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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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24) - 약속의 재확인

  • 관리자
  • 2017-04-05 0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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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24) 약속의 재확인
출애굽기 24:1-11

 

▪형식과 내용

 

결혼식을 할 때 주례는 신랑신부에게 상대방을 남편과 아내로 맞아들이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양가 부모에게도 이 결혼을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결혼의 증인으로 참석한 하객들에게도 이들의 결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느냐고 묻는다. 모두 “예!”라고 대답한 후에야 주례자는 ‘결혼을 선포’한다. 상당히 요식적인 행위 같지만, 매우 중요한 절차입니다. 어떤 분들은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만, 허례허식에 빠진 형식이나 보여주기식 형식이 문제일 뿐입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주일예배는 다소 형식처럼 보이는 예식에 의해 진행됩니다.

전주, 임재의 기원, 경배찬송과 신앙고백, 성시교독, 공동기도, 감사찬송, 대표기도, 성경봉독, 성가대 찬양, 말씀의 선포, 봉헌, 결단찬송, 축복, 송영의 순서는 하나의 형식이지만, 하나하나 신앙고백과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예식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합니다. 개신교에서는 ‘말씀의 선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말씀의 선포만으로 온전한 예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참여하는 교인들은 자신들이 곧 제사장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에서 ‘만인사제직’이라는 의미는 이런 예배적인 측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젠에는 사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종교개혁 이후에는 누구나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계약의 성립조건

 

계약은 쌍방이 있기 마련이고, 어느 한 쪽이라도 계약을 파기하면 무효가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 계약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계약은 쌍방에게 ‘권리와 의무’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있고, 하나님으로서의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하면 ~하고/ 내가 ~하리니 너희는 ~하지 마라”라는 형식으로 된 계명들은 모두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부모를 공경한 자가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인 동시에 하나님의 의무입니다.

 

23장 20-33절까지의 말씀은 이런 형태의 문장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결혼예식에서 주례사가 다양한 이들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을 닮았습니다. 즉, ‘의사확인’절차인 셈입니다. 이스라엘과 최종적인 계약을 체결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는 계약을 성실하게 지킬 것인데, 너희도 그렇게 하겠느냐?”고 거듭 묻고 계신 것입니다. 몇몇 말씀만 살펴보겠습니다.

 

(20) 나를 보호하여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 너희는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노엽게 하지 말라.
(23) 내 사자가 앞서 가서 너를 인도하고…. 그들을 끊으리니 / 너희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병을 제하여 주리니…….

이런 형식입니다.


▪약속과 순종

 

백성이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려면 첫째는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는 말을 ‘청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청종하는 순종하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이뤄지도록 우리를 순종시키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하는 것에서 옵니다. 자기를 합리화하고, 타인을 정죄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불순종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론 이해할 수 없기도 합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다”(렘 45:3)고 합니다. 예수님도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도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손해도 감수하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계약의 체결

 

계약 체결을 앞두고 하나님은 긴 학습과 동의과정을 거쳤습니다. 이제 드디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모세까지 74명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본질에서는 여러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아오라고 허락하셨는데, 나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2:1-10절과 누가복음 14:15-24절에 ‘큰 잔치의 비유’로 소개되고 있는데, 저마다 바쁘다고 초청받은 잔치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잔치를 베푼 주인은 다른 이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이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드리러 나오라고 허락하였는데, 예배에 나아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을 불러 채우실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자, 이방 민족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계약이 체결되는 과정은 복잡하고 의례적입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과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함
〮 백성이 준행하겠다고 응답함
〮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함
〮 산 아래 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움
〮 청년들을 보내어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함
〮 모세가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림
〮 언약서를 가져다가 다시 읽음
〮 백성이 준행하겠다고 약속함(재다짐)
〮 모세가 남은 피를 백성에게 뿌림
〮 모든 예식을 마친 후 공동식사를 함

 

굉장히 형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정이지만, 이런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계액을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를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면서 제단과 백성에게 피를 뿌리는 행위는 이 계약은 하나님과 백성 모두 ‘생명을 걸고’하는 ‘피의 맹세’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이 계약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가나안 땅은 팔레스틴의 어느 지역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맺은 계약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이라는 땅에 집착한 결과는 오늘날 팔레스틴 분쟁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 나라’가 저 하늘 위에 혹은 죽어서나 가는 장소적인 의미로만 생각하여,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지 못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식탁의 친교

 

신앙은 ‘지금 여기에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지금 여기에서’입니다.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심’으로 시내 산에서의 언약은 마무리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일, 식탁의 친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이삭과 아비멜렉이 계약을 맺을 때 잔치를 베풀고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에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식탁공동체’를 이루셨으며,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도 ‘성만찬 식탁공동체’를 이어가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 후에 실의에 잠긴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시기도 했습니다(요 21:9-14).

 

식탁의 친교, 제가 한남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 함께 나누는 식탁의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일 같지만, 우리 인간에게 ‘먹고 마시는 일’은 사람됨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맛이 없고, 좋은 사람들과 식탁의 친교를 나누면 아무리 소박한 음식이라도 맛있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교회 밥이 맛있으면 믿음이 좋은 것이고, 교회 밥이 맛이 없으면 믿음이 적어서 그런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즘 교회는 예전과 같은 식탁공동체를 상실했습니다. 규모가 조금만 커지면, 일 년 52주 잔치국수만 나옵니다. 교인들이 식사준비를 하지 않고 외식업체에서 직원들이 나와 일을 합니다.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인데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계명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어떤 계명에 대해서는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주로 문자주의(축자영감설)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로 읽으면, 그것은 ‘죽이는 것’이 됩니다.
 

‘가나안’이 단지 지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나라가 될 때 ‘약속의 땅’인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장소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편만하게 이뤄진 곳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를 넘어서 우리 삶으로 살 때 비로소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고, 그 말씀을 죽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으로 만들어가는 이들이 ‘신앙인’입니다. 오늘 우리는 ‘약속의 재확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읽고 또 읽으며 묵상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 음식이 삶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인 것처럼, 우리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앙의 기본은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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