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찾아온 해방(출애굽 산책 12)
출 12:37-42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입니다. 먼저 간단하게 유대인의 3대 절기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월절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
유월절(Passover)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의 인도를 따라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출 12장, 신 16장)로 유대력으로 아빕월(유대력으로 1월, 태양력으로 3, 4월- 봄/ 보리싹이 올라오는 시기/봄)에 어린양을 잡아 발효되지 않은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이레 동안 먹는 절기입니다. ‘아빕’은 ‘보리의 풋이삭’이라는 뜻이며. 아빕월 15일부터 7일간 무교절이 이어집니다.
칠칠절(Pentecost) / 칠칠절을 맥추절 또는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일곱으로 된 일곱’ 이라는 의미를 가진 칠칠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첫 안식일을 보내고 50일째 되는 날에 밀의 첫 열매를 봉헌하는 절기로 봄에 수확할 수 있도록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지키는 절기를 말합니다(레 23장, 신 16장). 보리의 첫 열매를 바치므로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에 이 절기에다 과거 시내산에서 율법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더했고, 초대교회는 이 절기에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행 2장).
초막절(Tabernacle day) / 초막절을 수장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유대력으로 7월 15일(태양력으로 9, 10월)부터 7일동안 초막을 짓고 거주하면서 지키는 이 절기는 출애굽 후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을 뿐 아니라 가을에 토지의 소산을 수확할 수 있도록 복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념하는 추수 감사 절기라고 하겠습니다(신 16장).
▪유월절 식사의 의미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애굽을 탈출한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합비루’는 민족적인 개념이 아니라 ‘강제노역을 하던 하층민들’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37절 말씀에 의하면 출애굽한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라고 했습니다. 장정만 육십만이라고 한다면, 가축을 제외한다고 해도 여성과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이백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한 숫자입니다. 430년 전에 70명이 이주하여 이렇게 많은 인구증가가 있을 수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설령 출애굽한 이들의 숫자가 60만 이하라고 해도 그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자유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이 벌어지는 그달을 달의 시작으로 삼아 한 해의 시작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구원체험을 상기시키는 절기입니다. 아빕월은 3-4월 경인데, 봄이 시작되는 시기요, ‘아빕’은 ‘보리의 풋이삭’이라는 뜻이니, 보리가 이삭을 내는 시기요, 봄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유월절에는 양을 잡아 집 좌우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무교병과 쓴나물을 급하게 먹어야 합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보리떡으로 ‘마짜(matsah)’라고 합니다. 누룩은 반죽에 들어가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데, 누룩이 종교적으로는 부패와 타락을 상징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는 누룩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쓴 나물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잡은 양의 내장을 굽습니다. 무교병과 양고기와 쓴 나물을 먹되 급하게 먹습니다. 급하게 먹지만, 식사를 할 때에는 가족 구성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가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이 되나요?”하고 질문을 하면 가장은 출애굽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거기에 더해서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날을 기원하는 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게 있어서 일상적인 식사가 곧바로 종교적인 의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밥상머리’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본래 ‘밥상머리 교육’은 아주 중요한 교육수단이었는데, 근래에는 가족이 함께 식탁을 나누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밥상머리교육’을 상실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조차도 없는 오늘의 시대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밥상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먹을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열번째 재앙
모세의 명령으로 첫 유월절을 지키니 마침내 애굽 땅에는 ‘처음 난 것들의 죽음’의 행렬이 시작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굽 사람들은 은금과 패물과 의복을 주면서 어서 나가달라고 합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갈 수 없다!”고 하던 이들이 “제발, 나가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처음 난 것들이 다 죽는 재앙일까요?
고대인들은 땅에서 돋아난 식물이나 과일의 맏물과 가축의 맏배와 마찬가지로 여인에게서 태어난 맏아이는 신의 자비로운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맏배와 맏이의 죽음은 신의 은총의 상실을 의미하고, 더군다나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당시 애굽 사람들이 믿던 태양신이 맏이들의 은총의 근원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은 태양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거역한 나라와 체제, 백성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심판을 내리시고 죽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날이 합비루에게는 구원의 날이 된 것입니다.
애굽은 자신들의 체제안정과 안녕을 위해서 강제노동을 정당화하고, 영아 학살을 획책했습니다. 하층민들의 정당한 삶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 결국에는 억눌린 자들의 소리가 하늘까지 사무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더는 그냥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돌이킬 기회를 여러 번 주었지만, 바로는 고집스럽게 끝까지 주어진 기회를 붙잡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도 기회를 주셨듯이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열 번째 재앙을 다 겪은 후에야,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작은 경고에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대의 징조를 읽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마침내 찾아온 해방
마침내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나옵니다. 마침내 해방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끝일까요? 해방은 언제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로 나온 백성에게 먼저 유월절 규례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유월절과 무교절 외에도 그들이 지켜야 할 세세한 규정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규례는 애굽의 법처럼 이스라엘을 억압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해방하기 위한 법입니다. 십계명의 근본정신, 성서의 기본정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은 결국 ‘인간 해방’입니다. 그리고 이 해방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이것을 잊으면 언제든지 다시 ‘노예생활을 하며 겪었던 아픔’을 다시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 그것이 절기의 의미입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 36년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직도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청산하려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너무도 많은 것을 잊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분단되었고, 서로 적대하며 살아오는 동안 남북한 모두 심각하게 왜곡된 사상들에 의해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어버린 채로 살아왔습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해방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방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는 이전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으니 ‘해방’을 완결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지난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헌재에서 국민의 요구대로 탄핵안이 가결된다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이전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불법한 행동이 드러났을 때 입장이 곤란한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도 권력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서 자신들의 불법한 행동을 합리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진행되는 과정들을 보면,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요,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들 살길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올해는 이 나라가 한 단계 진보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방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해방,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애굽이라는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정치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광야로 나가는 백성이 애굽 사람들에게 금은과 패물을 요구했다는 것은 경제적인 영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식사는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문화적인 차원을 포함하고 있고, 이 모든 것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별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제대로 읽는 일도 아주 중요한 일이고, 어떤 입장에 서는지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마침내 찾아온 해방, 우리가 알 듯이 이제 이스라엘에게는 40년 광야생활이 펼쳐집니다. 그 훈련의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이들이 실패했습니다.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해방은 찾아왔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