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의 위임(출애굽 강해 17)
출애굽기 18:13-22
아말렉과의 전투 이후,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때에 장인 이드로가 그간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모두 전해 듣고는 모세에게 찾아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도 함께 데려옵니다. 게르솜은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라는 뜻이요, 엘리에셀은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구원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드로는 미디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이미 도망자 모세를 사위로 삼은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장막에 들어가 그간 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을 전해주자 곧바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10).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와(12)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의 장로와 함께 나눠 먹습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
마음이 문이 닫힌 사람들은 ‘폐쇄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삶은 오로지 자기의 안경으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닫히면,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습니다. 그러면 진실을 왜곡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합니다.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고 오로지 문제는 외부에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떤 권력을 가지면, 그 권력의 힘이 미치는 사람도 같이 불행해 집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은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말뿐 아니라 나쁜 말도 귀 기울여 듣습니다. 자기를 객관화시킬 줄 압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먼저 자기를 돌아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그 권력의 힘이 미치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피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이 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가능성들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자질
모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하느라 앉아있고, 백성은 재판을 받으려고 모세의 곁에 서 있습니다. 온종일 이 모습을 지켜본 이드로는 곧바로 ‘이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직시합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꾸짖듯 말합니다. “네가 하는 것이 옳지 않다(17).” 그러나 이드로는 그냥 비판하고 꾸짖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대안을 내어놓습니다. 아마, 온종일 모세가 재판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민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잘못된 일이긴 한데, 이것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판하는 것은 잘합니다. 그러나 대안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대안은 없습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 이것은 갈등만 부추깁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여기에 “비판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잘못에 대해 지적하는 것조차도 잘못이라고 비판합니다. 이런 비판은 천박한 비판입니다. 개인적인 비판과 대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4대강사업은 22조 원이나 들였지만, 다시 원상복귀를 해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당시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반대하던 이들을 은 대안까지 내놓았습니다만, 당시 정권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종북빨갱이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안건은 전문가들이 연구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에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비판하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 시내 교통문제에 대한 것이라고 할 때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면 그건 잘못된 요구입니다. 이미 국민은 이런 시내 교통문제를 잘 살피라고 공무원들에게 매달 급여를 주고 있습니다. 관련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있으니, 당연히 국민이 교통문제에 대해 불편하다고 비판하면, 대안이 없다고 면박을 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무원입니다. 제가 서울 시내 교통문제만 예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은 모두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 국민의 머슴입니다. 삼성 같은 대기업 덕분에 우리나라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엄청난 세금이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이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백성 중에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일을 분담하라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일꾼으로 세울 그들의 자질이 세 가지 나오는데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둘째, 진실하며 셋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이런 사람들이었다면 이 나라는 아마 엄청나게 살기 좋은 나라였을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흔쾌히 장인 이드로의 대안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지도자적인 자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권한을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권한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력은 책임과 권한을 자기에게 집중하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기독교인 중에는 간혹 이드로가 이야기한 지도자의 자질 중에서 첫 번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를 기독교인으로 혼동해서 ‘기독교인’이면 무조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기독교이름을 건 정당과 기독교인임을 강조하는 정치인은 표 구걸을 하는 것이지, 절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한다면, 감히 자기의 표를 위해서 하나님을 내세우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5월에 대선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혹여라도 기독교인이니까 찍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가 정말 진실한 사람인지,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인지 잘 구분하여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사명의 위임
모세는 이제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가 ‘자기가 모든 일을 다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함정에 빠지면, 자기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힘듭니다. 위임이라고 하는 것은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신뢰하지 못하면 위임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위임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위임을 받았으므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더욱더 성숙해야 합니다. 이제 그들은 더는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무슨 일만 터지면 아론과 모세에게 달려와 투덜거리고 원망했습니다. 몸은 출애굽 했지만, 아직 정신은 노예상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명을 위임받은 천부장과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은 그런 정신적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그들은 10명, 50명, 100명, 1000명의 지도자가 되어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명의 위임은 단순히 역할분담뿐만 아니라 사명을 위임받은 사람의 삶도 바꾸는 것입니다. 장인 이드로의 말대로 시행하자, 이제 모세도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사명의 위임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위임받은 사람은 그 삶이 바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사명을 위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잘 돌보라고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곳입니다. 이 위임받은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본이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지키는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생태학에 대해 공부도 해야 합니다. 만일, 경제정의에 관해 관심이 있다면 경제학에 대해 공부도 해야 하고,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기아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인문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착하게 산다고 될 일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려면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 ‘배우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도 못하겠네요?’라고 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자질 첫 번째입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선지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할 말을 가리켜 주시고, 행할 바를 알려주십니다.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진실하고, 불의한 이익을 탐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하는 분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분석만 하면서 삶 없이 정신적인 위안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못 배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알지도 못하는데 무슨 일을 하겠어?’하는 불안감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실천한 만큼 알고 아는 만큼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세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끊임없이 실패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모세와 같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믿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위임받은 자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위임하셨을 때에는 우리를 신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데만 관심이 있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신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이 사명의 위임 앞에서는 누구나 두렵고 떨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남교회를 위임하셨습니다. 한남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로 만들어가는 일이 우리의 사명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셔서,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