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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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20) - 십계명(2)

  • 관리자
  • 2017-03-0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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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20) 십계명(2)
출애굽기 20:12-1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첫 번째 돌판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돌판에 있는 내용은 하나님과 언약백성이 된 이들이 지켜야 할 계명이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오늘은 두 번째 돌판에 있는 내용을 살펴봅니다. 두 번째 돌판은 언약의 백성이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십계명을 읽는 안경 = 종살이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히브리인들을 옭아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해방의 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잘 지키고 살아가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해방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중 한 계명이라도 어기거나 용인하면 다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살아가던 노예와도 같은 삶을 다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십계명이 지켜지기를 바랐고, 이후에 613가지(248적극적인 계명 +365부정적인 계명 = 613)에 이르는 촘촘한 율법을 통해서 계명을 어기면 “죽이고, 동족들로부터 추방하라!”는 강력한 조치가 뒤따랐던 것입니다.

 

먼저 십계명 전반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권력자들의 신, 권력자들의 기득권을 합리화시켜주는 신을 섬기면 그들은 노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권력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신을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심판하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섬길 때에만 그들은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쉴 틈 없이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쉼’은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의 표징입니다. 쉼 없는 삶은 노예의 삶이요, 자유와 해방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자신들이 겪었던 노예의 삶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떻습니까?

부모공경을 하고 싶어도, 부모가 옆에서 감시관들에게 채찍에 맞아도 어쩔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했던 노예들에게 부모공경은 어떤 의미일까요? 파리목숨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권력자들의 말 한마디, 눈짓 하나로도 살해를 당하던 이들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어떤 의미일까요? 자기의 아내와 딸과 심지어는 어머니까지도 권력자들에게 강간당하는 현실 속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또 어떤 의미이며, 같은 종살이를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은 또 무엇이며, 거짓 증거를 이웃을 곤경에 빠트리게 하는 것은, 이웃의 소유를 탐내는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십계명을 문자로 읽을 것이 아니라 ‘종살이, 노예생활’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읽어야 합니다. 십계명을 어기면, 지키지 않으면 다시 그 지긋지긋한 종살이, 노예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담겨있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5계명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잘 먼저 등장하는 계명입니다. 십계명에는 ‘-하지 말라’는 계명이 8개가 있고, ‘-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 2개가 있는데, 첫 번째 돌판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고, 두 번째 돌판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첫 번째 돌판에서의 안식일 법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제시된 앞의 세 계명을 포괄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돌판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부모공경이 다른 계명을 포괄하는 계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모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에베소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그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을 하는 자는 복을 누리지만,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신명기 27장 16절에 의하면 이에 대해서는 토 달지 말고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서는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하심으로 부모 공경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같은 무게로 말합니다. 누구나 우리의 자녀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비결은 아주 간단한데, 오늘날 많은 부모는 이것을 다른 것에서 찾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모’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부모는 단지 육신의 부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는 모든 것이 다 ‘부모’입니다.

 

▪6계명 – 살인하지 말라.

 

노예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살인’이라는 폭력은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권력자들의 비위에 거슬리거나 권력자들의 말 한마디에 목숨을 잃는 것도 억울한데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이들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절절한 외침이요, 그들의 인간다운 삶과 자유와 해방과 직결된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인’ 물론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계명을 문자로만 해석함으로 ‘사람에 대한 육체적인 살인’에 국한합니다. 그렇게만 이 계명을 읽고 받아들이면, 이 계명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유기체는 삶과 죽음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유기체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은 삶의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주어진 생명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어떤 폭력에 의해 삶을 차단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지 사람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적극적인 계명으로 바꾼다면 “생명을 살리라”는 계명입니다.

 

▪7계명 – 간음하지 말라.

 

애굽의 전제정치에 살아가던 여성들은 강제노역은 물론이고 주인으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의 성적인 욕망으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일들이 다반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들이 새 세상을 이뤄 살아가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강자들에 의해 가정이 유린당하고 성이 유린당한 일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추악한 짓을 한 일본은 여전히 강대국이며,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여전히 대한민국은 성적인 욕망이 넘쳐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은 사람은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어도 마음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욕망만으로도 이미 간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욕망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작용하게 되면 타인을 욕망을 실현하는 두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 계명은 남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욕망의 실현을 위해 타자를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계명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제8계명 – 도둑질하지 말라.

 

이 도둑질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지지 말라는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계명이 주어지던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도둑질’ 중에서 가장 큰 도둑질은 ‘사람 도둑질’이었습니다. 빚에 몰려 종으로 전락하고, 전쟁에 패한 민족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일들이 일상화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변형된 형태의 도둑질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권력과 야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몇백억씩 기부하는 대기업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에게는 산재로 인정해 달라는 유가족들의 외침을 외면하는 것,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을 떼어먹는 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의 불안한 신분을 이용하여 임금을 착취하는 공장주, 사실은 이들 모두 도둑들입니다. 그러므로 도둑질하지 않는다는 것은 ‘땀 흘린 만큼 얻는 것으로 만족하며, 타인의 땀 흘림과 수고를 가로채지 않는 것’입니다.

 

▪제9계명 – 거짓 증거하지 말라.

 

‘거짓 증거’는 법정에서 자주 벌어집니다. 송사가 벌어지면, 자기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사람을 찾기 마련인데, 돈 많은 사람 중에는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거짓증인을 삽니다. 법정에서는 진실만 말해져야 하는데, 거짓이 판을 치면 사회의 기초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제 곧 헌재의 판결이 내려지겠지만, 100일 가까운 시간 뉴스를 지켜보면서 불법한 이들의 뻔뻔함과 그것을 옹호하고 법적인 버팀목이 되어주는 대리인들과 가짜뉴스를 양산해 내는 이들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꼈습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적극적인 계명으로 바꾸면 “참된 말만 하라!”가 되겠습니다. 참된 말이란, 살리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망령처럼 떠도는 가짜뉴스는 살리는 말이 아니라 죽이는 말입니다. 그리고 종북이네 빨갱이네 하는 편가름하는 말들 역시도 거짓 증거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거짓 증언들이 역사교과서에까지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보수기독교단체나 대형교회까지 합세하고 있으니 이 나라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말은 ‘욕망 혹은 탐욕’과 연결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이웃이 가진 것은 곧 나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하면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때로는 옳지 못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남과 비교하여 더 가지려는 욕망, 그것이 우리를 비인간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을 적극적인 계명으로 바꾼다면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를 피워 내라.”로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내게 주어진 것에 자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탐욕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계명 다시 생각하기

 

두 번째 돌판의 계명을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 나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 생명을 살리라.
간음하지 말라 = 욕망을 위해서 타인을 도구로 삼으면 안된다.
도둑질 하지 말라 = 땀 흘린 만큼 얻는 것으로 만족하며, 타인의 수고를 가로채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 생명을 살리는 참말만 해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자족하며 살아가라.

 

십계명, 그것은 사람을 옭아매기 위해서 주어진 법이 아니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옭아매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으로서 제3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자유의 계명이요, 해방의 계명이요,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계명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행복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주신 유일한 말씀 십계명, 그 계명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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