민수기 13장 25절에 의하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기간도 40일이었고, 사무엘상 17장 16절에 의하면,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한 기간도 40일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도 ‘40일이 지나면’ 무너질 것이라 예언하였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되는 다윗과 솔로몬의 재위기간도 40년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을 머무시면서 단식(마 4:2)하였고, 부활하신 뒤 승천하실 때까지 40일(행 1:3)을 보이시며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40’이라는 숫자가 담은 정신은 ‘사순절’을 통해서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순절은 주일을 제외하고 지키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40일이 아니지만, 구약의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완벽’과 ‘최선’을 뜻하는 40이라는 숫자는 ‘고난, 시험’과 관련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완벽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고난’이요, 온 힘을 다해서 그것을 이겨냈을 때에 비로소 완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통과의례’를 온 힘을 다해서 감당하심으로 완벽한 ‘부활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40이라는 숫자가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신앙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하면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40일 금식기도’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데, 만일 그토록 힘든 40일 금식기도를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서 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과시하고 보이기 위해서 한 것이라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가 우리에게 주는 상징은 ‘완벽한 신앙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온 힘을 다해도’ ‘완벽한 신앙’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완벽한 신앙을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히 기록한 돌판
하나님께서는 돌판 두 개에 친히 계명을 새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하나의 돌판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이 새겨졌고, 다른 하나의 돌판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 새겨졌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친히 기록한 돌판’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친히 기록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에게 받아 새기게 하셔도 될 터인데, 하나님께서 직접 새겨주십니다. 이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것이므로 ‘일점 일획’도 잘못된 것이 없이 완벽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성경을 읽는 방식 중에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 verbal inspiration)’이 있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성서는 글자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단 한 글자도 틀림이 없으며, 역사와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성경 읽기 방식입니다. 축자영감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성서의 원본이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최선의 해석으로 보거나 성서내용을 과학적 사실이나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석합니다. 축자영감설의 근거로 종종 제시되는 성경 구절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모든 성경은 원본이 아니라 필사본을 근거로 하고 있으므로, 무엇이 원본 그대로 또는 원본에 충실한 내용이고 무엇이 바뀐 내용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내용이 글자 하나하나 완벽하며 무오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무엇이 원본인지 알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까지 성경의 진정한 원본은 발견된 바가 없으므로 축자영감설은 그 전제 자체의 실체가 불분명한 헛된 주장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특정한 말씀만 취사선택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왜곡된 신앙을 가진 이들입니다. 이들은 1910년에서 1915년 사이에 자신들의 교리를 담은 10여 권의 작은 책 《근본》(the Fundamentals)을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이들은 성(聖)과 속(俗)으로 구분 짓는 이원론에 근거하여 국수주의, 반공주의 등이 특징인 기독교 우파라는 이름으로 정치세력화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그 후예들은 지금도 성조기를 흔들며 광장과 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반공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전쟁광으로 알려진 레이건 대통령이 기독교 근본주의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창조과학’이라는 유사과학을 만들어 창조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도 기독교근본주의자들에 속합니다. 2011년 노루웨이 오슬로에서 일어났던 총기 난사 사건도 근본주의자에 의해서 일어난 테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새겨주신 돌판, 친히 전해주신 말씀은 완벽하지만, 그 말씀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해방하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는 바른 방식은 그 말씀이 품고 있는 상징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어떤 시대적인 상황에서 어떤 의미로 그 말씀이 주어졌는지, 그 당시에 그 말씀을 읽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그 말씀을 이해했는지 알아야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단은 성경을 ‘취사선택하여 문자적인 의미’로 읽습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같은 상징의 언어가 가득한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성경은 ‘통’으로 읽어야 합니다. 한 사람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에 단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떤 사람’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단점만 부각한다든지, 장점만 부각하면 그 사람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말씀만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모세는 시내 산에서 40일 동안 있었습니다. 40일 중에서 처음 엿새 동안은 ‘홀로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출 24장 16절 말씀에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40일 중에서 엿새는 ‘홀로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으면 바로 만나주시지, 왜 엿새라는 말미를 주신 것일까요?
이 시간은 스스로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부르신 것일까, 어떤 말씀을 주실까 나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까?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다양한 생각들을 하는 시간이겠지요. 이 묵상의 시간은 ‘고민’의 시간입니다. 주일예배 때 ‘리멘(Limen)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현관의 시간’입니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현관’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리멘의 시간’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제의’의 시간입니다. 리멘의 시간은 통과의례의 시간이며, 이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 시간은 아주 큰 변화의 시간이지만, 꼭 요란스러울 필요는 없습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현(玄)의 과정’처럼 아주 조용하고 가물가물해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리멘의 시간은 광야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광야의 시간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단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험한 세상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넉넉히 이겨나가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리멘의 시간을 통해서 자기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DNA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문지방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시간인 ‘메타노니아’, 하나님의 DNA를 회복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모세에게 주어진 엿새라는 시간은 바로 이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과 맺을 계약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을 것입니다. 이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돌판에 십계명을 직접 새겨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계약이 새겨진 돌판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계약의 돌판을 받을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미 아는 것처럼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는 그 금송아지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출 32:4)”이라 부르며, 그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놉니다(출 32:6). 마치, 문자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으며,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