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역사는 반복된다”
출애굽기 11:1-10 / 2016년 12월 28일 수요성경공부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애굽 땅에 내린 재앙 중에서 네 번째 재앙까지 다뤘습니다. 물이 피가 되는 재앙으로부터, 개구리재앙, 이와 파리재앙까지 겪었지만, 바로의 마음은 더욱더 완악해집니다. 이에 하나님은 지속해서 재앙을 내리십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가축의 죽음, 여섯 번째 재앙은 악성종기가 생기는 재앙, 일곱 번째는 우박의 재앙, 여덟 번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 아홉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입니다. 처음 재앙이 시작될 때에는 생활의 불편함을 가져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다섯 번째 재앙부터는 생명에 직간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재앙에도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이 모든 재앙에도 바로가 끝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는 것은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완악하다 – 집착, 사로잡히다.
‘완악하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자크’는 ‘달라붙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집착하다’는 말이요, 집착한다는 것은 뭔가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런 재앙이 이어지는 중에도 자신의 지배권력을 지탱하는 모든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 표현이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이요,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그냥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재앙까지는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백성을 내보내라!”고 요구하면서, 듣지 않으면 이런저런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예고를 한 후에 재앙이 내립니다. 그러나 아홉 번째 흑암의 재앙은 사전 경고 없이 즉각적으로 시행됩니다. 사흘 동안 계속된 어둠은 단순히 어둠 그 자체만의 의미가 아닙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해는 최고신(Ra, Re)이요 유일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흑암의 재앙은 애굽 사람들에게 있어서 태양신의 죽음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그들은 극심한 공포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출애굽의 과정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행하시는 일임에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교육적인 이유입니다. 물이 피로 변하는 기적에서부터 흑암의 재앙까지는 일사천리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숨 가쁘게 이어지던 재앙이 잠시 멈춥니다. 잠시의 고요함, 큰일을 앞둔 고요의 시간입니다. 출애굽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이 시간은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라(11:2)”고 합니다. 과연 애굽 사람들이 이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홉 번의 재앙을 통해서 애굽 사람들에게 히브리인들이 자기들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재앙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직 바로만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이런 깨닫지 못함은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왔으며, 바로가 권력의 맛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뭔가에 사로잡히거나 집착하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봅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잘못된 것이 다 보이는데, 그들은 뭔가에 사로잡혀 있으니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오히려 항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권력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의 덫에 사로잡힌 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부역자가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전력을 기울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오직 우리가 사로잡혀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에 잡힌 바 되면 해방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외의 것에 붙잡혀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내버려 주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지혜
모세는 바로에게 최후통첩을 합니다.
이제 “백성을 내보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지 않고, 선언합니다. “이제 애굽의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다 죽을 것이요, 이제는 오히려 너희가 나가달라고 절하며 부탁할 것이다(11:8).” 합니다. 이제 애굽은 이전에 이스라엘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기가 죽임을 당하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바로는 결국 자신의 땅을 거대한 장례식장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아직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바로는 설마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바로는 장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은 후에야 후회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늦기 전에 돌이키지만, 대부분 사람은 돌이켜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에 이르러서야 후회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보는 것이 곧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는 말씀이나 요한복음 20장 29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의심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신 것도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잊힌 역사는 반복된다.
2015년 6월 ‘고스트 메모리(유령 기억)’라는 뮤지컬이 대학로에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소재는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에 연루된 양민 수천 명이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목숨을 잃었던 사건을 다룬 것인데, 당시 마을 주민의 증언은 당시 계곡이 핏물로 가득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이들이 어떠한 법적 절차도 없이 살해당했던 것입니다. 경찰 정보수사과와 사찰계와 육군본부 정보국은 물론 반공청년단체까지 학살에 가담했음이 과거사진상조사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 보도연맹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을 자행한 서북청년단이 ‘재건위’라는 이름으로 2015년 광화문 광장에 나타나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며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런 상황을 목격하며 뮤지컬을 기획한 희망새는 “지금의 현실은 과거 역사의 반복이다. 현재 우리들의 모습은 그 과거의 반영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이 공연을 기획했다고 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잊힌 불행한 역사는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에게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거듭 교육하고 계시는 중이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이 애굽 땅에서 경험했던 재앙을 후손들에게 전수해야 했고, 그들이 노예생활을 하며 겪었던 아픔들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해 내고, 후손들에게 전수해야만 합니다.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어른들은 자녀를 모아놓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지 생생하게 전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그날 애굽에서 나오던 날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질문하고, 부모는 매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것이 유월절 식탁에서 이뤄지는 일입니다.
십계명을 보시면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말씀이 십계명의 핵심입니다. 십계명의 기본 정신은 여기에 서 나온 것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이 사실을 망각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회복되는 길은 오직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회개하는 길 외에는 없었습니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먼저, 7절에 있는 말씀대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파리재앙부터는 이스라엘이 사는 고센 땅은 구별하여 재앙이 임하지 않게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면, 그들이 그 구별됨을 상실했을 때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고 구별된 사람답게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의식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별종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자의식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신이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요즘 참으로 안쓰러운 일은 대형보수교회에 다니시는 교인 중에서 광화문에 나가 집사님, 권사님 호칭하며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촛불 시민을 향하여 빨갱이네 뭐네 몰아붙이고, 불의한 권력을 막무가내로 지지하는 분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정말, 그들이 대통령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걱정한다면 그들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도록 돕고 국민과 함께 새 나라를 만들어가도록 이끌어줘야 합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잊었기 때문에 그런 부끄러운 일들을 합니다. 그들은 유신체제의 어두운 면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었던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라는 것과 살맛이 나지 않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잊으며 우리는 불의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하십시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