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금주의 설교

수요성경공부

출애굽기산책(9) - 하나님의 기적 앞에서

  • 관리자
  • 2016-12-14 08:15:00
  • hit618
  • 222.232.16.100

“하나님의 기적 앞에서”
출애굽기 7:8-13 / 2016년 12월 14일 수요성경공부

그동안 8회 동안 공부했던 출애굽기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히브리 산파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함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히브리 산파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에 의해서 모세가 생명을 잃지 않았음을 살펴보면서 ‘생명살림의 일꾼인 여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세 번째 시간에는 약한 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면서 모세 또한 약한 자들의 아픔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오지랖 넓음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지요. 네 번째 시간에는 호렙산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모세의 모습을 통해서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피면서, 거룩한 삶이란, 우리의 삶의 이력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섯 번째 시간에는 ‘나는 나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말씀을 나눴고, 여섯 번째 시간에는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모세의 지팡이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을 통해서 기적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일곱째 시간에는 백성과 하나님 앞에 선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는 이들의 운명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끊임없이 백성을 이간질하는 지배권력과 그 이간질에 사분오열하는 백성, 그 앞에서 선 모세와 아론의 고민 등을 다뤘습니다.

 

1. 다시 재현되는 출애굽사건

 

출애굽기 1강이 10월 19일 시작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주간부터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 불거졌고, 최순실 게이트로 확대되었고, 결국에는 촛불민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결과까지 이어졌습니다. 아직 절차는 남아있고 대한민국이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출애굽의 역사가 생생하게 현실에서 다시 재현되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불법한 자들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지금도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국민 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마치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강제노역의 강도를 더 심하게 하면서 히브리인들이 바로가 아닌 자신들을 해방할 지도자가 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과 불만을 쏟아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상상을 초월한 불법한 자들의 부끄러운 행위는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며, 그들은 그 모든 행위가 다 드러날 때까지 자신들의 불법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열 가지 재앙을 다 받은 후에야 이스라엘을 내보내고, 그마저도 후회되어 다시 추격전을 벌이다가 홍해바다에서 수많은 병사를 수장시키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손을 들게 된 것처럼, 그들도 그럴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신앙인은 커다란 시험 앞에 서 있습니다. 광야에 머물 것인지, 출애굽을 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남교회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머물러있을지,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지 지금부터 수년 내에 결정될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단지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사건이 됨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여전히 사랑해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혼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에서의 숫자의 의미

 

이제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 섭니다.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나이를 실제의 나이라 하면서 80세 고령에도 출애굽 사명을 감당하였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의 나이는 실제의 나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나이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어떤 왕은 수만 년을 살았다고 기록되어있기도 합니다. 아담부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나이를 다 합해서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면 대략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이되는데 대다수 과학자는 지구의 연대를 약 46억 년으로 보고, 우주는 약 138억 년으로 계산하고 있으며, 이것은 학계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숫자 혹은 나이는 상징으로 봐야지 실제의 숫자로 보려고 하면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에서 거룩한 숫자는 7입니다. 인간은 제6일에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6은 불완전한 인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사탄의 숫자로 알려진 계시록의 666은 이 불완전한 인간이 3번 반복되는 것으로서 불완전한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을 사탄의 숫자, 바코드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144,000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2지파 × 12지파 ×100을 하면 십사만 사천이 나오는데 구원받은 자의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144,000만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 144,000이라는 숫자에 연연하고, 12지파에 연연하는 사이비 이단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은유의 언어로 쓰였습니다. 이 은유의 언어를 건강하게 해석하려면 문자로 성경을 읽으면 안 됩니다. 창세기를 인류의 시원을 밝히는 책으로 읽으면, 우리는 창세기에 담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향한 신비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만으로도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말씀조차도 우리는 다 해석할 수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나이가 80이요, 83세라고 하는 의미는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이라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새싹, 새순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주어진 나이를 즐기시고, 주어진 나이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3.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나섭니다. 그때 하나님은 바로 앞에서 이적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아론의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는 이적이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론의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이에 질세라 바로의 요술사들도 자기의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요술을 했습니다만,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림으로 모세와 아론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모세와 아론이 승리했지만,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하여 돌이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이적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대언자 아론의 지팡이였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애굽의 요술사들도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모세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 이적과 요술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먼저, 모세의 지팡이와 아론의 지팡이입니다.

왜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고 아론의 지팡이일까요? 본문 이해와는 크게 연관은 없지만, 혹시 아론의 지팡이는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 아시는지요? 살구나무입니다. 민수기 17장에는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린 기적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긴 했지만, 모세의 조력자입니다. 출애굽의 주연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주연을 빛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모세에게 맡기셨는데, 모세보다는 아론을 하나님은 더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긴 모세를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모세의 대언자와 조력자로 세우신 아론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권위를 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행하시는 것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을 포함해서 우리의 어떤 헌신이라도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자 한다면 귀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출애굽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주로 모세의 지팡이가 바로 왕 앞에 던져져서 뱀이 된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성경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애굽에서의 첫 번째 이적이라 할 수 있는 ‘물이 피가 되게 하는 기적(7:14-19)’에서 사용되었고, 후에 홍해를 가를 때에, 광야에서 반석을 칠 때, 아말렉의 침공시 지팡이를 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백성이 불뱀에 불려 죽어갈 때 구리 뱀을 만들어 지팡이 끝에 달아 이를 쳐다보는 이들마다 치유를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세의 지팡이는 십자가의 모상이 되고, 훗날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에 영원히 보관됨으로써 제사장의 모상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요술사의 등장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문밖에 거하는 자 중에 개역 성경에 ‘점술가’로 번역된 것이 ‘마술사, 요술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요즘 우리가 접하는 엔터테인먼트 마술사들과는 다릅니다. 왜, 마술이 신비합니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때문에 신기합니다. 요즘은 갖가지 과학적인 장치와 빠른 손놀림으로 마술을 한다는 것을 알지만, 고대 세계에서는 마술은 자연적인 현상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심을 동반했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인간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일들이 실재했고, 지금도 역시 실재합니다. 이적과 마술, 그 경계선은 무엇일까요?

 

바로의 술사들은 자신들의 마술을 이용해서 백성에게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주었고,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공고하게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적, 예수님의 치유행위는 지배권력을 해체하고 억눌린 이들을 해방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적과 마술의 차입니다. 오늘날에도 치유의 기적은 반드시 있습니다만, 그것을 돈벌이하는 수단으로 삼거나 자기의 이름을 높이거나 신도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올바르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고 공포에 떨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도록 하지만, 궁극적으로 희망과 행복을 주시므로 해방의 영이십니다. 성경은 아론의 지팡이가 술사들의 지팡이를 삼켰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의 술사와 바로가 쓰고 있던 특권의 가면을 찢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일시적인지를 이 사건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은 더욱 완악해집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입니다.*

 

(김민수 목사)

게시글 공유 URL복사