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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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경공부

산상수훈 (20)- 소유냐, 존재냐?

  • 관리자
  • 2016-07-27 0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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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마태복음 6:19-24

 

1. 소유하는 삶, 존재하는 삶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 To Be or To Have>라는 저서를 통해서 인간의 생존 방식을 ‘소유하는 삶의 방식’과 ‘존재하는 삶의 양식’으로 구분하고, 현대사회는 사회적인 권력이나 물질 등을 많이 소유한 것을 곧 성공한 삶으로 보기에 많은 이들이 소유하는 삶을 추구하지만, 소유에 집착하는 만큼 존재의 위기를 가져온다고 봅니다. 소유하는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은 본질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고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서 밝힙니다. 에리히 프롬은 단순히 ‘소유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소유하는 것(having)을 넘어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데 그것이 바로 존재하는 삶(being)이요,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으로 ‘나눔’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2. ‘멸망의 가증한 것’은 ‘돈’

 

마태복음 24장 15절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릴 것을 예언하시면서, 가장 큰 환난의 때에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 성전이 왜 무너져야 할까요? 예배하는 공동체가 본질을 상실하고 ‘돈’을 축적하는 ‘장사꾼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멸망이 가증한 것’이 가르치는 것은 ‘돈’이라고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을 축으로 해서 움직입니다. ‘돈’을 따라서 ‘권력’이 움직이고, ‘권력’을 따라서 ‘돈’이 움직입니다. 돈은 곧 권력입니다. 돈의 막강한 힘, 그것은 싫든 좋든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로또가 불티나게 팔리고, 돈이 되는 곳에 자본이 몰리고, 교회조차도 돈 냄새 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으니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선’ 현실입니다. 마가복음 13장 14절에도 다니엘서의 말씀이 인용되었는데, 거기에서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돈이 곧 권력’인 이 세상은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3. 삶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두십시오.

 

지갑이 넉넉하면 마음도 넉넉해집니다. 지갑이 비면 마음도 궁해집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실, 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선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 악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립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돈은 악으로 기웁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재물을 ‘맘몬’이라고 하셨습니다. ‘맘몬’은 숭배를 요구하는 우상입니다. 그래서, 맘몬에 길들기 시작하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버립니다. 많은 사람이 돈벌이를 위해서 건강, 신앙, 가족 심지어는 자신까지도 뒷전으로 미룹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칭찬하고, 능력있다고 합니다. 저마다 필사의 노력으로 돈을 벌려고 하고, 번 돈을 통해서 자기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초점이 돈벌이에 맞춰져 있으면 어떤 시간이 줄어들까요?

삶의 아름다운 시간이 줄어듭니다. 풀꽃과 눈 맞추고, 바람과 나무와 새와 눈 맞추고, 신비한 이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는 여유로운 삶이 줄어듭니다. 아니,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가치없는 일처럼 매도되고,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은 아무리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평가절하됩니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손해’를 보는 일은 더더욱 안 됩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도 ‘천천리 느릿느릿 살아가십시오’라고 권면해도 “목사님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발적 가난

 

그렇다면 성도들은 가난해야 할까요?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해서 맘몬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나눔을 통해서 돈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나눌 말씀이지만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도,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도 풍성하게 사는 비결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당당하게 할 수 있으며, 재물을 섬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제목인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것을 ‘헌금’과 지나치게 연결해서, 헌금하는 만큼 하늘에서 부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도 빈부격차가 있다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요, 비성경적인 해석입니다. 오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5.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21절 말씀에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내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온통 우리의 마음은 ’보물‘에 가 있습니다. 마음이 보물에 가 있으면,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지요. 그러니 이 말씀을 22절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면, ’보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보물‘이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눈이 성할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보물은 ’돈‘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관심과 보이는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으므로 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업주가 ’돈‘에 미치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이지 않습니다. 돈은 곧 ’권력‘이라 했습니다. 정치가들이 ’권력‘에 미치면, 국민이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권력가들의 행태를 보십시오. 일반인들은 상상초자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안중에는 오로지 ’돈‘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중(眼中)‘이라는 말, 그것은 ’눈 안(眼), 가운데 중(中)‘이니 ’눈 속‘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됩니까? 23절의 말씀대로, 눈이 성하지 못하니 온몸이 어두워집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보물이 ’돈‘이 되면, 우리의 온몸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6. 하나님과 재물, 두 마리 토끼?

 

이 둘을 다 잡을 수 없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불가능하다. 하나님이나 재물,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돈’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지요.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풍족하거나 부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삶, 존재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우리의 삶은 한결 자유롭고 풍요로워집니다.

이것을 인문학적인 용어로 ‘소유냐, 존재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라는 것이지요. 에리히 프롬은 ‘소유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결국 소유한 것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갈파한 것이지요. 그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나눔’입니다. ‘나눔’은 소유한 것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소유한 것이 오롯이 나의 수고로만 얻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나눌 수 없습니다. 나의 수고도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수많은 ‘그림자노동’으로 내가 소유하게 되었으므로, 잠시 내가 맡은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나눔이 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돈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돈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돈의 힘으로 다른 이들을 깔보고나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돈은 저주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돈’은 ‘맘몬’ 즉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7.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부해도

 

물질적으로 가난해도 부해도 ‘하나님’을 우리의 보물로 삼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눈이 건강해져서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봅니다. 제대로 봐야 제대로 판단을 합니다. 제대로 판단해야 불의한 일에 서지 않습니다. 가난하다고 주눅이 들지 말고 당당하시고, 부자라면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소유냐, 존재냐?”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김민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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