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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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10) - 재앙의 시작

  • 관리자
  • 2016-12-21 0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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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시작(출애굽 강해 10)
출애굽기 7:14-19

 

▪첫번째 재앙 : 물이 피가 되다(7:14-25)

인류 문명의 시작은 도무 강과 연결이 됩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이집트(애굽)은 나일 강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메소포타미아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인도는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중국의 황하문명은 황화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물 없이 인간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생명체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은 생명의 젖줄입니다.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은 ‘물이 피가 되는 재앙’입니다. 나일 강은 대부분이 사막인 애굽에서 생명의 젖줄이었습니다. 나일 강이 없었더라면 애굽 문명도 없었을 것이고, 애굽도 죽음의 땅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나일 강이 범람하면, 유기물들이 함께 떠내려오고 땅이 비옥해져서 농사는 늘 대풍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인은 나일 강이 범람하는 때를 오시리스가 영광을 드러내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나일 강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신으로 여기던 나일 강이 피로 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는 생명의 젖줄인 나일 강이 피로 변했다는 것은, 나일 강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바로와 지배권력이 누리던 온갖 풍요로움은 노예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의 흘린 피로 이뤄진 풍요라는 점입니다. 제국은 노예를 통한 강제노역과 약소 식민지국가의 약탈로 이뤄집니다.

 

춘향전에 암행어사 이 도령이 변 사또가 벌인 잔치에 나그네인 듯 들어와 시 한 수 읊습니다.

 

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 천인혈(금빛 찬란한 아름다운 잔에 담긴 맛좋은 술은 천 명 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 옥반가효 만성고(옥으로 만든 쟁반에 담긴 맛있는 고기는 만백성의 기름을 짠 것이니,)
燭淚落時 民淚落 촉루락시 민루락(촛농이 떨어짐과 함께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 가성고처 원성고(풍악 소리가 높을수록 원망소리도 높아진다.)

 

이렇게 불의한 권력의 사치와 향락과 그들의 지배권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백성의 고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냥 궁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은 바로가 백성이 겪을 고통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제국의 속성, 불의한 지배권력의 속성입니다. 그들은 자기 삶의 기반을 만들어준 백성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습니까?

 

▪둘째 재앙 : 개구리재앙(8:1-15)

 

애굽의 요술사들도 자기의 요술로 나일 강의 물을 피로 만드니(7:22)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재앙으로 개구리가 창궐하게 됩니다. 8장 2절 말씀에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온 땅을 치리라”고 하는데, 여기서 ‘온 땅’이란 애굽 땅을 의미합니다. 애굽은 신격화된 바로의 성역입니다. 그러므로 개구리의 재앙은 애굽 땅 역시도 바로가 통치하는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격화된 바로의 성역, 태양신을 자처하는 바로를 벌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즘 새벽예배에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주변의 강대국들을 들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주변의 강대국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제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들이 아닌 이들을 들어 당신의 뜻을 펼쳐가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꿔 이야기하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교회 밖의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개구리의 재앙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개구리는 습지나 물에 삽니다. 그런데 그 개구리들이 궁과 침실과 침상과 화덕과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가고 사람들에게 기어오른다고 하는 것은 창조질서가 흔들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질서의 혼란, 그것은 에덴동산의 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인간의 죄를 범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더불어 살라고 주신 창조세계에 혼란이 옵니다. 땅은 가시덩굴을 냅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과 자연 간의 분리를 가져온 것이지요. 인간이 죄를 범하자,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기 내면에서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질서가 뒤흔들렸다는 것은 제국주의 애굽의 상황이 죄된 상황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술사들 역시도 이렇게 할 수 있었다(8:7)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개구리는 올라오게 할 수 있었으나 그들이 내려가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부탁하여 개구리를 물립니다. 그러나 다시 평정을 되찾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마음이 완악해집니다. 이것이 제국의 속성이요, 불법한 지배자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불법한 일들이 밝혀지고 국민의 항의가 거세지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고개를 숙였던 대통령이 온갖 상상할 수 없는 추악한 일들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이젠 법 뒤에 숨어서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합니다. 부역자들도 똑같은 논리로 무장하고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어찌, 이렇게 출애굽의 상황과 같은지 신기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닮아있기에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대한민국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불의한 자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변질시켜서 국민끼리 싸우게 할 속셈입니다. 이번 국정농단의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선과 악의 문제라는 점을 똑바로 보셔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단호하게 박근혜 대통령을 불의한 대통령이요,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이유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할 대통령이 그 어린 생명이 305명이 고통스럽게 물속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머리 손질이나 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후에도 그 시간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도 않을뿐더러, 속 시원하게 7시간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유족들을 종북빨갱이로 몰아붙이며 매몰차게 대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상상을 넘어서 수많은 불의한 일들이 있으니 속히 물러나는 일만이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인데, 끝까지 가보자고 옥니를 부리고 있으니 마치 바로를 보는 듯한 것입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재앙 : 이와 파리재앙(8:16-32)

 

세 번째 재앙은 티끌이 ‘이’가 되는 재앙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는 ‘곤충’의 일종으로 ‘모기’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전의 재앙과는 다르게 세 번째 재앙부터는 애굽의 요술사들이 따라 하지 못합니다. 급기야는 애굽의 술사들도 손발을 들고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8:19)”인정합니다. 여기서 ‘권능’이란, 단어에는 ‘손가락’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재앙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뿐 아니라 소소한 일조차도 하나님의 손이 하신 일이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실 소소한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때론 고난 속에서도 권능의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질서를 바로잡아가실 것임을 믿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네 번째 재앙입니다. 세 번째 재앙부터는 술사들이 감히 따라 하지 못하고, 네 번째 재앙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8:22).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에는 재앙이 미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로에게는 이런 재앙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구별’이란 단어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구별이라는 단어는 22절과 23절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구별’이라는 단어는 ‘거룩함’이라는 단어와 연결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할 때, 이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질서를 무시하고 파괴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라는 말은 ‘분리하다, 구별하다’라는 말로서,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종파를 이루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고 하면서 세속 권력을 따라 살아감으로 구별된 삶이 아니라 세속권력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아감으로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오늘날의 시대를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신자주유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철저한 물신숭배입니다. 물질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고, 각자 자기의 살길을 도모하고, 쉴 틈 없이 일하고, 남의 약점이나 약한 것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권력과 물질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합니다. ‘돈이 최고!’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마치 애굽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자발적으로 자본의 노예가 되기를 갈망하도록 신자유주의라는 망령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출애굽은 더욱더 힘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던 이들의 자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재앙도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권능을 보는 자들은 복된 눈을 가진 자들이요, 그의 권능의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자들은 복된 귀를 가진 자들입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은 이 재앙의 날에 하나님의 권능을 분명하게 보고 듣든 분들 되시어 선한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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