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13) - 전화위복의 하나님

  • 관리자
  • 2017-01-11 06:30:00
  • hit750
  • 222.232.16.100

전화위복의 하나님(출애굽기 산책 13)
출애굽기14:10-14

 

애굽 땅에 처음 난 것들이 모두 죽는 재앙 후에야 비로소 바로는 이스라엘을 급하게 내보냅니다. 마침내 해방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해방을 기억하는 유월절 규례를 주시고, 잊지 말고 기억하여 다시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4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뼛속 깊이 각인된 노예근성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해방은 찾아왔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그 시간은 노예근성을 떨쳐버리는 훈련의 시간이요, 그 훈련의 기간을 혹독하였기에 장정만 60만 명이 출발했던 1세대 중에서는 갈렙과 여호수와를 제외하고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들이 없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누구나 가나안 땅을 소망했지만, 그 소망은 단 두 사람과 2세대들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40년 광야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예근성을 떨쳐버리고자 했지만, 변화시키지 못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변화시키기 어려운 존재, 그것이 인간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강제로 변화시키는 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제시하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최종적인 결단은 언제나 인간이 하도록 하시고, 그에 따라 당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펼치시면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은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곳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길은 도보로 4-5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당시 대상들이 오가는 국제적인 교역로였습니다. 동시에 그 길은 애굽의 왕들이 북쪽의 적들을 징벌할 때 사용하던 작전도로인 동시에 북쪽의 적들이 애굽을 공격할 때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길로 접어든다는 것은 애굽과 북쪽의 적들로부터 협공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로 나오자마자 전쟁을 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할 것을 염려하셔서 홍해의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출 13:17-18).

빠른 길을 택하지 않고 우회로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회로는 먼 길이지만, 때로는 가까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볼 수 있듯이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천천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그저 남들이 올라가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급하다고 바늘에 실을 묶어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가는 길과 지향점이 분명하면 조금 더디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디고 빠른 것에 너무 예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차근차근 다지며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그들보다 앞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비추며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단순히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표상입니다. 시편 104편 2-3절에서는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라고 하나님의 현존을 노래합니다. 이스라엘과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현존, 그것을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이라는 멋진 은유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만이 고백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언제나 여러분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앞두고 애굽 군대의 추격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에서는 불안에 떠는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십니다. 이것은 로마서 8장 26절의 말씀과도 통하는데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하시며 위급한 상황에 빠진 이들과 연약함으로 탄식하는 이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름길로 가지 아니하고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칩니다. 특별히 ‘바알스본’은 매우 상징적인 장소인데, ‘바알’은 아시다시피 가나안 최고의 신이었고, ‘스본’은 바알 제의의 중심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들이 싸워야 할 것은 바로 이 ‘풍요의 신 바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분명히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애굽에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예상했던 행군의 경로를 벗어나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보일 터이고, 그러면 또다시 바로의 군대는 그들을 추적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을 물리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것입니다.

 

『회남자 ‘인간훈’』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옛날 만리장성 변경에 ‘새옹’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노인이 기르던 말이 없어지자 사람들이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새옹이라는 노인은 “말 한 필 없어진 것이 되레 좋은 일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했습니다. 얼마 뒤 말이 돌아왔는데, 좋은 말 한 필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웃이 축하하자, “이 일이 나쁜 일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노인의 아들이 새로온 말을 타고 놀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이게 혹시 좋은 일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 마을의 청장년이 다 징집이 되어 전장터로 나가 대부분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다쳐서 집에 남아있던 노인의 아들은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말은 '전화위복'이라는 말입니다. 전화위복은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거나, 복인 줄 알았던 일이 재앙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기, 관안열전』에 사마천이 ‘관중’의 일생을 다룬 뒤 그에 대해서 이렇게 평합니다. “그가 정치를 할 때에는 재앙이 될 일도 잘 이용하여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전환시켜 복으로 만들었다.”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은 재앙을 바꿔 복으로 만들고 패배를 발판으로 큰 공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선한 일이나 화가 되는 일이나, 복이 되는 일이나 실수한 일이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에서 ‘합력해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순엘게오’입니다. ‘순엘게오’는 ‘함께 일한다. 협력한다. 돕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협력자요, 조력자이시며 어떤 상황을 만났더라도 그 모든 것을 옳고 유용하게 하여 주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하십니다.

 

▪ 연약함을 도우시고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연약하다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머물러 있겠다고 한다면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하나님께 맡길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끄러움을 무화과잎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죽옷으로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죄를 범한 직후라도 말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면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자신이 강하니 하나님처럼 되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것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도와주세요!" 간구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를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미리 아신 자들’, ‘미리 정하신 그들’이라는 아주 의미 있는 말들이 나옵니다. 로마서뿐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을 가지고 선택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남아있는 노예근성을 벗어버리게 하고,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분명하게 각인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하신 코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코스’, 광야 40년은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주시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양육코스였던 것입니다. 그 기간,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일들도 있었고, 배고픔과 갈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옷과 신발도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왜 그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요, 자녀입니다. 어려운 일, 고난, 그것으로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들을 걸러내시기 위한 선물입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런 고백을 할 때 우리는 넉넉하게 모든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이후에 일어날 일을 우리는 압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홍해바다 앞에 섰을 때 바로의 군사들이 그들을 추적해 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차라리 애굽에서 죽게 내버려 둘 것이지 왜 광야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죽게 하느냐?”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바로의 군사가 죽이러 달려오던 상황은 홍해가 갈라짐으로 전화위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확신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동요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수많은 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뒤쫓는 것과도 같은 상황, 광야에 홀로 내던져진 듯한 상황, 지름길을 두고 빙빙 돌아가는 것과도 같은 상황, 뭔가 잘 안 풀리고 꼬이는 것 같은 상황, 이 모든 상황에서 동요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하며 기쁘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대면하는지가 그 사람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어려움도 주십니다. 기쁜 일에나 슬픈 일에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전화위복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늘 함께하실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